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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카

작성자산비탈양|작성시간22.06.21|조회수407 목록 댓글 10

 

 

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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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딸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미모로 가는 곳마다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트에 가서 카트 앞쪽에 태워 끌고 가면 모두 카트를 에워 싸고 세상에 너무 이쁜 아이다 하며 난리라 앞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혼혈 트기라는 건데 트기는 대개 예쁜 편이지만 조카애는 좀 더 특별났다. 옅은 갈색머리를 양갈레로 묶어주면 곱슬곱슬한 머리가 너무도 귀여웠다. 그런데 내가 본 트기들은 아무리해도 눈동자만은 푸른색이 아니고 모두 갈색이니 푸른색은 열성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푸른 눈에 대해 무슨 선망이 있는 것인지 서양인들을 묘사할 땐 무조건 '푸른 눈의..'라 하는데 내가 보기엔 갈색이 훨씬 많고 부모중 하나가 푸르고 다른 한명이 갈색이면 대개 푸른 색은 져서 들어간다. 그리하여 세월이 흐를 수록 푸른 눈은 사라질 것으로 본다.  파란눈은 햇빛에 약해 썬 글래스없이는 눈이 부셔 나가질 못하니 얼마나 불편한가. 진화론에선 불편한 것은 점차 퇴화되게 돼있다. 

또한 한국인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금발머리도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마릴린 몬로도 평생 금발로 염색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일반인들도 금발로 염색을 많이 하는데 금방 머리는 자라기 때문에 뿌리부분의 진한 머리칼이 나오고 있는 걸 자주 본다. 마릴린처럼 사람들을 끝까지 속이려면 여간 부지런해야 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도 요재는 금발로 염색하는 애들을 자주 보는데 참으로 한심스럽다. 푸른 눈처럼 금발도 열성인지 금방 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백인이 동양인과 결혼하면 그 이상한 '노랑끼' 같은게 희석되어 훨씬 보기 좋고 흑인도 색이 중화되어 좋아 보이니 아무래도 동양인의 자질이 참 괜찮은 것 같다. 하긴 동양인도 그들에 비해 좀 부족한 '입체끼'가 살아나니 더 좋아지긴 한다. 베트남에 프랑스와의 전쟁후 생겨난 수많은 트기들이 모두 뛰어나게 예뻐 인기 있는 까닭도 그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현상인데 우리나라의 특히 흑인과의 트기는 그 냉대를 견디다 못해 한사람도 남김없이 미국으로 이민 가버린 것도 참 가슴 아프다. 예외로 인순이와 박일준이란 가수만 빼놓고. 일반인이라면 어림없었을 게다.

 

얼마나 예뻤던지 소문이 나서 결국 TV 에까지 초청이 돼 나갔는데 남자어나운서가 너무 너무 예쁘다며 호들갑을 떠니까 'I know I am.' 이라하여 어나운서가 짐짓 놀란 척하면서  'Oh How do you know?'하니 'Because everybody says so!' 라하여 시청자들이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한다. 어떤 질문에도 답을 너무도 똑똑하고 귀엽게 잘 해서 큰 인기였다고.

 

그런데 외모뿐 아니라 크면서 머리도 천재라 항상 공부도 1등만 했는데 부모 둘도 똑똑했지만 내 생각엔 혹시 그녀의 외할아버지를 닮은 것 아닌가 속으로 상상만 한다. 그 아빠가 들으면 섭섭해 할가봐 상상만. 각 나라마다 선호하는 전공이나 학과가 조금 씩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선 심리학이 상당히 유망주로 인기이다. 삭막한 자본주의와 비인간적인 기계주의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는 갈 수록 피폐해지니 심리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갈 수록 늘고있다. 심리학과 4년 내내 탑을 유지 하다가 대학원에서 딱 한명만 뽑는 티오에 그애가 당당히 합격한다. 심리학과의 교재는 너무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상상이상이라 밤을 세워도 다 읽어내기가 어렵다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MA 학위를 따게 됐는데 이제 그녀는 박사학위에 더 도전하던지 심리상담소를 개설하던지 그 학교에 남던지 앞길은 승승장구로 열려있었다. 그러니까 재색을 겸비한 희귀과에 속한다 하겠다.  

 

하루는 친지들과 한 레스토랑엘 갔는데 그 옆자리의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가 참 이상하게 들렸다. 미국의 레스토랑은 식탁이 네모난 것이 아니라 홀에 둥근 식탁을 군데군데 놓고 흰 테이블보를 씌워 놓아 테이블과의 거리가 가까운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목소리가 큰 나라에선 시끄러워 밥 먹기도 힘들 것이다. 조카애가 그 중 가까운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Excuse me, but 지금 나누시는 말이 어느나라 언어인가요?" "아 스위든(Sweden)語입니다 아가씨." "아 그래요 So interesting!" 어쩌구 저쩌구..... (중략)....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에 goal in 하게됐던 것이다. 

지구상 제발로 걸어들어 온 아름다운 먹이를 놓칠 숫컷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그 의자에 다른 남자가 앉아있었다면 그애의 남편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운명이란 것이렷다.

그남자들은 미국에 와서 자리잡은 스위든의 한 고등학교 동창들인데 내가 본 스위든 남자들은 대개 잘생기고 예의가 바른 즉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뼈대있는 양반집 자제들같았다. 그들은 은근히 미국인들을 전통없는 상놈(yankee)들이라며 멸시하는 풍조가 있는데 내게도 내심 그런 풍조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Yankee Dodgers나 New York Yankees 같은 구단 이름을 스스로 붙이는 것보면 귀엽다 할까. 

스위든 여자들도 뛰어난 미모로 유명한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건 필시 햇볕이 약한 북구의 환경 때문 아닐가 싶다. 물론 그들의 괜찮은 유전인자때문이라고 쳐 준다해도 햇볕을 덜 받으면 피부가 하얘져 백옥같은 미모가 되어.. 우리도 남남북녀라고 햇볕 강한 남쪽에 비해 북쪽여자들이 미녀가 됨은 당연하겠다. 도시여자들이나 양반집 규수들의 외모가 뛰어났던 것 보면 그것은 햇볕아래 노동과 반비례했음이니 비 자연적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농촌에 살 때도 여인들이 농한기인 겨울이면 방안에 들어앉아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며 노는데 그 겨울이 지나고나면 그들의 얼굴이 모두 완전 다른 거의 잘생긴 쪽으로 변모하는 것보고 놀라곤 했다. 어쩻든 스위든인처럼 남녀 공히 희고 고운 피부는 사람을 훨씬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엔 기온의 차이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더울 땐 피부트러블이 잘 일어나지만 추우면 피부는 깨끗해진다고 볼 수 있으니. 

내가 처음에 서울에 대학시험을 친다고 올라와보니 서울 여자들이 부산 여자들보다 엄청 더 예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애들도 서울 유학와서 서울 아가씨들에게 반하는 이유가 다 그런데 있었을 게다. 왜 그렇게 모두 얼굴들이 백옥같이 아름답던지 그래서 남녀 공히 귀티가 철철흘러 보였다.가만 보니 서울은 부산보다 기온이 보통 평균 3도나 5도 정도는 낮은 것이 이유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후천적인 조건들은 세월이 쌓이면 선천적 조건으로 굳어져 버리는 것 아닐까. 그래서 유럽도 추운 북쪽에 미남미녀가 많은 것 아닐런지. 

 

옛날엔 여자는 곱상해도 남자는 좀 우락부락 거친 것이 남성답다 했지만 요즘은 어찌된 셈인지 남자도 씨스터보이라고 예쁘장한 걸 쳐주는 추세이니 미추의 개념도 상대적으로 변하는가 보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미남배우는 송중기로 치는데 그는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미모이다. 그 칠푸니도 무슨 드라마를 보고 그에게 반해 청와대로 불러들였었는데 나중에 그에게 27억인가를 보내주었다한다. 그거 다 세금에서 나갔겠지 싶어 한심했지만 그건 어차피 국내에 있는 돈일 것이고 대신 그 미모로 해외에 드라마를 수출해 몇배로 달러를 잘 벌어들였다하니 봐주기로 한다.

 

 

유럽인들은 은근히 미국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역사를 보면 도찐개찐 다 도둑놈들이다. 조금만 힘이 세지면 배를 끌고나가 어느나라든 침범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고 노예를 삼아 식민지화 하였으니 지금은 좀 조용한 것 같지만 네델란드 벨기에같은 나라들도 한 때는 다 강도들 두목이었다.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위든 조상도 바이킹 해적들이었으니 아무리 속으로 콧대를 높여봤자 영국 미국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가질 처지는 아니다. 먹이를 두고 싸우는 야수들처럼 한나라가 강해져 독식하면 서로 싸워 지는 쪽은 얌전해져야 하니. 어쨋든 그래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라는 똑똑하고 당찬 세계적 환경운동가 소녀를 배출한 스위든은 만만히 볼 나라가 아니다. 노벨을 낳은 나라이기도 하고.

근래 가장 강했던 나라는 영국이었고 세계대전 후엔 미국이,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지금은 그도 분명 기울어져가고 있다. 다음의 강자는 약탈의 나라가 아닌 제세이화 홍익인간의 나라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최종 뜻이려니.

 

그 남편은 자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 가족들을 데리고 일년에 한번 이상 스위든을 방문하여 부모님을 뵙고 아이들에겐 철저히 스위든어를 가르치면서 언젠가는 스위든에 가서 사는 것이 꿈이라 내가 조카에게 미국은 언제 쓰나미로 태평양밑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르고 여러모로 불안하고 위험한 나라다 왜 지금이라도 그 나라로 이민가지 않는가 라 물어보았다. 환경오염도 심하고 언제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이 날아올지도 모르는데.

오 그건 이모가 그 나라에 안가봐서 하는 말이에요. 나라가 온통 숲과 정적으로 뒤덮혀있어 한두시간을 달려도 인가를 보기 힘들고 온종일 사람 보기가 힘들고 조용하기만 해서 미쳐나가요. 한달간 견디기가 감옥살이보다 더해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기만 기다려지고 미국돌아와 쌘 프란시스코의 복잡한 거리와 사람들을 보면 아 여기가 바로 사람사는곳이구나 싶어 행복해져요. 한달도 견디기 힘든데 평생을? No way!

아 거기야말로 바로 내가 바라는 지구상 천국이구나 싶은데. 국토는 남한의 4배이상인데 인구는 천만명밖에 안되니 얼마나 쾌적할까..  그러나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한 내자신도 장담 못하겠지. 그 남편이름으로 넓은 농장과 큰집이 있지만 그건 바로 엄청난 노동을 요하는 것이라 대신 하나 남은 가족인 그 누나가 대신 경영해주고 있다한다. 도시에만 사람들이 좀 모여살지 보통 시골집에선 마트에 한번 가려해도 한두시간은 달려야하니 불편하고 외로워 살기 힘들다 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하긴 정치적 어떤 위험도 투쟁할 어떤 대상도 이쓔도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건 좀 밋밋하고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다. 김용옥말처럼 일본에만 가도 하루이틀만 지나면 활기가 없어 맥이 빠지는데 우리나라에만 오면 활기가 넘치고 사는 의욕이 넘친다한다.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기다리던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가서 상담한 결과 결국 인공수정으로 겨우 임신을 하게된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거의가 다 쌍둥이를 낳게 되어 그들도 이란성 쌍둥이로 남자애 여자애를 낳는다. 아이둘 수발과 집안 청소 음식장만과 시장가기 등으로 너무 너무 바쁘게 보내어 하루가 어찌 지나는지 정신을 못차리니 밖에나가 자신만의 전공을 펼칠 엄두도 못내게 된다. 인건비가 너무 비싼 나라라 도우미 한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고.

유아원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그 모든 곳을 조카가 차로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것만 해도 하루가 다 가고 더구나 과외로 사립학원에 가서 무얼 배워야하기 때문에 운전수 노릇만으로도 세월 다가고 게다가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여러 학원을 가는데 그것도 두아이 취미가 달라 각기 다른 학원을 가야 했으므로. 예로 남자애는 유도학원에 여자애는 미술학원에.. 그외 남자애는 트럼핏도 배우려하고 여자애는 발레이를.. 한명 당 서너곳을 다니고 싶어하니. 그것도 갈 때 올 때 모두 차로.. 그녀의 생활이란 참으로 고생스럽기 짝이 없어 내가 방문했을 때 물어보았다. '지금 이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에서 행복하냐'고. 그녀는 '아 물론이에요. 나는 지금 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해요.' '그럼 되었다. 더 안묻겠다. 애들이 대학들어갈 때 까진 그냥 죽었다 하고 참아라'했다. 미국애들은 18세가 되어 대학입학하면 모두 집을 떠나기 때문이다. 만일 그때가 되서도 집에 있거나 집에서 대학을 다니면 모두 바보나 덜 떨어진 애로 취급한다. 그러나 지금 세계 경제상황이 나빠져 미국도 18세가 아니라 20 30이 넘어도 취직을 못하고 부모집에 캥거루처럼 붙어사는 애들이 많으니 참 불쌍하다. 

 

우리나라처럼 버스나 지하철같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란 참으로 불편할 것이다. 더구나 애들혼자는 위험하다며 그런 대중교통은 피해야하니 엄마들이 얼마나 피곤한가. 그 모든 것을 쌍둥이라 곱하기 2로 해야하니. 낮은 그렇게 보내고 다음날을 위한 모든 음식준비 등 집안일은 밤에 혼자 부엌에서 해야하니 하루 서너시간밖에 못 잔다한다. 가족을 위한 음식은 성의를 다해 미국식 인스턴트는 절대로 입에 못대게 한다니 좀 적당히 할 순 없나 싶다. 조카는가족을 위해선 적당히 하는 것이 없고 모든 것에 성의를 다하니 몸 하나로는 견딜 수도 없다.

그렇게 하여 언니는 조카가 사회활동을 못하는 것이 그 사위탓인 듯 늘 불만이 많다. 사위도 나름대로 애들 목욕도 도맡아 시키는 등 많이 돕고 있지만 극심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직장일도 목숨 떼놓고 해야 하는 판이라.. 어쨋든 둘 다 자식들에게 너무도 헌신적이다. 언니는 내게 전화를 할 때마다 그애는 너무너무 바빠.. 하며 울먹인다. 딸은 자기의 전화도 제대로 받을 틈도 없다면서. 내가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그애가 행복하다면 이해해 줘야한다'라 해도 그 말도 주관적인 것이라 언니에게 먹히는 말은 못된다. 

 

나는 그들이 쌍둥이를 낳았다하여 무슨 특별한 좋은 선물을 보낼까 하다가 퀼트 이불을 두개 만들어 보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날씨가 좋아 겨울에도 영상 1도 이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집엔 히터(보일러)설치가 거의 없어 겨울엔 참 춥게 느껴진다. 이불도 솜이불이 없어 얇은 담요만으론 두개를 겹쳐 덮어봤자 추울 수 밖에 없고 아무리 추워도 내복은 안입으니 참 불쌍하다. 나는 옛날 '융'이란 면종류로 폭신하고 따뜻한 천을 구해 사다가 조각조각 일일이 바느질로 이어 붙이는 수고(!)를 마다않고 속엔 얇은 솜까지 넣어 아주 예쁘고 따뜻한 겨울이불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미국인들은 무엇이든 손으로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걸 최고로 치는데 그걸 받고 그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 두사람은 너무도 감동받아 눈물을 다 흘렸다한다. 두이불은 색깔을 서로 다르게 하여 이불 겉면에  만년펜으로 애들이름을 써넣고 From Imo Grandma (이모할머니로부터) 라 써 넣었는데 애들도 그 이불을 너무 좋아하여 그것만 덮고 자려 했다고. 훨씬 따뜻했으니까. 미국은 그놈의 면화를 기르기위해 악랄하게 아프리카 노예들까지 동원했으면서도 그 면화로 솜은 만들지않아 솜이불이나 솜옷은 생각하지 않은 것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세계인들 누구도 아무리 추워도 온돌방을 생각해내지 못한 것 처럼.

몇년 후 내가 그 집을 방문했더니 한즈(Hans 스위든의 흔한 남자이름)는 '얘들아 이분이 바로 너희가 그리 좋아하는 이불을 만들어 보내주신 이모할머니란다'하니 세살된(만이니 네살) 아이들도 당장 내게 안겨 좋아한다. 나로선 그 이불을 만든다고 그해 겨울 한달 내내 손끝 아프게 욕본 셈인데 수고는 한달 뿐이었지만 그 선물은 두고두고 감사의 칭송을 받았다. 실상 내 평생 그만큼 큰 정성을 들여 누구에게 선물을 해본 적은 없다. 언니도 덩달아 내게 고맙다 야단이고. 하긴 그것은 언니의 손자이니 언니를 위해 내가 성의를 낸 것이지만. 

맨날 그것만 덮고 자니 자연 낡을 것이고 이불은 같은 크기로 머물러 있는데 애들 키는 자꾸 자라니 맞지 않을 것이라 몇년 후 이번에는 중고생이 되어도 덮을 수 있도록 좀 크게 봄 여름 가을 용으로 (솜은 넣지않고) 다시 퀼트로 이불을 두개 만들어 보냈다. 색색이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기란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좋아해주니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  한국사람들 한번 신바람이 나면 못말리는 것 있지 않은가. 좀 더 크게 만드려니 노력은 배로 들어갔지만 어쨋든 그들은 또 한번 자지러진다.

 

조카는 심성이 정말 착하고 따뜻하여 남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고민을 잘 들어주니 천상 심리상담가로서의 자질을 잘 갖추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친구들 지인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문제의 포인트를 딱 끄집어 내서 가장 잘 맞는 조언을 해주며 돕고 있고 누가 입원을 하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그 바쁜 중에도 가서 밤샘하며 병수발도 해주는 등 천사가 있다면 바로 저럴 것이다 싶었다.

나 역시 그녀와 통화를 하면서 매번 큰 위로와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구분도 할 수 없었다. 아쩐 일인지 나는 나의 친엄마나 언니보다 그애에게서 더 따뜻한 모성같은 걸 느낀다. 물론 나는 그애의 바쁜 생활을 고려하여 절대 먼저 걸지는 않았고 그애가 먼저 걸어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애의 바쁜 생활과 국제전화비를 고려하여 이메일을 보내주기 시작하였다. 그애가 밤 늦게 내 메일을 보고 답을 보내는시각을 보면 항상 새벽 서너시나 된다.

나는 언니가 가고난 후 언니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등 슬프고 혼란스러워 우선 내가 제사를 지내 주기로 하였다. 그 영혼이 과연 제사에 와서 먹어주는지 자신이 없었지만 어쨋든 다른 수도 없었다. 그 제안을 그 남편과 딸에게 말했더니 자기들은 제사를 지낼 방법도 모르는데 지내주어 대단히 고맙다며 제사비용까지 보내 주었다. 나는 그럴 필요없다 내가 다 알아서 지낼 테니 돈은 보내지 말라해도 그들은 자신들도 비용을 부담할 권리가 있다며 완강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니에 대한 권리는 어느모로 보나 남편과 딸이 나보다 먼저 0순위이고 나는 그다음 아닌가 싶어 가만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카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솔직히 니 엄마가 과연 오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등 심경을 써 보냈더니 그애는 금방 내말의 포인트를 캐치하고 당장 그 해결책을 강구하기위해 움직였다. 바로 그 다음 날 그애는 유명한 한 심령술사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 심령술사가 말하기를 네엄마는 지금 룰루랄라 세계를 날아다니며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 그 얘긴 언니는 생전에 세계여행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세계를 좁다며 다녔으니 그 습관이 남아 그러겠다 싶어 수긍이 갔다. 그리고 한국의 제사엔 매번 참석해서 음식을 잘 먹고있다. 제사때 아니라도 평일에도 자주 동생을 찾아가고있다. 나는 언니라면 충분히 그럴거라 싶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놀란 것은 다음 말인데 '네 엄마는 지금 baby brother의 손을 잡고 서있네. 그의 손을 잡고 같이 세계여행도 다니고 제사에도 같이 참석하고 있어.' 라 하더라고 조카는 내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내 위에 아들이 죽어 대신 그 아들을 다시 보려고 낳은 것이 나라서 우리 부모는 큰 실망을 한 것인데.  그 얘기는 그 후 가장 피해를 본 나외엔 모두 잊어버린 것인데. 그리고 나와 언니는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조카도 전혀 모르는 일이니 그 심령술사는 더욱 몰랐을 것이고.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흘러 다음 제사부터는 나의 아기오빠를 위해서도 아기밥과 탕도 놓고 앞에는 유아용 우유한잔과 과자 한접시도 놓고 절을 하였다. 수십년간 혼자 외로이 배고팠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왜 나는 그동안 그의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나는 다만 내가 고생스러울 때마다 왜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 대신 내가 태어나게 하여 이 고생을 하게 하는가 하는 원망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언니가 생전에 말해준 그의 이름은 기억을 하고있어 지위를 써 붙여놓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희 불쌍한 아기외삼촌이라며 절을 시켰다. 그들은 소설같은 내 얘기에 감동을 받아 정성스레 절을 한다. 엄마가 태어나기 전에 삼촌이 있었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 극적인 것이었으니.

 

조카도 내 얘기에 놀라 그후 그 남편과 딸은 상의를 다시 했던지 처음엔 한사람당 300불(약 30만원)을 일년에 두번 명절마다 보내던 것을 그 후 다시 500불 씩으로 올려 보내 둘이 합계 1,000불(100만원 요즘은 환률이 올라 훨씬 더 높을 것이다)이나 되어 양심상 다시 3백불만 보내라 해도 듣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수고비를 치는 것인지. 

제사를 지내며 나는 언니에게 이 모든 음식은 두사람이 도와주었다는 것과 두사람의 소식을 이것저것 전하고 있는데 제사 후엔 미국에서 어떻게 지냈냐고 전화하여 그런 것을 다 말해주면 대단히 흥미로워하며 고마워한다. 물론 제사상앞에 향을 피워놓고 절하는 모습등을 사진으로 찍어 메일로 보내주기도 하는데 너무 흥미롭고 고맙다고 야단이다. 그 모든 음식을 어떻게 다 요리했느냐며 놀라면서. 

 

이 모두 그 심령술사덕에 언니가 실지로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나를 무슨 그 중간존재나 되는 듯 믿고 추앙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무속을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쳐버리는데 세계 어디서나 그들은 성행하고 있다. 실상 현대의 과학이란 우주적 진리에 한참 뒤쳐져 있는 것이란 걸 무식한 현대인들은 모른다. 나도 솔직히 나의 언니가 정말 그렇게 오고 있다고 100% 믿는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믿고 싶을 뿐. 그 심령술사 덕에 전엔 한 30%쯤 믿던 것이 99%쯤 믿게 되었다 할까. 아니 내가 믿는데로 이루어진다는 양자역학적 이론은 믿기에 100%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독교가 그토록 성행하고 있는 것도 다 그 양자역학 이론 덕일 것이다. 무조건 믿어라 믿어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옛부터 우리나라에 무슨 심리상담소나 정신과 병원같은 게 전무하던 시절 그들은 민중들에게 큰 위로와 의지가 되어온 것을 어찌 과소평가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런 경우를 보더라도 무해백익 모두 위로를 받고있지 않은가. 한가지 다른 것은 미국에선 그들에게 가는 것을 일종의 심리상담소로 가는 듯 그리 부끄러워 하거나 경멸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하느님께서 나의 오빠를 불러들이고 대신 나를 다시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가 상상해 볼 때도 있다.

 

 

 

(나는 이번 글도 길어져 두 부분으로 나누어 반은 다음으로 넘기려 했는데 내용이 중간에 끊어지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 그냥 싣는다. 길고 짧다는 것도 하긴 상대적인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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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kbsns | 작성시간 22.06.21 조카의 사연이지만,
    여러가지의 세부사항들과 연결된 내용들이
    생활속에서 벌어진 사연에 얽힌 이야기들이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이쁜 따님들과 함께
    항상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하이고 | 작성시간 22.06.22 이런글을 쓸까 고민하다 올립니다.

    사실 저도 인간이 왜? 세상을 태어나고 살아가는데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역사란것에 대해 공부했지요.

    그리고 한단고기 부도지까지 갑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에 역학까지 공부했습니다.

    당연히 기독교나 불경. 하다못해 강증상선생까지 공부했지만 도무지 풀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기와 더불어>를 알기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총 8권중에 겨우 2권정도나...

    봄호수란 닉네임을 쓰시는 김태정선생님의 개인 블로그에 있었습니다.

    우연히 제가 카페지기가 된후 김태정선생님께서 메일이 왔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여러말씀을 하신후 <세기와 더불어>란 글을 올려도 됩니까?

    전 기꺼히 수락했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아마 총 4~5개월이 걸린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기와 더불어>가 끝나자.

    김태정선생님께서 나한테 부탁을 합니다.

    <항일 회상투쟁기>를 올릴수 있나고...

    당연히 저는 올리시라고 했습니다.

    그당시 저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힘겨운 법정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감옥에서 2년을 살고나온후...

    어이없게도 <마당거우밀영>이란 카페는
  • 답댓글 작성자하이고 | 작성시간 22.06.22 사라지고 <주체사상연구회>란 카페는 존속하더군요..

    사실 <주체사상연구회>는 <마당거우밀영>이란 카페가 폐쇄되자 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소한도

    <세기와더불어>란 글만 올릴 생각이였는데 내 생각보다 하루이틀 빨리 공안들이 들이 닥치더군요...

    2년 감옥생활후 <주제사상연구회>란 카페가 존속한것을 알고 비공개로 돌린후 즉시 <세기와 더불어>란 글을 올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봄호수 김태정선생님께서 메일이 오더군요.

    <하이고님. 고생하셨슥니다. 라고 시작한 메일은 왜? <주체사상연구회>가 비공개로 되었는지에 대해 안탑갑다는 내용이였습니다.

    저는 즉시 세기와 더불어하고 중요한 몇몇글을 올리기 위해 작업하고 있고 끝나면 즉시 공개로 돌리겠습니다.

    란 뜻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몇달후 봄호수 김태정선생님께서 한 많은 이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하이고 | 작성시간 22.06.23 하이고 지금은 <세기와더불어>란 글을 포탈에 쓰면 누구나 그글을 읽을수가 있고 심지어는 돈을 주고 책으로 살수가있습니다.

    범민련 서울의장님이시였던 김규철선생님께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세기와 더불어>를 읽어봐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인터넷에 <세기와 더불어>를 쫙! 뿌리고 있으니 얼마나 이쁘겠습니까?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어 수감되어있는 동지를 같이 면회후 김규철선생님께서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같이 동행했습니다.

    간곳이 대방역 옆인가 ...
    한끼에 5000하는것으로. 아는데 ...
    2년여전에 통일도 못보시고...

    ...

    통일운동이라...

    너무도 힘들고 고독한 싸움입니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이나라에서 나아갑니다.


    ...


  • 답댓글 작성자산비탈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23 하이고 
    매일매일 너무도 감동스럽게
    잘 읽고 잘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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