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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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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의 동지들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남달랐다. 그의 회상글은 그 훌륭한 전우들을 잃은 애통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분들은 우리 천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 던지셨으니 그토록 의롭고 용감하고 사랑에 넘치고.. 과연 그분들은 우리 단군의 부끄럽지않은 후예셨다. 지금의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최창걸의 유가족들을 만나고싶어 부대를 데리고 고산자로 향하였다. 최창걸의 부인은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사내아이와 시동생과 함께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 부인이 참으로 강의한 녀자였다. 그 녀자는 우리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남편의 소원이 총을 잡고 왜놈들과 싸우는것이였는데 그 남편을 대신하여 자기가 싸울수 있도록 유격대에 받아달라고 청원하였다.
우리는 예정을 바꾸어 유가족들의 곁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부대가 고산자마을을 떠날 때 최창걸의 미망인은 멀리까지 우리를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나는 무슨 말로 녀인을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 아이를 안아들고 그 애의 볼을 다독여주었다. 이가 두개밖에 나오지 않은 사내애는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았다. 아이는 나의 얼굴을 만지면서 《아빠》,《아빠》하였다. 그 광경을 보고 애어머니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였다. 나도 눈굽이 저려올라 아이의 볼에 볼을 대고 한참동안 고산자마을쪽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아주머니, 이 애를 잘 키워 아버지의 뒤를 잇게 합시다!》
나는 목이 메여 그보다 더 긴 말을 할수가 없었다." (실지로 그 아들은 훌륭한 투사로 키워져 20대에 어느 항일 전투에서 전사한다.)
남자든 여자든 모든 일반인들은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하고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겠다. 자신이 악인이 아니라면.
유능한 지도자란 순수한 감성과 깊은 애정이 있어야함은 물론이지만 그것만이라면 일반인중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명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그리고 과학적인 분석과 실천력도 함께 요구된다면 거기에 합당한 지도자를 찾기란 힘들 것이다. 예로부터 임금은 하늘이 내리신다는 말은 참으로 일리가 있다싶다.
훌륭한 지도자를 마음깊이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많은 이들을 본다. 자신들이 확실한 깊은 애정을 받고 있다는 믿음. 비전향 장기수들의 그 확고한 믿음은 어디서 나왔겠는가. 지도자의 필수 조건은 사랑이다. 동지에 대한 사랑 인민들에대한 절대 사랑. 인민들을 자신이 밟고 올라갈 개돼지로 보는 것이 아닌.
나의 아버지가 구속되어 그토록 고초를 겪으신 가장 큰 이쓔는 동지들의 향방을 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실제로는 풍부한 감성과 여린 마음도 있었지만 겉으로는 될 수 있으면 그걸 감추고 강인한 체 평생을 투쟁에 바치시었다. 제자들에게는 특히 강한 의지력을 표력하셨는데 아버지도 인간이 이상 왜 약한 감정이 없으셨겠는가. 그러나 그런 면을 하소연한다할까 다 나타내 보일 사람은 내가 보기에 평생 나 한사람밖에 없었다. 나는 단순한 자식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이해가 가능한 제자이기도 했으니 이 두가지가 다 가능하기란 참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버지의 느낌을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본다. (그건 나의 비극이기도 했다) 갓난아기떼부터 울보였던 나는 우는 것엔 도가 터서 평생 슬픈 것만 대하면 눈물부터 흘렸다.
아버지는 오직 나에게만 토해내신 지나온 장면들이 많았는데 예를들어 그 혹심한 고문받던 심정 같은 것.. 지금 생각하면 아버진 내게 너무 심하시었다. 어리고 감성이 여린 여자애가 어찌 그 충격을 다 감당하라고.. 허지만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한사람에겐 말하고 싶으셨겠지. 아버지의 지나온 얘기들을 들으며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고문을 심하게 받으면 인간으로서 의지력이나 판단력 같은 게 다 없어져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 나중엔 무엇을 물으면 그냥 아는 것을 답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유난히 취조를 오래 끌어 그런 상태로 접어들었던지 동지의 행방이 거의 입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갑자기 우리 할아버지의 영상이 눈앞에 뚜렷이 떠오르며 "네 이놈, 정신차려라"라 호통치시어 정신이 드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한번도 동지들을 배신한 적이 없어 참 다행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동지애는 유별나시어 나는 평소 혹시 아버지는 자식들보단 동지나 제자들을 훨씬 더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섭섭함도 좀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서 이제야 이해가 간다. 가족은 단차원적인 동물적인 사랑의 관계라면 동지들은 그보다 민족사랑등의 유대로 연결된 훨씬 높은 차원의 관계라는 것을.
나는 국민학교시절부터 그런 아버지가 불쌍해 학교 숙제만 끝내면 공부할 것이 많아도 밤마다 몇시간이고 아버지 전신 안마를 정성을 다해 해 드렸는데 팔이 아팠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망가지신 몸을 치료해 드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참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드렸다. 초중고생 내도록 구년간(나는 월반을 하여)을. 아버지는 늘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계시지도 못하였고 다리가 아파 잠도 못이루며 고생을 하셨는데 내가 안마를 해 드리면 아아 시원하다 하며 잠도 잘 주무시었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깊은 산속의 한 초능력자의 치료를 받으러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분 말씀이 나는 분명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적지않은 기를 빼았겼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게 치명적이 되어 평생 기가 약한 상태가 되었다고. 하긴 그래서 아버지는 오늘내일 할 것처럼 늘 병약하시면서도 88세까지 오래 사셨단 말인가.. 아버지는 동지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도 가장 오래 사신 분이셨다. 그대신 나는 평생 허약체질로 고통을 받았고. 그것이 내 운명이라해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나의 인생에서 그것은 작은 보람이 되어 흔적으로 남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 때 내가 혹시라도 미리 그 사실을 알았다해도 나는 더 기쁘게 아버지를 안마해 드렸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크게 잘 싸우셨는데 어머니는 봉급을 받으면 여늬 주부들처럼 뒤주에 쌀부터 가득 채워 놓으셨다. 그런데 출근 후에 아버지는 그 쌀을 포대에 퍼담아 해방후에 이승만정권에 의해 다시 감옥살이를 하고있는 동지들을 위해 그 굶고있는 가족들에게 갖다 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속이 뒤집혀져 '무슨 사내가 처자식 벌어먹일 생각은 않고 기껏 벌어온 쌀까지 퍼나가느냐'며 소리를 지르시고 아버지는 '이 민족의식이라곤 없는 여자야'하며 맞서시고.. 어머니는 평생 그런 아버지에 대한 욕을 내게 털어 놓으셨는데 나는 중간에서 두 쪽 다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어 그 갈등 속에 괴로울 뿐이었다. 차라리 내가 한 쪽편에서만 설 수 있었다면 덜 괴로웠을 것을. 그놈의 공자 수신제가 타령은 그렇게 어려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 아기때부턴 어머니때문에 커선 아버지 때문에도 많이 울었으니 부모님두분다 내 눈물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부하가 걸렸던지 요즘은 울고 싶어도 별로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름하여 '건안'이라고 눈물이 말라버린 것 같았다. 적당히 중용의 상태는 없는 것인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성주의 글들을 읽으며 요즘 나는 그의 동지애에 동포애에 자주 눈물이 새로 솟는다.
그의 글은 주로 1930년대부터 쓰여졌는데 "조선민족만큼 정에 잘웃고 잘우는 민족이 또 어디 있겠는가." "금전이 만능의 수단인 자본주의를 우리는 용납 못한다." 같은 문장을 읽으며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 한민족의 동질성은 고스란히 있구나 싶어 또 눈물이 난다. 눈물이 마른 게 아니라 깊이 가라앉았던 것이 새로 솟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눈물이 나도 안참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Let it be, let it be...
한번은 아버지께 '그런 악랄한 고문을 아버지는 어찌 견뎌 내셨어요?' 했더니 내 나라가 풍전등화로 망하게 생겼는데 내 몸하나 부서지는 게 대수냐, 열번이라도 내 조국앞에 내 한몸을 바쳤을 것이다'라 하시어 눈물이 왈칵 났다. 지금도 그 말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몇일 전 공즉시색님이 올리신 잔혹한 형구 그림을 보며 그 후 내 가슴 속 눈물은 더욱...
"인민의 사랑속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고 인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것은 나의 일생을 관통하고있는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다. 지난날에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나는 인민의 사랑을 받는데서 최대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있다"
"수도시민의 과반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문명이전의 초라한 움집들과 단간집들에서 살고있었다. 그들은 모두 항일, 항미의 불바다속에서 이 세상 그 어느 민족도 겪어보지 못한 참담한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해온 사람들이다. 세상에 우리 인민처럼 피를 많이 흘리고 찬바람을 많이 맞고 끼니를 많이 굶어본 인민이 또 어데 있겠는가. 저사람들을 위해 좋은 집들을 더 많이 짓고 좋은 천을 더 많이 짜내고 좋은 학교들과 휴양소들과 병원들을 더 많이 건설하자. 그리고 이국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을 더 많이 데려오자. 이것이 나를 촉한에서 구원해주고 사지에서 건져준 인민을 위해 내가 할 한생의 일이 아니겠는가."
"바다물속에서 진주를 캐내듯이 한명 한명의 힘들게 캐내는 동지가 우리 혁명의 <황금>으로 되고 혁명을 상승시키는 필수불가결의 추진력으로 되고있던 그 시절.." 그러므로 그 동지들은 서로의 보물이 되었던 것이다. 영하30도도 더 내려가는 북만주 남만주 등에서 한겹 옷만 입고 몇일을 굶으며 전진하다 산속 나무에 말라붙은 열매를 하나 보면 그 한알을 서로의 입속에 넣어주던 우정. 왜 그들은 그런 3죽을 각오로, 실지로 그렇게 죽어가며 나아갔을까. 그것은 일제로부터 우리 조국을 지켜내기 위한 사랑이었다. 동지들에 대한 사랑. 조국을 지키기 위한 사랑.
이런 진심을 읽고 가슴깊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더 비정상 아닐까.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재산의 유무나 대소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사람을 평가하는 나의 기준은 그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인민을 얼마나 사랑하며 조국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데 있었다. 부자라고 하더라도 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으로 보았고 무산자라 하더라도 조국애와 인간애를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면 좋지 않은 사람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말하여 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사람을 평가하였다." 참으로 나의 가치관이나 사상이 비슷하다(감히 같다고 말할 순 없고)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 버렸지만 만날 수만 있다면 내 그와 한번 술 한잔이라도 나누며 대화를 나눠보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일제는 온갖 야비한 방법을 동원하여 견실한 우리 혁명가들을 모해하였으며 우리가 서로 상대방을 의심하고 경원시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사람과 중국사람, 로동자와 농민, 상부와 하부간에 호상 믿지 못하게 하고 서로 리간시키는 전술을 써서 공산주의자들끼리도 싸우게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놈들이 저지르는 수법은 똑같다. 그들을 멸살하지 않고는 그들을 살려서 회개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하느님은 우리 한민족 바로 가까이에 그런 나라를 두셨을까.. 이제 드디어 하느님께서 내년 2023년 후반기부터 일본을 바다밑으로 쑤셔 쳐넣으실 것이라니 그것은 위대한 우리 천손민족을 수백년간이나 괴롭혀 온 업보렷다.
130만 일본놈들이 국적세탁을 하여 한국에 온갖부를 누리며 살아 왔다해도 하느님은 그들을 잘 구별하신다. 알곡과 뉘를 구별해 내는 건 하느님의 전공이시니. 한국인이면서도 그들에 붙어 친일파로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을 핍박해 왔고 그 덕으로 평생 호의호식해온 자들도. 실상 그들이 일본놈들보다 더 악독하다. 일본놈들은 세탁을 했다해도 자국을 위한 것이지만. 김구선생도 총알 한방이 남았다면 그 친일한 한국인들 쏘겠다 하셨고 나의 아버지도 그들을 제일 미워하셨다. 아버지를 집요하게 쫒아다니며 구속을 해넣고 가장 악독한 고문을 한자들도 그들이었다. 조선인이란 약점을 카버하려고 일본인들보다 더 열심히 조선인들을 잡아들여.. 그리하여 조선인순경들 중 가장 악랄한 댓가로 승진한 자들은 해방후 스스로 지은 죄를 알고 제일 먼저 도망가 숨어버렸지만 이승만은 그들을 다시 모셔내와 고위직에 앉쳤다. 해방 후 경찰서장들은 거의 그런 자들이었고 다시 좌익색출이라며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갔더니 일제 때와 같은 장소에서 나를 고문하던 같은 놈이 똑같은 방법의 고문을 하는데 죄목만 '빨갱이'라고 바꾸고 모든 것이 똑같았다. 우리는 해방된 것이 아니다" 라며 비통해 하셨다. 그것은 아버지 뿐아니라 남은 모든 동지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분들의 죄목은 북진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 그것은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으므로 빨갱이라 했다. 나의 아버지는 북쪽편도 남쪽편도 아닌 평생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하셨는데 어쨋든 남쪽편만이 아닌 한 그것은 공산주의자였다. 더구나 시종일관 북과 같은 반일 반미셨으므로.
이런 글은 내 평생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이제 까만 커튼뒤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털어놓는 것은 이 까페 회원들이라면 이해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커튼이 없다면 즉 내 이름과 얼굴을 까발린다면 나는 부끄러워 입을 못열었을 것이다. 지난 날의 내 농장생활 결혼생활서 부터 미국얘기등등.. 아버지가 내게 자신만의 얘기를 하셨듯 나도 어디 한군데에 나의 얘기를 털어놓을 곳이 있어 댜행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 두분은 어린 내가슴속에 우리민족의 거대한 문제점과 모순의 소용돌이를 제공한 분들이고 아직도 그것은 내 속에 계속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이 단순한 문장의 뜻을 이해할 사람들이 이 까페말고 어디에 있을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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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마고본성 작성시간 22.07.22 cibies
명철한 復本同志의 말씀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한순간도 쉼없이 은밀하고도 힘차게 박동하는 생생한 천부의 脈을 짚어
원상회복하고
사해동포와 더불어 실현된 삶을 구가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깨어있는 한민족인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기와 더불어
천부사상과 문화의 맥이 응결된 조국의 강산을 지켜내고
민족의 평화적 통일과
본성회복으로 천부정립#
복본에 대한 동지를 갖는다함은
첫째로, 근본을 보위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立志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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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산비탈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7.22 cibies 인간 본성의 선함과 의리를 제대로 갖추고 실천하는 동지들이 똘똘 뭉쳐 세운 나라이니 어느 큰 제국정도가 아니라 화성인들이 쳐들어와도 주체적으로 다이아몬드 처럼 끄떡없는 나라가 되었음이 당연하겠지요.
사리사욕으로 외세의 눈치만 보며 인민을 개돼지로 보는 위정자가 다스리는 나라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이고. 하루라도 빨리 무너져야 우리 인민들이 행복해 질텐데..
cibies님 명쾌한 분석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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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마고본성 작성시간 22.07.22 산비탈양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산이
우리 조선에 있는 것이
진리적이고도 천부적인 것이지요.
금강산 속 보현사 경내에
부도지에 나오는
천부인 마고대성/허달성과 실달성을 증리할 두 개의 탑이 있습니다. -
작성자하나둘셋 작성시간 22.07.25 정말 훌륭하신 우리 선조 선렬 투사지사님들의 이야기입니다. 님은 그런분을 아버님으로 모셨으니 정말 부럽기도. 그생활속에서 온전히 그정신을 계승 지니고계신 님에게 존경심을 느낌니다. 저도 희미하나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있는데 . 그것은 아무리 좋은이념이나 훌륭한 지식과 경력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분이라도. 그 바탕에 나라와 민족과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 그리고 그를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치고도 기뻐할줄 모른다면 자중할줄 모른다면 그것들은 한갗 물거품이 되어버릴수도있고 오히려 그것이 독이되어 민중들에게해악이 될수있다는 생각입니다. 인면수심. 면종복배하는 저 무리들처럼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산비탈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7.25 저는 그동안 막연하게 나의 아버지를 존경하고만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확연하게 깨닫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 인가를.
아버지가 어떤 사상으로 바탕으로 자신을 조국에 바치셨나가 실감되는군요 . 내가 그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몇백만분 일 정도의 확률로 피동적으로 태어나져 있다는 것이 로또 당첨보다 더 행운인 것이라고.
내가 매국노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자면 저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마땅한 의무를 행해오지 못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