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여름김장

작성자산비탈양|작성시간26.06.23|조회수115 목록 댓글 8

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6월말이면 해마다 장마가 시작되고 몇일 지나면 채소들이 빗속에 물크러져 채소값이 금값이 된다고 아우성이라 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미리 값싼 열무와 어린 배추를 넉넉히 사다가 열무 물김치를 담아두고 여름내 먹는다. 그러다가 다

먹어치울 때가 되면 장마가 끝나 다시 채소값이 제대로 돌아와 있는데 왜 사람들은 간단한 이 여름 김장을 담궈두지

않고 해마다 배추 열무값이 하늘같이 뛴다고 야단들인지 모르겠다.

올해도 두통을 넉넉히 담궈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나니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 열무물김치는 확실히 한국인들의 

입맛에 딱 어울리는 여름철 반찬으론 최고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이것만 있으면 밥은 넘어간다. 거기다 다른 반찬

한두개 첨가하면 금상첨화이고.

 

그런데 나는 이 김치를 먹을 때마다 일제 때 당시 최고 부자였던 이회영형제분들이 자신들의 땅을 반값이하로 급매

하여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국내에서 올라온 애국청년들을 먹이고 입히고 훈련시키시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청산리대첩 봉오동 전투등에서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장군들과 일제와 싸우던 일을.. 

그런데 우선 무엇보다 그 많은 수백명 청년들을 어떻게 먹여냈을까.. 그건 김치였을 것이다! 쌀은 미리 넉넉히 준비해 

실어갔을 터이지만- 필경 그들은 무관학교 건물을 세우고 그 옆 남는 터에 배추 무 고추 등부터 심고 가꾸어 김치를

담궜을 것이다.. 다른 반찬들을 요리하긴 힘들었을 것이고 단하나의 반찬이라면 한국인들에게 김치밖에 더 있겠는가. 

가을에 거둔 무 배추로 김치를 담궈 땅속에 그들이 가져갔을 장독들을 묻어두고 겨울내내 꺼내먹었을 것이다. 

그 장독으론 그곳에서 재배한 콩으로 된장 간장도 담았을 터이고 미리 소금가마들을 충분히 운반해 갔을 터이다. 

'빛과 소금이 되라' 란 말은 정말 명언이다. 그들에게 빛은 바로 光復이었고..

나는 그분들의 거국적인 결단과 행동 기록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이회영형제 여섯분들이 가족회의에서

만주행을 한사람도 반대하지 않았던 것. 며느리들은 물론..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잊을 수 없던 것은 그 종들에게 

얼마간 돈을 나누어주며 '이제 너희는 자유이니 어디든 가라'했을 때 대부분 거절하고 주인을 따라 갔다는 것. 

세상에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들은 기꺼이 주인을 따라 그 먼길 고생길을 자처했으니..

나는 평소 자유란 '쇠사슬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바 평소 이회영의 도덕 인간적 모습이 어떠했던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당시 그 며느리나 하녀 중 하나였다면 기꺼이 따라가서 열심히 그분들을 위해 일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이 큰 행복이었을 테니까.

 

 그 6형제분들 중 다섯째 이시영 외엔 모두 이미 일제 감옥에서 옥사하시고 이시영은 홀로 나중 광복 후 국내로 돌아

왔을 때 이승만은 체면상 그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자세히 설명함은 생략하겠지만 

서북청년당의 행패로 그분은 정신적 육체적 타격으로 쓰러지신 후 얼마안가 부산 금정산기슭 가난한 단칸 셋방에서 

홀로 돌아가셨으니 그것은 서북청년단의 손이지만 사실상 이승만에게 살해당하신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산비탈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53 new 그 6형제분들 중 유일하게 이시영할아버지만 살아남아 입국을 하셨는데 기대했던 광복은 커녕 일제보다 더 지독한 이승만의 도구 서북청년단들의 몽둥이에 쓰러지셨으니.. 나는 누우신지 1년만에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그 한달만에 하직하셨더군요. 84세의 한많은 생을 타향의 차디찬 방에서 홀로...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일년이나 병상에서 고생하시느니 .. 만주벌판 일제에 의해 구속 고문당하실 땐 차라리 민족해방이라는 희망으로 견뎌냈지만 그 돌아가신 5형제분들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까지 이 한을 후손들이 다 갚아주겠지 하는 바램이라도 갖고 가셨겠지만..

    서북청년단의 테러에 의해 광복후 부산 광복동에서 가진 애국청년들의 결성식이 와해되고난 후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받으시고 얼마나 더 절망하셨을까...
    그런데 그 돌아가신 1953년 이후 73년이나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똑같지 않은가 똑같지 않은가 .. 가시적인 서북청년단 대신 국가보안법이란 시퍼런 악법으로.. 주인은 일제대신 미제로..

  • 답댓글 작성자스스로그러함 | 작성시간 11:07 new 산비탈양 일제 직접 식민지 지배와 통치가 대리
    미제 신식민지로 바뀌었을 뿐 여전 합니다.
    기독교와 반공교육 또 우리의 얼과 혼을 빼버리면 뭐가 뭔지 내가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모르고 판단을 못하는
    젊은이는 애늙은이로 늙은이는 철부지로

    미국민이 트럼프를 두번이나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이나라 우중들은 윤석열과 오세훈을 선택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모르고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얼과혼이 살아야 한다
    북의 우리 민족이
    베트남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이란 인민이 미제국과 싸워 이기는 것을 보면서....
  • 작성자인향만리 | 작성시간 26.06.23 new 지혜로운 말씀이십니다
    댓글 이모티콘
  • 작성자산비탈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38 new 만리님 감사합니다.. 근데 저는 이회영님의 직손은 아니고.. 직손이라면 이렇게 살이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일제가 철저히 몰살시켰으니까.. 이회영님의 아버지와 제 조상이 한 형제셨기에 그나마 연명을 하게 된 거지요.
    어쨋든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도 같은 활동으로 일제때 이후 내림내림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집안을 탄압했던 세력의 후예들은 아직껒 승승장구 중이지만.
  • 작성자산비탈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47 new 아 스스로 그러하신 자연님, 나는 님이 시골에 유유자적
    묻혀사는 선비신줄만 알았는데 세계가 돌아가고있는 정세
    를 정확히 꿰뚫고 계시는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