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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면서

작성자leastory|작성시간13.07.09|조회수271 목록 댓글 14

아들 둘을 정부급식에 맡기고 (군복무 중) 자유부인이 되어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긴 시간을 남편과 단 둘이 유럽여행을 하게 된 것은 생애 최초의 일이었다. 유럽 여행 중 만난 수 많은 청년들과 젊은 부부, 가족을 보며 우리는 그 동안 뭐하며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로마사를 공부하고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을 대하며 이런 공부를 좀 더 일찍 했다면 내 삶이 참으로 풍요로웠을 거란 아쉬움이 밀려왔다.

 

늘 학교 일과 연구로 시간에 쫓겼고 비행기 타는 걸 두려워한 데다 언어의 불편함으로 유럽에선 자유여행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여행사의 패키지 관광을 따라가자면 비용이 부담스러울 거라 지레짐작 했었다. 하지만 몇 해전 체코의 프라하에서 세계리더십학회가 개최되면서 혼자서 하게 된 체코여행에서 웬만한 곳에선 영어가 통할뿐만 아니라 설령 영어가 통하지 않아도 만국 공용어인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표만 있다면 여행비용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유럽엔 배낭여행객을 위해 저렴한 숙소도 많으며 특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에서는 한식을 제공했다. 여행사 패키지 여행처럼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된 여행을 할 수 있음을 2년 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편리해져 가고 있음을 나 혼자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한독포럼을 위해 방문한 독일일정에 뒤이어 진행되었다. 한독은 올해로 수교 130주년을 맞이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로 12번째 개최되는 한독포럼이 독일의 고슬라라는 도시에서 양국 정부인사, 국회의원, 언론인, 오피니언 리더 등 80여명을 모시고 개최되었다. 독일측의 세심한 행사기획, 감동적인 연출, 가욱대통령님의 참석으로 행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한국측 단장은 이화여대 김선욱총장님이었고 나는 한국측 공동주최기관인 이화여대 국제통상협력연구소 소장의 자격으로 한국측 행사 진행을 맡았다. 원래 이 행사의 주최기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지만 재단이 진행하는 국제포럼이 15개나 되는 관계로 이화여대를 공동 주최기관으로 선정하여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 행사와 한독관계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행사를 마친 후 한국대표단 일행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배웅했다. 그리곤 한국비행기가 도착하는 터미널로 이동해 내가 미처 가져오지 못해 가져오라고 부탁한 짐을 모두 싣고 나타난 구세주 같은 남편을 만났다. 타국에서 이루어진 우리 부부의 재회는 극적이었다. 남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ㅎㅎ

 

6월 22일부터 7월 7일까지 약 15일간 우리는 독일, 스위스, 이태리 3국을 여행했다. 나는 이미 독일에서 5일을 보낸터라 독일에 관심없는 남편을 설득해 3일을 더 보냈다. 한독포럼의 주최자로서 나는 독일어를 더 배우고 싶었고 더 알고 싶었지만 남편은 로마와 르네상스의 문명과 스위스의 자연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너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날씨가 우리의 계획을 완벽하게 뒷받침해줘서 평소 덕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얻었다.ㅋㅋ

 

멜랑꼬리한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한 날에는 비가 내렸다 해가 났다를 반복해 두 가지 날씨에서의 도시의 느낌을 맘껏 감상할 수 있었고 융프라우와 마테호른을 산악기차와 케이블카로 오른 날에는 설국에서 화상을 입을 만큼 화창했다. 로마 시내관광을 하던 날에는 가이드생활 7년만에 7월 비를 처음 맞았다고 할만큼 희귀하게 오전 중 잠시 비를 뿌려 선선한 날씨를 선사하기도 했다. 가장 무더운 날에는 바티칸 투어로 바깥 날씨는 잠시 잊고 비교적 선선한 실내에서 작품에 몰두 할 수 있었다. 폼베이와 이태리 남부를 방문한 날에는 맑은 날씨에 구름을 얇게 깔아 산들바람을 맞으며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활동엔 이런 날씨가 좋으니 주세요 하고 기도할 줄도 모르는 문외한인데 이렇게 알아서 하늘이 다 마련해주니 뒤늦게 유럽여행하는 부부의 딱한 처지를 누군가 굽어살펴주심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고마운 두 여성이다. 한 번은 스위스에서 기차선로에 고장이 났는지 버스를 타고 다음 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타도록 갑자기 여정이 변경되었을 때 일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매우 피곤한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내가 등산복의 웃옷을 버스에 두고 내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리털이 있는 내피만 입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전화기를 찾다가 전화기가 등산복 겉옷에 있음을 깨달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때 내 웃옷을 들고 어떤 인도여성이 서서 주인을 찾고 있었다. 순간 직감적으로 그 여성도 내가 그 웃도리의 주인임을 눈치챘다. 같은 색깔의 옷이었으니 말이다. 고맙다며 옷을 받아들었는데 아찔한 생각이 스쳤다. 전화기에는 신용카드가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의 중요한 정보를 모두 메모해 두었기 때문이다.

 

순간 기차가 떠나면서 여성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고민을 해봤지만 여행하면서 선물 사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수중에 가진 게 없었다. 마침 융프라우에서 그날 사온 마그네틱이 생각났다. 하나 밖에 없는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다시 그것을 살 수도 없지만 (유명한 지명의 마그네틱은 그곳에서만 판매한다)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 단 하나 있는 융프라우 마그네틱을 그녀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그녀를 찾아 기차 칸칸을 헤매고 다녔다. 세번째 칸에 이르니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안다는 것처럼 그녀는 앳띤 한 10대 소녀를 가르쳤다. 그녀가 버스에서 내 옷을 들고 내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약소하지만 작은 성의니 받아달라며 선물을 건냈고 그녀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 옷과 그 옷에 있는 아이폰이 얼마나 내게 중요한지 설명했다.

 

또 한 명의 여성은 여행 마지막날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네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고 공항으로 나오는 기차역에서 만났다. 로마 숙소에서 나와 공항에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방을 끌고 이동했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자 남편은 배낭에 비닐을 씌우기 위해 잠시 지체했고 나는 혼자서 온갖 무거운 물건이 다 들어있는 남편의 커다란 네 바퀴 가방을 끌고 먼저 기차역에 도착했다.

 

늘 무거운 가방 2개를 기차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남편이 안돼보여서 이번엔 남편 없이 나혼자 가방을 기차에 실어보기로 했다. 나도 힘센 대한민국 아줌마이니 팔힘이 얼마나 센지 보여주고 싶었다. 가방을 들고 기차 계단을 두 개 밟는 순간 휘청하고 중심을 잃고 나는 가방과 함께 열차 밖으로 나가 동그라질 참이었다. 순간 누군가 뒤에서 온 힘을 다해 나를 막는 것이었다. 나는 무게 중심을 잡고 기차에서 떨어지는 것을 면했다. 나는 남편이 어느새 내 뒤를 따라와 나를 보호했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갸날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나는 다시 힘을 내 가방을 올리려 했지만 가방은 들리지도 않고 다시 휘청했다. 그 때 역무원이 달려와서 함께 가방을 올려주었다.

 

하도 경황이 없어 그 여성에게 고맙다는 말만 하고 가방을 짐칸으로 옮기고 곧 뒤따라온 남편을 찾아 함께 앉았다. 남편은 내가 복잡한 기차의 첫 칸에 자리를 잡았고 혼자 짐을 옮겼다며 불평을 해대서 그 여성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손목 인대가 늘어났는지 통증이 전해왔다. 지금도 통증이 심해서 손목을 쓸 수가 없다. 오늘 남편 몰래 병원에 가봐야겠다.

 

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그녀 생각이 났다. 이멜주소라도 물어보는건데....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을 하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수소문해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도 같이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나를 있는 힘을 다해 막고 구할 수 있었는지.... 얼마나 세게 나를 온 힘을 다해 기차에서 떨어지는 나를 막았던지 나는 분명 남편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참으로 고맙고 용기있는 여성이다.

 

세상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무엇보다 내게 은인이나 다름 없는 두 여성을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한다. 특히 두 번째 여성은 꼭 다시 만나보고 싶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수많은 감동과 교훈은 집에서 읽는 책에는 비견 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길에서 더 많은 학습을 하기를 소망해본다. 자율학습을 택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온 많은 부모들을 보면서 그들이 참 훌륭하고 현명한 부모라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여행지 선택을 잘못하는 바람에 거대한 가방의 무게에 눌려 여행 내내 고생을 했다는 점이다. 더운 이태리와 아직도 한 겨울인 스위스를 동시에 여행지로 선택했기에 여러 벌의 한여름 옷과 오리털 파카, 아이젠, 등산스틱을 함께 지고 다녀야 했다. 유럽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여러 도시를 옮겨다녀야 하기에 여행지 선택을 날씨가 비슷한 곳으로 한정해 가방을 가능한한 가볍게 쌀 수 있는 곳을 택할 것을 권하고 싶다.

 

퉁퉁 부은 손목이 말해주듯 여행가방이 상전이 되지 않도록 다음 여행에는 여행지 선택을 잘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번 여행의 총결산을 간단히 해보았다. 사진이 정리되면 시간이 나는대로 유럽 자유여행 일정을 공유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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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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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태은 | 작성시간 13.07.10 일단 유럽 한번 못가본 저로서는 부럽네요...ㅎㅎ 무사귀환을 축하드리고요 양교수님이 해주신 냉면,비빔면의 맛이 남다를듯 합니다...그리고 안계신 동안 두 아드님 밥값은 제가 냈습니다 ^^
  • 작성자시라소니 | 작성시간 13.07.10 아... 오셨군요ㅋ 교수님 부럽습니다ㅋㅋ
  • 답댓글 작성자오드리 | 작성시간 13.07.10 시라소니님이야말로 컴백 환영^^ 몸은 다 완쾌되었나요? 얼굴 함 봅시다
  • 작성자하니 | 작성시간 13.07.13 날씨가 좋아서 더 즐거우셨겠어요. 빨리 쾌차하세요^^
  • 작성자affinity4 | 작성시간 13.07.22 엄청동안이신 우리교수님 더이뻐지시고 건강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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