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한 엄마와 버럭 엄마 Re:버럭 엄마...

작성자leastory|작성시간15.01.13|조회수1,206 목록 댓글 40

(햐니님의 버럭엄마에 대한 반성문을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느림보학교에서 교장으로서 늘 강조하는 것이 부모의 인내심이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 믿고 기다려주고
화 내는 대신 아이의 맘에 공감해주고 대화로 설득하라고요.
그런데 이건 이론적 엄마의 침착한 모습입니다.

현실의 엄마로 되돌아오면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느림보학교를 만든 것 자체가 제가 아이를 잘 키웠기 때문이 아니라
잘 키우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나누기 위함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저 또한 현실의 엄마로서 아이에게 버럭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크기도 했지만 거의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노력함으로써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엄마의 태도가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고 늘 자각하는 노력이 뒤따랐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엄마가 송곳처럼 불쑥불쑥 올라오지 않는 건 아닙니다.

 

요즘 학기 중 못한 연구논문 쓰느라 매일 밤 열공 중이라 트윗을 열심히 안한지 몇 개월 된 것 같습니다. 가끔 버스나 전철 안에서 안부나 알티를 하는 정도이지요.


새벽에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트윗을 보다 갑질모녀 사건을 접했습니다.
갑질과 모녀에 대한 분노와 질책은 너무도 당연하니 저까지 가세할 필요를 못느꼈습니다.
저는 여지껏 혜민스님의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을 비난한 트윗을 비판한 트윗 알티를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단체로 비난할 때 가세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소수의 입장에서 달리 생각해볼 점은 없을까, 우리가 놓치는 점은 없을까를 생각하는 편입니다.

 

왜냐고요?
갑질의 본질은 강자가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하는 것도 저는 다수의 지위를 이용한 소수에 대한 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는 의견의 다양성이 생명이고 이를 존중해야만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다수에 편승해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보다는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우리사회가 균형감각을 갖추는 데 한술 보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갑질모녀 사건을 접하고 순간 너무 화가 났습니다.
자신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일텐데 알바생이 아무리 잘못했기로서니 저럴 수가 있을까.
저렇게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동시에 너무 이해가 안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알바생이 모두 대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바생은 학생을 일컫는 말이니
대학생 한 명이 아니라 3-4명이 잠시도 아니고 2시간이나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제게는 너무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여자대학에서 유난히 학생의 권리의식과 당당함을 강조하는 사회에 있다 보니 알바생의 행위가 하나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순간 저항하지 못한 그들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구조에 대한 자괴감이 생기더군요.
"우리사회 갑질은 특별할 것도 없다만"은 이것이 구조적 문제임을 의식한 것입니다.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다음에는 “을 만든 이 사회구조가 슬프다”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알바생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이 땅의 모든 젊은이 그리고 젊을 때 가난했던 저를 포함해서 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존감은 만냥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신감을 획득한 경험이 아이를 자라게 하듯이
성인에게 있어서 자존감은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갑질하는 사회에 산다 해도 알바생 4명이 무릎을 꿇으라는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했다고 그들을 모두 해고하는 게 백화점 입장에서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백화점도 새로운 알바를 한꺼번에 구해야하고 또 새로 채용한 알바가 서비스직에 맞는 성정인지 알 수도 없고 게다가 새롭게 훈련시키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거든요.

 

구조가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관계가 갑과 을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일방, 수직적이지는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상호의존성을 갖는 게 현실입니다.

갑질 모녀도 그 백화점에서 블랙컨슈머로 지정한다면 다른 백화점으로 옮겨 가는게 그리 쉽지 않을겁니다. 어차피 그녀도 거리나 품질을 모두 고려하며 최선의 백화점을 선택했을테니까요. 게다가 을이 대한항공 직원이 아니라 알바일 경우에는 잃을게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이번엔 겁이 나서 혹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얼떨결에 무릎을 꿇었을지언정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희망사항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알바생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제 생각과 똑 같은 답변을 하더군요.
겁이 나서 그랬다고....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저도 매일 밤 어떻게 죽으면 보험이라도 받아서 사후에 남은 가족이 사채 빚을 청산할 수 있을지 죽는 방법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던 자존심이 그나마 지금까지 저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할수록 현실과 쉽게 타협할 욕구가 생기겠지만 일단 한 번 그렇게 하게 되면
자존감을 잃기 때문에 그 후엔 자신을 지킬 힘이 더 없어져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글이 공감능력이 부족해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제가 늘 강조했던 이론적 엄마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알바생들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분노가 치밀어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앞으론 그러지 말란 말을 먼저 했네요.
지난 6개월간 군대를 제대한 작은 아들이 각종 알바를 했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나름 분노를 삭이고 침착하게 충고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공감능력은 부족했습니다.

 

학생과 교수가 서로 You라고 부르는 수평적인 국제대학원에서 십수년 있다보니
그런 문화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공감할 여유가 별로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판하는 사람은 물론 그 알바생에게도 여러 번 사과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제 트윗을 알바생을 비난한 것으로 해석했기에 그 학생에게 더욱 더 미안할 뿐입니다.
 
하지만 버럭하는 현실의 엄마가 늘 침착한 이론적 엄마보다 나쁜 건 아닙니다.
가끔은 그 버럭이 엄마와 아이를 이어주는 강한 공감대 형성에 기여하기도 합니다.

 

출산 직후부터 논문 쓴다고 거의 방치하다시피한 둘째 아들은 저를 늘 소 닭 보듯 했습니다.
저에게 집착했다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제가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든, 해외출장을 가든 관심을 끄고 살았습니다.


아이가 뭘 물어봐도 답도 잘 안하고, 고집은 어떻게 센지 학교를 한 번 안가겠다고 선언하면 도무지 설득도 매도 아무 것도 통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생인 아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 지난 번에 횡단보도 지나다 차에 치일 뻔했다”

저는 순간적으로 초절정 분노의 버럭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횡단보도 혼자 건너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너네 횡단보도 건너지 말라고 집도 학교 옆으로 이사왔고 길 건너는 친구 집에도 가지 말라고 했잖아. 횡단보도에서도 교통사고 난다고 얼마나 얘기했어?”
친한 선배의 아들이 횡단보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자른 걸 목격한 후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취했던 조치였습니다.

 

“너 없이 엄마 어떻게 살라고 그런 짓을 했어?
길거리라는 것도 잊고 그만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맞아도 울지 않던 아이가 처음으로 달기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습니다.

 

그 후 아이는 저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 오늘도 학교 가야돼?” 넌지시 묻기 시작하더군요.
엄마의 사랑을 버럭엄마에게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늘 버럭엄마임을 반성하며 또 다짐하는 햐니님을 비롯한 느림보 부모님들,
너무 자괴감 느끼지 마세요.

중요한 건 부모의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침착한 엄마든 버럭 엄마든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있으면
아이들은 다 압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은 본능적으로 진심을 가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쁜 사람을 밀쳐내고 좋은 사람을 유난히 잘 따릅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진리를 믿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나눠주자구요.
내 자식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 우리나라, 전세계의 아이들에게요.
지난 해 약속드린대로 새해부턴 느림보학교도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일을 더 적극 발굴해 회원님들과 공유하고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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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햐니 | 작성시간 15.01.15 아놔~ 저도 맨날 우리 남편한테 혼나는데~ ㅜㅜ
  • 답댓글 작성자초록생각 | 작성시간 15.01.16 취소해도 속마음 다 내보였어요 ㅎ
  • 작성자일체유심조 | 작성시간 15.01.15 엄마의 입장에서 속 터져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말라는 충고 충분히 공감합니다.
  • 작성자초록생각 | 작성시간 15.01.16 맘고생 심하셨는데 말주변 없어 지대로 응원도 위로도 못했네요ㅠ
    말로 표현되지 못한 맘 있는거 아시죠?
    우리 모두 교수님의 진심을 알기에...
    교수님 말씀중
    < 아이들은 다 압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은 본능적으로 진심을 가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힘 얻고 갑니다.
    늘 버럭하고 후회하고 또 반복하고..
    그러다 아이랑 사이가 안좋아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아이가 자라서 기억속에서 버럭엄마는 좀 삭제해쥤으면 하는 바램도 해보고..
    그런데 교수님 강의에서도 그랬고 상담때도 그랬고, 윗글에서도 그랬듯
    대부분 이렇게 사는구나를 느끼며 위로 받은 일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초록생각 | 작성시간 15.01.16 어쩌면 교수님께서 겪어셨던 그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저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더더욱 진정성을 느끼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구
    언제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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