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젊은 나날들을 그려보며’
- 갑신년의 세 친구. 안소영 지음. 창비, 2011-
김지후 / 수원다산중학교 1학년 10반 6번 gonggam0710@naver.com
사흘간의 천하. 그리고 그 마지막 밤. 봄꽃과 같이 싱그럽던 젊은이들의 불꽃이 꺼지고, 개혁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눈에서 흘러나온 진한 눈물은 고이고이 모여 큰 호수를 이루고, 그들이 내쉰 깊은 한숨들이 천둥이 되어 천지를 흔들자, 그들이 홀로 뱉은 말들은 역사가 되었다. 갑신년의 세 친구. 그들은 비로소 스스로 역사, 그 자체가 되었다.
역사에는 조금의 빈 구석이 있다. 인간성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책에서 만났던 그들은 ‘위인,’ 으로 일컬어질 뿐, 그들이 어떻게 기구한 삶을 살아내었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 앞에서 어떤 고민을 했을 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안소영 선생님의 <갑신년의 세 친구>는 그러한 역사의 빈 구석을 눈물, 혹은 웃음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역사 소설이다. 갑신정변의 주인공들을 딱딱하게 묘사하기 보단 그들을 나약한 ‘인간’ 한 명으로서 이해하고, 수없이 무너졌을 그들의 속내를 글로서 기억해내었다. <갑신년의 세 친구>를 읽으면서 나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에 대한 깊은 연민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 누구에게도 말로는 지지 않을 것 같던 당당한 청년 김옥균. 소년 부마에서 어엿한 개혁가로 성장한 박영효, 그리고 역사 앞에 무릎 꿇은 홍영식.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벗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그래서 나는 스스럼없이 갑신정변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이라 믿고 유교에 기대어 살아온 조선 사람들. 그러나 1884년 전후, 조선에 갑작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럽지 않았지만 조선이 애써 외면해왔던, 피할 수 없던 바람이라고 설명해야 옳을 듯하다. 조선은 숨 돌릴 틈 없이 변해가는 세계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고, 미래를 향해 가는 배에 탑승할 지를 두고 큰 혼란을 겪었다. 북촌의 젊은 양반들은 세계의 흐름을 읽고, 그 대열에 합류해 나라를 개혁하고자 했다. 조선의 젊은 왕 역시 그에 동참하여 지금까지 천대해왔던 왜국의 서양식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젊은 왕과 그의 신하들은 현실의 벽에 자꾸만 부딪혔고, 그들이 부딪힌 벽에는 점점 균열이 생겼다. 미세했던 균열은 어느새 금방이라도 깨질 듯 거대해졌고, 마침내 조선을 둘러싸고 있던 벽이 무너지는 듯했다. 1884년, 김옥균과 홍영식, 박영효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갑신정변 (甲申政變)이 일어났다.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많아졌고, 마침내 그들은 신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그들의 혁명은 성공일 줄 알았다. 그러나 청군이 무력으로 공격하자, 믿고 있던 왜병은 철수하고, 신 정부는 무참히 스러지고 말았다. 삼일천하. 갑신정변은 너무도 아프게, 너무도 쉽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갑신년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그들의 마지막 밤을 살다 갔다.
뜨겁고, 눈물 나고, 웃음 짓게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 <갑신년의 세 친구>를 읽어가며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의 안타까운 최후와, 그들이 남긴 것들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조선의 번창을 바랬을 그들. 그러나 무참히 스러지고 말았던 그들. 앞날을 고민하며 진지하게 토론했을 그들의 젊은 날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아름답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갑신년의 그 일을,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억하다보면 언젠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이 어떤 것을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