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라 앞날과 젊은 애늙은이를 보면서
80년대 가난한 집안 6식구 나만 쳐다본 먹고 사는 문제와 사회민주화 운동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알면서도 사람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염치없이 살았다.
돈도 없고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해서 학원 대신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뛰어놀게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고등학교 졸업 성적이 전교 245/247명중으로 나왔다. 상근예비역 대신 현역으로 보내 특수부대에서 군 생활을 마쳤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아이들도 나처럼 마음껏 즐기며 놀았다. 군을 마치고 하고 하겠다 하더니, 전교 토플 1등해서 국비로 유학도 다녀왔다.
삼성에 들어가 비젼대회 대상도 받았다. 적성 맞지 않아 공기업으로 옮겨 잘 살고 있다.
딸도 고등학교 때부터 자퇴와 입학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졸업 뒤 기술사 자격을 몇 개 따서 바라는 직장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 간다.
다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
돌에 짓눌린 어린 싹이 제대로 클 수 없듯이, 부모의 욕심과 간섭이 자식을 망친다.
다 큰 자식을 업어주고, 입에 밥까지 떠넣어 주며 내 자식이 귀하다고 오냐오냐 하는것은 자식 스스로 사는 힘을 죽이는 것이며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다.
사랑이 아니라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죄악이다.
부모의 욕심과 맹목적인 자식 사랑은 자식을 바보로 만들고, 부모의 등골 빠져 둘 다 죽이는 짓이다.
자식 교육은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올바르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뿐이다. 바라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불평등과 불행의 원인은 공짜로 자식에게 부와 모든것을 물려주는 것이다.
아는것은 나부터 실천 하기로 했다.
아껴 쓰다 남은 것은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나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식도 내 재산을 넘보지 않게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검소한 생활습관과 건강관리로 스스로 힘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이나라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스스로 힘으로 살겠다는 도전 정신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2030 청년들이다.
농촌과 중소기업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외국 노동자 들이 우리일을 대신 한다.
사대매국노당을 묻지마 막찍어
선량한 이웃에게 피해만 주고
주식과 부동산. 쉽고 편하게 살려는 헛된 것을 꿈꾸며 도시로 다 떠난 젊은이들
...
이때는 생리적으로 세상 썩고 병든 구조와 질서에 반항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개인의 행복보다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변혁과 혁명을 꿈꾸는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때다.
일찍부터 나약하게 늙어버린 '애늙은이'들을 무조건 감싸고도는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거친 세상을 힘차게 헤쳐가는 야생성 회복이다.
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47 new
스스로그러함 산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산딸기등 나무열매를 따먹고,
나무를베어 칡으로엮어 어설프게나마 원두막도 지어보면서
그때 어린시절 산에서 뛰어놀며 호연지기와 야생성을 키우면서 .........
자연속에 살아가는법을 일찍 배운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농사일과 먹고살기에 바빠서 한번도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별간섭은 없으셨습니다.
모든것을 너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산에서 감자를 삶거나 구워먹으면서 형들이 재미있는 이야기에 날이 저문줄모르고 듣다가
소를타고 집에돌아오고 .....
딴집소들은 등에타면 발로차고 난리를 피우지만 .........
우리소는 어머니와 내가 소를 가족의하나로알고 사랑으로 보살펴서 그런지 ...........
소가 죽을안먹고 아플때는 소마구에서 같이 자기도 하면서...
어릴때 소장수에게 소를팔아 일주일넘게 밥도 안먹고 울정도로 소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항상 소는 나의분신이였고 내사랑의 대상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소도 내마음을 아는지 내가 소를 타면 가만히 등을 내밀어 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감성지수가 소가 사람보다 높은것 같다.
어머님은 소등이 굽는다고 절대로 소를 타면 안된다고 야단치시지만.........
부모님몰래 어린 우쭐한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52 new
스스로그러함 동네 동생과 형들이 부러움속에서 소먹이러 갈때는 언제나 개선장군처럼 제일앞장서 소를 타고다녔다.
특히 동네사람이 모여있는곳과 동갑내기 여자애들이 노는곳에서는
일부로 보란듯이 소를 타고다니기도 했다.
저는 중학교 어린나이에 이미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른 장정들과 대등한 노동력을 갖추어
모내기 손바꿈 품앗이를 할정도 체력과 노동력을 길러야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을 짓고 하지만 ........
모듯것이 부족하고 가난하고 힘든시기 였지만 ........
그속에서 재미있는 어린시절을 즐기며 보낸것같다.
누나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아버지 농사일을 대신하여 낮에 남이 볼까봐 처녀들이 지게를 질수가 없어서
밤에 볏단을 지게로 져 나르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강하게 자란누나와 동생들이
가난하고 어려운집에 시집가서 자식들 잘키우고 成家해서 잘 사는것을 보면
어릴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당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자녀 교육은 요즘사람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사내애는 다섯살만되면 안방 어머니 곁에서 사랑방 아버지 방으로 사정없이 내쫓아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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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58 new
스스로그러함 사내가 안방구석 여자들속에 크면 암사내가 되어 제대로 사내답게 크지 못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네 다섯살때 어머니 젖가슴을 만지고
어머니 품속에서 자고 싶은데
밤에 자러 나오지 않으면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한창때도 여자에게 성적 욕구보다 가슴을 만져 보고 싶은것은...
아마 어릴때 쫓기듯 사랑방으로간 어머니 젖가슴이 아쉬움 때문인것 같습니다.
부부사이라도
합방할 시기가 아니면 부부유별이 엄격했고 유가적법도에 철저했습니다.
누가보든 안보든 행동을 함부로 하지않으시고
아무리 화가나도 어머니에게 욕설은 하지 않으신것 같습니다.
사랑방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글을 읽거나 본인일만 하시면서
집안식구에게는 엄했지만 내집보다 이웃을 먼저걱정하고 꼿꼿하게 사셨습니다.
네다섯살 어린나이에 새벽 소죽끓일때 단잠을 깨워 찬물에 세수하고 꿇어앉아 천자문을 외우게 하고
제대로 외우지 못하거나
잘못 읽고 해석하면 예외없이
몽치미 (木枕)위에 종아리를 걷고 올라서게하고
싸리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당시 자식은 속으로 사랑하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는것이 전통적 자식교육 방법이였습니다.
늦게 얻은 귀하게 얻은 아들이지만 엄하게 키워야한다는 교육관이 확고한것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59 new
스스로그러함 교육관이 확고한것 같습니다.
자식을 속으로 사랑했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절대 내색하지 않으신것 같았습니다.
어린나이에 아버지가 참으로 야속하게 느껴 졌습니다.
지금도 아버지像은 언제나 엄하고 무서운....
賞罰은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분명 하셨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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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41 new
사람의 댓글을 보면 그사람의 의식이 보인다.
누구나 보고듣고 경험한 것이 전부인줄 알고 판단하고 살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