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의 5월 18일.
나는 강릉교도소, 강릉교도소 감시 망루의 지하 깊은 곳, 철제문으로 세상과 완벽히 차단된 곳에 갇혀 있었다.
5.18 며칠 전부터 회유와 협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냥 지나가라, 구호를 외치거나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함께할 동지는 멀리 다른 사동에나 있고…, 나는 위축됐다.
하지만 5.18의 아침이 밝았을 때 나는 외쳤고, 수십 명의 경비교도대원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나는 개처럼 끌려 망루 지하 깊은 곳으로 끌려갔다....
철제문이 닫히자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됐다.
고백하건데 죽을까봐 무서웠다. 교도관들이 실수해서 나의 존재를 잊어버릴까봐 무서웠다. 망루 지하는 완벽하게 세상과 유리된 곳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징벌방은 양반이었다.
내가 살짝 앓고 있는 폐소공포증은 아마 그 때 생긴 것이리라.
생활인으로 살다보니 한동안 5.18을 무심히 지나 보냈다.
광주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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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하얀사슴 작성시간 16.05.19 더불어... 어쩌면 불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의 상처도 잘 아물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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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파란새벽 작성시간 16.05.19 사연은 조금씩 다르지만 저마다 '그날'의 기억을 갖고 있을듯 합니다. 지금 조금씩 두려운 것은 '그날'이 그저 역사라는 이름으로 추상화되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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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freebird 작성시간 16.05.20 ㅠㅠ..86년이면 저는 5.18 이 뭔지도 모르는 시골 저 구석의 중딩이었네요. 멀지 않은 시기인듯 샘의 고초가 느껴져서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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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헤라 작성시간 16.05.23 그날의 희생이 얼마나처참하고 아픈것인지 아이들에게도 꼭 가르쳐야합니다. 저는 스무살이넘도록 빨갱이들소행인 폭력시위정도로 알고있다가 결혼하면서 처음 광주에가면서 신랑에게 그날의일들을듣고 뒤통수맞은것같은 어른들에게속은것같은기분에 참 마음이복잡했더랬습니다. 그 뒤로 정치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노통님 말씀처럼 깨어있게되었죠. 그 고통을견디고 버티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힘드셨을지 가늠도할수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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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튼튼이 작성시간 16.05.29 ㅠㅠ 모르고 살아서 그저 죄송한마음, 진실을 안다고 한들 얼마만큼 느끼고 알 수 있을까요? 86년 5월은 지금보다 푸르고 청명한 하늘, 사생대회를 가고 시험성적을 고민하면서도 유행가요를 따라부르고, 개그프로를 보며 웃는 평범한 행복을 누렸을 그때, 누군가는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을 희생했을 그날.... 너무도 가볍게 느껴서 더욱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