...난 다른 것은 관심이 없지만,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겁니다.
...
채동욱 사건은 - 비록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여당, 야당, 청와대 등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꼬여있다고는 해도
본질적으로 "개인사"의 영역의 문제입니다. 혼외자식이 설사 사실이어도 그것은 개인의 도덕성의 문제이고, 그
로 인해 공직에서의 도덕성이 문제되면 사퇴하면 그만인 문제거든요.
..
국정원사태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 따위는 아득히 씹어먹고도 남을 정도로 그야말로 "국기의 문란" - 국가기관, 그
것도 정보기관 -- 게다가, 그 전신이 과거에 독재자들의 비밀경찰 노릇을 하던 악명높은 기관 -- 이 국가 정치에
개입하여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정보와 증거를 은폐하고, 자청하여 권력의 개 노릇을 하던 정황이 포착된 문제거
든요.
쉽게 말해서 전자는 끽해야 흔한 섹스 스캔들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만약 미국처럼 매서운 청문회 시스템이 있는
국가였다면 한 두 명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통해 이익을 본 정치세력 및 이권집단 전체가 막대한 타격을 입고 그
대로 무너질만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
그런데 대체 이 보도의 비중의 차이는 뭘까요. 이 국민 반응의 썰렁함은 뭘까요.
이 보다 훨씬 더 작은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접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 십년 전, 20
세기 중반 무렵에 FBI와 에드거 후버가 지금 국정원이 하는 짓거리를 그대로 한 적이 있습니다. 후버-매카시 시스템
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미국 정계를 뒤흔들었고, 그 이후로 어떤 식으로든 FBI와 CIA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
치에 개입하는 것은 막대한 금기로써 엄정히 감시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제 예상으로는 CIA국장, FBI 국장 둘 다 옷 벗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반역에 준하는 죄목으로 오랜 시간 콩밥을 먹게
될겁니다. 하원 상원 양자 모두 참여한 비상 조사위원회가 열리겠죠. 그리고 대통령은 연설을 할겁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준하는 막대한 악행이 일어났다고 개탄하면서요. 상원 하원,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원칙"
에 대한 막대한 도전으로써 가능한한 가장 엄정한 칼날로 다스릴겁니다. 미국이 오늘날 많은 점에서 막장으로 치닫
고 있다고 해도 적어도 정치시스템의 원칙을 준수한다는 면모에서는 아직도 매섭게 날이 선 정의를 추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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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세우는 국회의원이라면 사실 국정원의 이슈는 야당이든 여당이든 이견이 있을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시각차
가 나올 수가 없어요. 국정원직원을 오히려 "감금" 했다는 식의 어불성설 물타기로 쉴드질 자체가 불가능한 이슈입니
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다면요.
대체 이 놈의 나라에 어디까지 실망해야 되는건지, 그리고 그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 국민에 대
해 어디까지 절망해야 하는건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얘기해요. "왜 당신같은 사람이 무려 국개론같은 중2병적 논리를 지지하느냐"고요.
근데 문제는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난 병신이 아니지만 다른 대부분 국민이 병신이라서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자족감을 얻고자 국개론을 얘기하는게 아니
라,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은 그것을 탄탄히 뒷받침할만한, 자유, 정의, 진리, 그리고 평등에 대한 국민의 기
본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국개론을 얘기하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변혁은 어느 한 방향의 일방통행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말하자면 학생인권 이슈에 비교할 수 있겠죠.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등을 도입했다고 해서 오히려 교권이 추락하고 학생들이 더 막나간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른들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자 하는 취지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학
생 또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렇게 얻어진 자유를 방종하게 사용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협력"의 차원에서 위에서 보
장하는 권익을 그만큼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학생인권은 "내가 방종해도 선생은 아무 짓도 못하겠지"라는 방종의 특권이 아니라, "학생으로써 나를 존중해준다면, 나도
마찬가지의 존중과 배려를 다른 학생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겠다"는 명백히 상호적인 접근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국개론도 본질적으로는 그와 같습니다.
국민은 정치인들을 탓하는 것을 그만 해야 합니다. 아니, 적어도 그런 정치인들을 계속해서 밀어주고 뽑아주는 자신의 명백한
오류, 의식의 부재, 그릇된 선택과 무관심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깨달아야 해요. 이것은 좌파든 우파든 기본적으로 정치집단
정치정당이 자신의 "행실"만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국민의 부동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기실, 나는 국개론을 까면서 "좌파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소리야말로 오히려 꿈결같은 소리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전
형적인 "의지주의" 이거든요. 내가 더 잘하고 내가 더 의지를 보여서 정치를 잘 하면 국민이 그에 감화되어 따르겠지 .. 라는 부류
의 생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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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에 지금 되풀이되는 이 멍청한 상황을 우리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아마 우리 세대가 범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죄악이겠지요.
그것은, 앞으로 자기가 자식을 나아 기를 때, 지금 젊은 시절 생각하던 "원칙"을 굽히지 않고, 세파와 이해에 물들지 않고 "바른"
길로 자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소리입니다.
자기 생각은 열심히 떠들지만, 막상 자기 아이에게는 똑같이 입시지옥, 교육지옥을 겪게 하고, 사교육을 받게 하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게 키우고, 똑같이 대학 들어가고 영어 공부하고 회사 들어가는 그런 삶을 바라는 위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것을 가르치고, 보다 넗게, 공정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 인해 입는 손해와 고난을 우리 아이들이 그대로 감내
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정신의 세대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고 교육비를 대주고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하며, 그것을 하지 못하면 부모 노릇을 못했다는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
나서, 아이들이 넓게 볼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그 자유를 향유하고, 그 자유를 침해받는 것에 대해 민감하고 정의롭게 반응할
수 있도록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게 국개론을 타파할, 우리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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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무엇이 좋은지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나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도 스스로 그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그 대가를 치루고, 스스로 그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믿어줘야 합니다.
"시민"이 없이 민주주의가 이룩될 수 없다면, 그 "시민"을 대량으로 양성하는 우리 소시민이야말로 기실, 국가의 미래를 손에 쥐락
펴락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민중은 투표라는 거대한 힘을 갖고 있다고들 합니다. 부모가 되는 우리는 그 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다음 세대의 민중을 만들어내는
더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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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가 생각하는 국개론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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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트라콘 작성시간 13.09.24 음.. 국정원 사태에서 일반 대중 여론이 관심을 별로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저는 검찰의 독립성이 침해되지 않은 수사와 기소로 인한 민주국가의 사법 시스템의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모습이라고 봤는데요. 물론 엄청나게 중한 사안이고 언론에서도 충분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점은 동감하지만 지금의 채동욱 사태를 국정원 사태와 분리하여 채동욱 사태가 국정원 사태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현실을 개탄하는건 그리 동감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둘을 분리하기 힘들다고 봐서 그럽니다. 채동욱 사태는 국정원 사태를, 말씀하신 국가 권력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여 권력의 개 노릇을 한 정황을 밝히고 처벌하려는 국가 사법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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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트라콘 작성시간 13.09.24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무력화하려는 또하나의 독재가 그리운 기득권의 정치 공작인 정황이 보이고 있으니까요. 전자를 끽해야 섹스스캔들이라고 보는건 전자의 사태의 본질을 폄하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섹스스캔들을 왜 터트렸는지 의도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채동욱 사태는 단순한 섹스스캔들이 아니라고 봅니다. 채동욱 사태는 국정원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고 채동욱 사태가 터지면서 검찰이란 국가의 사법 시스템이 국정원 사태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게 만드는 청와대의 정치공작이기 때문에 국정원 사태2 라고 봐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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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avoc(夏服ㅋ) 작성시간 13.09.24 대법원을 아예 제주도로 이전시켜야함.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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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aining278 작성시간 13.09.24 대안은 교육이라는데 공감합니다. 그런데 오늘 기사를 보니 정부에서 전교조 인가 취소 최후통첩을 했다더군요.
지금의 전교조가 참교육의 대명사도 아니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염려스러운건 우리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교육역시 유신으로 가고 있다는거..
참 요즘은 박통의 추억에 함몰된 세대인 우리 부모님이 새누리 근혜 안찍으신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ㅠㅠ -
작성자프리드리히대공 작성시간 13.09.25 시간이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