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가사가 고작 몇줄로 매우 짧은 줄 알았는데....아래 아리랑 가사들을 보니
엄청나게 길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놀랍네요.
하여튼, 아리랑 가사들을 모을 수 있는대로
여기에 모아 보겠습니다.
정선 아리랑
출처: http://www.arirangschool.or.kr/jsarirang04.html
--------------------------
진도 아리랑 가사집
http://blog.daum.net/lyb3069/15754972
--------------------------
영천 아리랑
<기획>영천아리랑비 세우고 서적 가사집 후세에 전해야
3회: 민요의 고장 전남 진도 아리랑 타령
2016년 09월 12일(월) 18:34 [영천시민뉴스]
◇ 부녀자들이 주로 부르던 진도아리랑
진도아리랑을 한 수 불러달라는 요청에 박 회장은 망설임 없이 손장단에 맞추어 진도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천리 밖에다 정들어 놓고 오라는 등살에 나는 못살겠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박 회장은 진도아리랑에 이어 영천아리랑도 불러주었는데 영천아리랑의 음정은 물론 가사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필자도 박 회장의 장단에 맞춰 영천아리랑을 함께 불렀는데 아리랑은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열린 문화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진도아리랑을 진도에서는 ‘아리랑타령’이라고 부르는데 부녀자들이 주로 불럿다고 한다.
<5면으로 이어짐>
진도아리랑은 진도에서 불리던 아리랑이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부르고 있으며 내용은 주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가사에 욕, 상소리, 한탄, 익살 등이 거침없이 노출되어 있고 진도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 가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사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계속적으로 덧붙여 지는데 이를 선후창 형식의 돌림노래라고 한다. 돌림노래란 여럿이 부를 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메김소리를 하고 나머지는 맞는소리(맞음소리)를 하는 것이다.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 (후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리라가 났네.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 니정 내정은 정태산 같은데 / 원수년의 탄광 모집이 니정 내정을 띤다. (후렴) /
저 강에 뜬 윤선은 바람심으로 놀고 / 점방에 유성기는 기계심으로 논다(후렴) /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 큰애기 젖통은 몽실몽실(후렴) /
씨엄씨 잡년아 잠깊이 들어라 / 문밖에 섰는 낭군 밤이슬 맞는다(후렴) /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 문풍지 바람에 설사가 났네(후렴)
진도아리랑의 창작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는 유교적 전통문화와 개화문명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나고, 외세의 침탈로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시대였다.
◇ 진도 아리랑의 두가지 전설 전해오다
진도 아리랑에는 두가지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하나는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진도 총각이 경상도 대갓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밀애 끝에 쫓기는 몸이 되어 진도로 도망쳐 정답게 살다가 총각은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와, 진도 총각과 혼약한 한 처녀가 총각이 육지에서 다른 처녀를 데리고 오자 원망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로, 설이향과 소영이 굴재를 오가며 사랑을 하였는데, 어느 날 소영공자가 떠나 버렸다. 슬픔에 찬 설이향은 소영공자가 육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자 사생결단을 내려 했으나 죽지 못하고, 비수로 머리를 자르고 쌍계사의 중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출처: 영천시민뉴스
-------------------------
가사-영천아리랑
후렴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오
아주까리 동배야 더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멀구야 다래야 더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울넘어 담넘어 님숨겨두고
호박잎 난들난들 날속였소
해설-영천아리랑
선율면에서는 강원도아리랑을 편곡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원도아리랑의 5박자 구조와 같고, 양성발성(서양식 창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떠는 풍이 전통적인 떨림법과는 다르게 잘게 떤다. 곡은 활발하고 힘이 넘치는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
가사-해주아리랑
후렴
아리아리 얼수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구 노다 가세
아리랑 고개는 왠 고갠가
넘어갈적 넘어올적 눈물이 난다
시집갈 큰애기 홀로 앉아
여러 가지 궁리에 마음만 탄다
화조월석 가는 춘풍 어이 막으리
귀 밑에 오는 백발 그 누가 막으리
출처 : 아리랑 그 맛, 멋 그리고..., 김연갑, 집문당
--------------------------
가사-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설한령 높기도 하다
쪽발이 왜놈들 날래 나오라
아리랑 천상에 보내 줄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돌바위 고지가 어드메냐
여기도 함정골 삼심령일세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아리랑
----------------------------
위 출처 링크주소를 클릭하시면....다양한 아리랑들의 가사들을
볼 수 있군요. 그래서 여기서는 이쯤해서 생략하고자 합니다.
====================
광복군 아리랑
<광복군아리랑>은 총 4절로 구성되어 있다.
1.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 전해주소
2.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삼천만 가슴에 광풍이 불어요
3. 바다에 두둥실 떠오는 배는 광복군 싣고서 오시는 배래요
4. 아리랑 고개서 북소리 둥둥 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 날리네
1절에서는 광복군으로 나서는 심경을, 2절에서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3절에서는 승리에 대한 염원을, 4절에서는 독립을 이룬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4절이다. 4절에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즉 승전과 독립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담고 있는데, 이는 ‘승리를 이미 정해진 일로 선언’함으로써 소망하는 미래를 선취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렴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라랑 불러나 보세”로 <밀양아리랑>에서 파생된 노래임을 알 수 있다.
광복군으로 나서게 된 배경을 그린 노래도 있다.
이조왕 말년에 왜 난리 나서 이천만 동포들 살길이 없네/ 일어나 싸우자 총칼을 메고 일제 놈 쳐부셔 조국을 찾자/ 내 고향 산천아 너 잘 있거라 이내 몸 독립군을 따라가노라
이 노래는 러시아 국경 지역에서 불린 <독립군아리랑>의 사설과 유사하여, 양자 간 영향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613
-------------------------
광복군아리랑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7.29 아리랑 역사를 살펴보면....이상하게도
1894년 이전에는 아리랑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민속적 흔적이 없어 보인다는 점....
그런 관점에서.....아리랑은 고대사적 얘기가 아니라
혹시 근세사에서 비로소 시작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도 "아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니....수수깨끼입니다. -
작성자kbsns 작성시간 19.07.29 수수천년 전에 탄생한 아리랑
그 오랜세월에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사랑을 받으며 2천여년의 생명력을 이어왔다
우리 인민들에게 친숙한 아리랑은
원곡으로도 많이 불리고
때로는 지방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조건에
따라 개화시켜 아리랑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였다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영천아리랑 하와이아리랑
연변아리랑 영변아리랑 해주아리랑 등
수없이 많은 아리랑별곡 변곡들이 만들어졌고
불리워왔다
고국을 떠나 고국과 고향의 향수를 그리워 하면서
만들어 부르고 러샤 까자흐스탄 하와이 멕시코
일본 중국 등지에서도 우리 민족은 아리랑을
불렀다
전쟁터에서도
일터에서도
힘들고 고달프고
아리랑은 항상 옆에 있었다 -
답댓글 작성자kbsns 작성시간 19.07.29 거듭
말하지만
아리는 한 여성의 이름이고 아리랑은 아리의 랑군
즉 남편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리랑은 2천 수백년 전에 부여국의 료하지역에서
아리와 남편의 슬픈 헤여짐에 깃든 사연을
당대의 악곡인이였던 려옥이란 분이 만들었다고
조선의 문학자료에 이미 수십년전에 나와 있습니다
삼국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그러니 삼국시기의 고서에도 고려사에도 이씨조선사에도 아무리 뒤져봐도 있을리가 없지요
삼국시기나 고려 이씨조선 그 당시에 창곡된것이라면 쉽게 찾을수 있을겁니다
기록이나 구전으로도 쉽게 찾을수 있었겠지요
-
작성자아사달 작성시간 19.07.29 세계 각국에서 아리랑 필래쉬 몹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했는데
밝게 웃으며 하는데도 원래 곡이 그런건지
아무리해도 결국은 애잔하게 들리더군요.
그래도 비슷한 춤사위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찾아 봤습니다.
우리 고어에 대해 연구할 사료가 없으니 (몇번의 분서갱유)
여러가지 설만 이야기 되는듯 하고요.
아직도 상여 비슷한 것으로 장례를 치루는 일본을 보면
아마도 일본 왕실에 우리 고어에 대한 연구거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좀 복잡해지긴 하는데 일본으로 이주한 고구려 백제 유민은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산동성에 대부분 남았다는 백제의 유민들은 또 어떨까요?
흥미롭기도 난해하기도 한 문제 같습니다. -
작성자본향으로 작성시간 19.07.29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