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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야 티모셴코 -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 우크라이나 역사, 경제

작성자정론직필|작성시간14.02.23|조회수3,595 목록 댓글 8

율리야 티모셴코


율리야 볼로디미리우나 티모셴코(우크라이나어: Юлія Володимирівна Тимошенко, Yulia Volodymyrivna Tymoshenko, IPA: ['julijɑ ʋɔlɔ'dɪmɪriʋnɑ tɪmɔ'ʃɛnkɔ], 결혼 이전의 성: 흐리햔(우크라이나어: Григян), 1960년 11월 27일 ~ )는 우크라이나의 여성 정치인이다. 2004년 오렌지 혁명 때의 주요 인물이며, 전 우크라이나의 총리이다.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동부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라트비아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지역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페레스트로이카 열풍 속에 1989년 비디오 대여점을 차렸다. 소련 붕괴 후 대여점은 대형 체인으로 키워 내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고, 그 후 에너지 관련 기업을 경영하였다. 1995년 ~ 1997년 국영인 연합에너지시스템 사장을 지내며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와 석유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에너지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1999년 부총리를 맡아 빅토르 유셴코 밑에서 에너지 민영화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기존 정치 세력과의 알력이 깊어지면서 2001년 1월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그를 해임했으며, 곧 공문서 위조와 탈세 혐의로 기소되었다. 같은 해 유셴코와 함께 쿠치마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2002년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을 창당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다시 당선되었으며, 국민의 인기가 높았다. 2004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은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낙선했다는 발표가 있자, 부정선거에 불복하여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는 오렌지 혁명으로 불리며, 결국 유셴코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티모셴코는 그 공로로 2005년 1월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권력층 간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그 해 9월 유셴코 대통령은 내각을 해산시켜 티모셴코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그는 에너 지회사 사장 재직 시절 러시아 고위 관리에게 뇌물을 건낸 혐의로 러시아 검찰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2006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은 더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2007년 총선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가 이끄는 지역당에 근소하게 패했으나, 다른 당과 연정을 구성, 2007년 12월 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다. 2008년 말, 세계 금융 위기,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쟁, 남오세티아 전쟁과 관련된 그루지야 문제 등으로 다시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측과의 대립이 격화되어 연정이 붕괴되었으나, 총리직에서 해임되지는 않았다.


2009년 7월에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접견하였다.


티모셴코 총리는 화려한 외모와 뛰어난 능력으로 인기가 높지만, 최근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총리 자리를 위협받기도 했다. 2010년 1월 17일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결과는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패하여 당선되지는 못했다. 2010년 2월 7일에 결선 투표에 다시 참여했으나, 또 한번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패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하였다. 잠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밑에서 총리를 하였으나, 얼마 후에 사임하였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근소한 차로 복권하면서 오렌지 혁명 이후 그녀의 정권에 대한 겨냥 수사가 전방위로 이뤄진 가운데 러시아와의 가스 배관 계약 시 대통령의 직권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국익을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7년형이 인도됐다. 더군다나 복역 이후에도 3년 동안 공직 출마 및 취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 판결이 내려졌다. 유럽연합은 이미 판결이 이뤄지기 전부터 유죄 선고 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검증 및 반발을 예고한 상태여서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반발도 거세질 조짐이 일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C%A8%EB%A6%AC%EC%95%BC_%ED%8

B%B0%EB%AA%A8%EC%85%B4%EC%BD%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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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혁명


오렌지 혁명은 2004년 11월-12월에 발생한 우크라이나에서 빅토르 유셴코의 지지자들에 의한 일종의 정치적 시민저항이다. 이 혁명은 빅토르 유센코의 지지자들이 조직하고 추진했으며,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합세했다. 


오렌지 혁명은 중앙선거 관리 위원회가 예비 결과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한 것으로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최고 재판소는 유권자들의 투표와 예비 집계 과정 중에 이러한 위반사실을 확인하고 중앙선거 관리 위원회의 선거 결과에 대한 발표를 취소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차(결선)투표를 다시 거행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최고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도록 저지했으며, 최고 재판소의 결정을 근거로 대통령 선거 결선 재투표 진행을 성사시켰다. 재투표 결과 승리를 쟁취한 것은 빅토르 유센코이다.


이 저항은 서부와 중부 지역을 기반으로 했으며, 당시 집권 여당의 후보자(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서방 각국의 여론은 우크라이나 야당(빅토르 유센코)의 편이였다. 일련의 유럽 국가의 국가정치지도자들이 대립하고 있는 양측의 협상 중재자로 나섰다.


오렌지색은 우크라이나 혁명의 상징이다. 오렌지색은 독립 광장의 집회활동에 사용되기 이전부터, 젊은이들과 정치적 관심이 높은 주민들이 옷이나 장신구 등에 착용하였었다. 이후 오렌지색에 빅토르 유셴코의 상징이 더해졌다. 유셴코 선거 위원회는 자신들의 상징으로 오렌지색을 사용하였다. 오렌지색 바탕 위에 ‘Так!’ (러시아어로는 Да!, YES!라는 의미)이라는 로고를 새겨 넣었다. 유셴코의 지지자들은 혁명의 상징으로써 오렌지를 서로에게 선물했으며, 정적에게도 선물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B%A0%8C%EC%A7%80_%ED%98%81%EB%A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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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역사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어: Україна, 영어: Ukraine)는 동유럽의 국가이다.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흑해와 아조프 해, 동쪽과 북동쪽으로는 러시아,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으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몰도바와 접한다. 키예프(Kyiv)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동유럽 평원과 이어져 있으며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 및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인구의 절반(주로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어 사용자이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동슬라브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최소한 9세기 무렵 이후로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중세 동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키예프 공국으로 알려진 이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나라가 되었으나 12세기에 분열되었다. 


14세기부터 우크라이나 일대는 여러 지방 세력에 의해 분열되어 몽골족·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부분이 러시아 제국에 통합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통제하에 놓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혁명 후의 혼란과 끊임 없는 전쟁 속에서 여러 차례 독립을 시도하여 1917년에 민족국가를 건설했으나, 1922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합병되었다. 1923년 소비에트 연방 헌법의 적용을 받았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하였다. 


군사력 운영의 질적 수준은 아직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중간사이다.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도네츠 탄전의 석탄, 크리보이로그의 철광석, 카르파티아 유전과 천연가스, 그 밖에 망간, 우라늄, 식염, 칼리염, 석회석 등을 산출한다. 


주민은 73%가 우크라이나인, 22%가 러시아인이다. 산업으로는 석탄·철광·선철의 생산에 있어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풍부한 수력전기를 이용하여 기계제조공업·화학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유수의 공업지대를 이루고 있다.


석탄업, 철강업, 기계제조업, 화학공업의 중심은 돈바스·드네프르지역이며, 드네프르강의 하구에서 키예프까지의 사이에는 6개소의 수력발전소가 단계상(段階狀)으로 건설되어 있다.우크라이나의 경지율은 약 70%에 이르고 있어, 겨울밀·옥수수·보리·사탕무·해바라기·포도의 재배, 가축사양 등에서는 구 소련 시절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온난한 크림반도 남단과 광천(鑛泉)이 솟는 카르파트 지방은 중요한 관광·보양지이다.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 〈타라스 부리바〉의 배경이 되기로도 알려졌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 및 러시아어가 쓰이고, 국민의 대다수가 믿는 종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이다. 최근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스킨헤드가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 만큼 무시무시한 네오나치즘 스킨헤드가 활동하는 상태이다.


우크라이나는 항공우주산업, 로켓·미사일, 레이더, 전기·전자시스템, 가스터빈 분야 등에서 우수한 방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유즈노예 로켓엔진 설계업체액체로켓 부분 세계 최고 로켓 엔진 설계 업체이다. 소련 시절 전략 로켓군의 지상 발사 전략 탄도탄은 모두 여기서 설계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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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ryungol | 작성시간 14.02.23 우크라이나 최남단 흑해연안에 "크림반도"라고 하는 살기좋은 곳이 있는데,,이곳은 대대로 "크림 타타르"라고 하는
    동이족 혈통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런데 1800년대 말에 전 세계적으로 동양의 세계지배가 무너지고, 동유럽과 중앙아등에서 동이족 인종청소가 광범위하게 벌어진것 같은 징후들이 인터넷에 엄청 많았었는데..구글이 유투브를 인수하고,그리고 검색을 하면서 제거작업들을 하는지 요즘은 인터넷에서 그런 자료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죠,,,유투브도 예전엔 관련
    동영상이 많았는데...구글이 인수하고 나서는 동이족 관련 영어로 치면 무슨 인도잡종이나 파키잡종같은 것들로
    줄줄 바뀌어 있어요
  • 작성자ryungol | 작성시간 14.02.23 이 크림반도에 "스바스토폴"인가 하는 큰 항구가 있는데 끝에 있는 '폴"이란 한자어로 바닷배가 들어오는 "포구"를 말하는
    '포"라는 뜻입니다. 흑해연안의 '폴"자가 들어가는 항구나 지명은 예전에 우리 조상의 혈통들이 그쪽에 살때 이름붙인
    "~~포"를 나중에 "폴"로 변형시킨겁니다. 이 크림반도에 사는 크림타타르는 1800년대 말까지는 한국인과 같은 동이족
    모습을 지녔는데..볼세비키 유퇴것들이 러시아를 공산화시키면서 이 크림타타르를 대대적으로 청소 내지는 혼혈화시켰다고 어느 러시아인이 그러더군요, 그래서 지금 "Crimean Tatar'를 유투브에서 검색하면 대부분 혼혈화된 모습이고,
    동이족 순혈모습은 많이 퇴색됐죠,,,
  • 작성자유성 | 작성시간 14.02.24 러시아도 대응에 나서긴 하겠지요,,
    사태가 워낙에 순식간에 확산되서 정권자체가 미쳐 대응할 시간이 없었고
    러시아도 소치올림픽 때문에 발빠른 대응이 힘들었나 봅니다.
  • 작성자코스모스 | 작성시간 14.02.24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해 러시아,중국 포위작전의 일환인 듯.북한까지도 노릴 것이고요.베네즈웰라에서도 친미 기득권의 반미 정부에 대한 시위로 진압 중 9명 사망 뉴스가 나온 것 보니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급변사태 진행 중.바야흐로 놈들은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급변사태 조장 중.
  • 작성자ryungol | 작성시간 14.02.24 푸틴의 바로턱밑인 우크라이나를 건드린다는 것은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현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 준전시 상황에 버금간다는 걸 말해줍니다. 시리아를 먹을려고 하다가 러시아 반대로 안되니까 .그래? 그럼 니들 턱밑 우크라이나를 먹어주지.".
    하면서 러시아를 건드리는 겁니다. 푸틴이 아무래도 말을 잘 안듣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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