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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이나라 젊은 애늙은이를 보면서

작성자스스로그러함|작성시간26.06.22|조회수129 목록 댓글 8

이나라 앞날과 젊은 애늙은이를 보면서

80년대 가난한 집안 6식구 나만 쳐다본 먹고 사는 문제와 사회민주화 운동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알면서도 사람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염치없이 살았다.
돈도 없고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해서 학원 대신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뛰어놀게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고등학교 졸업 성적이 전교 245/247명중으로 나왔다. 상근예비역 대신 현역으로 보내 특수부대에서 군 생활을 마쳤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아이들도 나처럼 마음껏 즐기며 놀았다. 군을 마치고 하고 하겠다 하더니, 전교 토플 1등해서 국비로 유학도 다녀왔다.
삼성에 들어가 비젼대회 대상도 받았다. 적성 맞지 않아 공기업으로 옮겨 잘 살고 있다.
딸도 고등학교 때부터 자퇴와 입학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졸업 뒤 기술사 자격을 몇 개 따서 바라는 직장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 간다.
다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

돌에 짓눌린 어린 싹이 제대로 클 수 없듯이, 부모의 욕심과 간섭이 자식을 망친다.
다 큰 자식을 업어주고, 입에 밥까지 떠넣어 주며 내 자식이 귀하다고 오냐오냐 하는것은 자식 스스로 사는 힘을 죽이는 것이며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다.
사랑이 아니라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죄악이다.

부모의 욕심과 맹목적인 자식 사랑은 자식을 바보로 만들고, 부모의 등골 빠져 둘 다 죽이는 짓이다.

자식 교육은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올바르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뿐이다. 바라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불평등과 불행의 원인은 공짜로 자식에게 부와 모든것을 물려주는 것이다.
아는것은 나부터 실천 하기로 했다.
아껴 쓰다 남은 것은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나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식도 내 재산을 넘보지 않게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검소한 생활습관과 건강관리로 스스로 힘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이나라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스스로 힘으로 살겠다는 도전 정신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2030 청년들이다.

농촌과 중소기업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외국 노동자 들이 우리일을 대신 한다.
사대매국노당을 묻지마 막찍어
선량한 이웃에게 피해만 주고
주식과 부동산. 쉽고 편하게 살려는 헛된 것을 꿈꾸며 도시로 다 떠난 젊은이들
...
이때는 생리적으로 세상 썩고 병든 구조와 질서에 반항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개인의 행복보다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변혁과 혁명을 꿈꾸는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때다.

일찍부터 나약하게 늙어버린 '애늙은이'들을 무조건 감싸고도는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거친 세상을 힘차게 헤쳐가는 야생성 회복이다.

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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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48 new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양반집 부잣집 둘째아들이란 말만 믿고
    꽃다운 17살 나이 미모와 지성을 두루 갖추시고
    아버지 얼굴 한번도 못보고 우리집에 시집을 오셨다 합니다.
    일평생 호강은 고사하고 고생만 죽도록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선조들은 이성계쿠테타에 반기를 든 두문동 70賢人에 한분이십니다.
    평생 재야사림에서 민초들과 동고동락 하면서 사시다가
    폭악군주 숙종때 남인 사림 대표 논객으로 잠시 白衣 이조판서로 조정에 나가신 갈암 이현일 할배가 노론 영수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게 해서
    그뒤 300년간 이조가 망한 고종때까지 중앙정계진출은 마지막 입니다.

    매국매족 백성의 착취수탈세력인 노론들과 맞장을 뜨다가
    귀양과 유배생활을 거듭 하면서
    중앙정계진출은 노론세력들의 괘씸제인 연좌제로 오직 우리집안은 진사초시 벼슬도 못했습니다.

    그길을 마지막으로 벼슬길과는 영영 담을쌓고
    江湖의 머물면서 부패한 노론과 지배권력에 맞서 가난한 선비의 양심과지조를 지키며
     이조봉건 시대 외적이 침입하면 앞서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나서 곳곳에 항일순직비가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53 new
    해방공간에서는 단독정부반대 자주독립 국가수립 건설을 위해
    민족해방 계급해방 투쟁에 앞장서 싸웠습니다.

    외가에 남자들은 기골이 강대하고 뱃짱이 좋고 한학과 신식교육을받은분 같습니다.
    어릴때 주위에  나이드신 어른분들이 나보고 너 외아재는  통이 크고 베짱도 좋고 잘생기신 훌륭한 사상객이라고 
    너도 크면 큼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일제때 훌륭한 사상객이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일제때부터 외삼촌들은 사회주의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일본경찰이  온몸을 인두로 지지고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고문을해서 내놓으면 집에서 정성껏 치료를 햇서 보양한것을
    어릴때 옆에서 보신 어머니가 가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1930년대 말부터 민족,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견디지 못하고 다 친일민족반역에 길로 돌아서고
    더이상 탄압에 견디다 못해 만주로 떠났지만...
    외아저씨는 워낙 기골이 강대하고 끝가지 모진 고문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일제말 일본고등계형사가  위에서 전령이 왔는데 여기에 있으면 죽을지 모르니 멀리 피하라 해서 서울로 가족이
    이사를 갔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56 new 당시 일본 형사는 직책상 어쩔수 없이 악랄한 고문을 했지만... 독립운동가와  사상객에 대해서는 인간적 존경심과 대우는 정중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놈 밑에있는 조선인 고등계 형사보조하는 인간들이 더 야비하고 악랄했다고 합니다.

    이사가서 일제 해방후 해방공간에서
    나이든 외가 형님 들은 서울홍릉 옛서울공대근처에 사시다  우익테러로 돌아가시고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살길을 찾아 북으로 가신지 그 뒤 생사를 알길이 없습니다.

    오래전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연관되어 7년간 옥고를 겪은 기록을 찾아서 사회주의독립운동가도 유공자로 추서한다고해서 국립 문서보관서에 자료을 찾아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한적이 있습니다.
    담당직원의 말인즉 
    이런분들을 마땅히 일제때 독립운동 서훈을 해야하나 북에서 농림차관까지 하신분이라
    현행법으로는 어쩔수 없어 곤란하니 훗날 좋은세상이오면 하라고 한다.

    내위로 형들은 그당시 농촌은 예방의학이 제대로 안되어
    요즘 같으면 큰병도 아닌데 어릴때 저세상으로 다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위 누나와는 12살 차이가 납니다.
    그당시 가난한집 아이들은 다 그러 하였지만 나는 다른집 애들보다 더어렵고 힘들게 산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58 new 당시 일본 형사는 직책상 어쩔수 없이 악랄한 고문을 했지만... 독립운동가와  사상객에 대해서는 인간적 존경심과 대우는 정중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놈 밑에있는 조선인 고등계 형사보조하는 인간들이 더 야비하고 악랄했다고 합니다.

    이사가서 일제 해방후 해방공간에서
    나이든 외가 형님 들은 서울홍릉 옛서울공대근처에 사시다  우익테러로 돌아가시고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살길을 찾아 북으로 가신지 그 뒤 생사를 알길이 없습니다.

    오래전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연관되어 7년간 옥고를 겪은 기록을 찾아서 사회주의독립운동가도 유공자로 추서한다고해서 국립 문서보관서에 자료을 찾아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한적이 있습니다.
    담당직원의 말인즉 
    이런분들을 마땅히 일제때 독립운동 서훈을 해야하나 북에서 농림차관까지 하신분이라
    현행법으로는 어쩔수 없어 곤란하니 훗날 좋은세상이오면 하라고 한다.

    내위로 형들은 그당시 농촌은 예방의학이 제대로 안되어
    요즘 같으면 큰병도 아닌데 어릴때 저세상으로 다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위 누나와는 12살 차이가 납니다.
    그당시 가난한집 아이들은 다 그러 하였지만 나는 다른집 애들보다 더어렵고 힘들게 산것 같습니다.
  • 작성자스스로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41 new 사람의 댓글을 보면 그사람의 의식이 보인다.
    누구나 보고듣고 경험한 것이 전부인줄 알고 판단하고 살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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