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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찬송

리처드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펌)

작성자강구만|작성시간19.07.09|조회수305 목록 댓글 5

감자알이 참 굵다. 감자를 캐는 할머니의 손 위로 감자보다 굵은 땀이 떨어진다. 이것을 내다 팔아서 손주들 과자도 사주고 간만에 새 옷도 한 벌 사야겠다는 생각에 할머니 얼굴의 주름은 땀보다는 기쁨과 생기로 더욱 출렁인다. 드디어 장이 섰다. 할머니께서 창고문을 힘껏 민다. 그런데 감자가 온데 간데 없다. 맙소사! 감자를 도둑맞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세상에 그 감자가 어떤 감자인데.......”


할머니는 감자를 도둑맞음으로 신(神)과 만난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할머니는 감자를 도둑맞음으로 신을 만든다. 자신의 수고와 소망이 깃든 감자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 할머니가 꺼낸 든 카드가 바로 ‘하늘’이라는 ‘신’이다.


리차드 도킨슨은 신이란 인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창조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신이란 인간의 책임 영역을 벗어난 사건을 인간 스스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화적 유전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철학자 포이에르바하는 다음과 같이 신을 정의했다.


‘신은 인간들이 자신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투사하여 되돌려 받은 자신의 이상향에 불과하다’


포이에르바하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이렇다.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낫게 해주는 신이 반사되어 오고, 수험생에게는 합격을 보장해 주는 신이 필요하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에게는 금메달을 보장해 주는 신이 등장한다. 감자를 도둑맞은 할머니에게 감자를 지켜주거나 보상해 줄 신이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리처드 도킨슨은 세계적인 진화론자(다윈주의자)답게 이러한 신의 관념이 어떻게 전세계 거의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를 진화론적 자연선택론과 유전자(DNA)를 통하여 규명하고자 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이라는 공포와 무지의 산물을 긍정하고 의사결정하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에 적합한 방법을 개발하는 쪽이 생존의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조건 살아남기를 원하는 DNA의 속성상 신이라는 관념은 아주 오래 전에 없어졌어야 했다. 그는 로버트 퍼시그가 했던 “누군가 개인이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하고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 한다”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신의 관념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유는 밈(MEME)이라는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에 의해 자기 복제된 결과라고 한다. 과거에는 문명과 지식의 수준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밈(MEME)의 변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지만, 현재와 같이 지식이 지속적으로 발달․축적된다면 결국 신의 관념도 더 이상 복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기독교는 서양 문화의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유전 선택에 의하면 오히려 신의 관념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리차드 도킨슨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지적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예리한 논리적 공격을 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전쟁과 테러의 원인이 되었던 종교와 그 중심에 있는 유일 신 논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강박관념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의 주장은 매우 과학적이며 논리적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 누구라도 신에 대한 맹목적인 억지주장만 하지 않는다면 그의 주장에 찬동할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리차드 도킨슨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미천한 학식의 소유자인 필자가 매우 건방지게도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리차드 도킨슨 역시 신을 아주 잘 섬기고 있는 강박관념의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그가 섬기고 있는 신의 이름은 바로 ‘과학’이다. 과학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미신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어떤 현상이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척도의 역할을 과학은 의심의 여지없이 수행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과학은 정확할까? 과학은 과연 진리일까?


과학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동일한 조건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원인과 조건을 고정시킴으로써 동일한 결과를 반복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면 그러한 관계를 과학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물리학은 원인이 되는 어떤 물질을 끈질기게 해부해 왔다.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조차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학의 집착어린 해부는 플라즈마라는 아주 큰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플라즈마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즈마란 고정된 알갱이가 아니라, 주위의 조건에 따라 변하는 어떤 반응이다. 물질의 핵심은 고정된 알갱이가 아니었다! 변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조건과 시간에 따라 그때 그때 변하는 관계 파동이었다. 뉴턴과 데카르트에 의해 마치 신처럼 여겨졌던 고정적․직선적 사고방식의 대전환이 요구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모든 물질과 물질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상대적이었다!


현재 양성자 물리학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필자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성자 물리학의 태동을 지루하게 설명한 것은 그것이 바로 리처드 도킨슨이라는 세계적인 학자가 과학이라는 신을 섬기는 광신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과학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인간이 실시할 수 있는 실험의 조건은 계속 변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이론들이 지금은 폐기되었다. 우리가 볼 멘 소리로 하는 변명이라는 것이 ‘현재 수준의 과학의 한계’라는 꼬리표 정도이다. 그렇다면 리차드 도킨슨이 행한 일련의 과학적 작업 역시 앞으로 얼마든지 변경되고 폐기될 수 있다. 충분히 그렇다. 그러므로 현재 수준의 과학이 진리라는 가정하에 어떤 것을 분석하고 그 분석은 무조건 옳다라고 주장한다면, 신은 존재하고 그러므로 신의 명령이나 경전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나는 무조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


포이에르바하가 신의 정체를 잘 간파했듯이 리차드 도킨슨 역시 자신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신을 과학에서 찾은 것뿐이다. 과학 역시 더 발전된 과학에 의해 폐기된다. 그러므로 그 과학도 절대적이지 못하다. 항상 상대적이다. 안타깝게도 리차드 도킨슨처럼 뛰어난 과학자도 성직자에 불과하다.


고백컨대, 나는 리차드 도킨슨의 주장에 찬동한다. 신은 분명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강박관념이 신을 잉태했다. 하지만 나는 그 근거를 과학에서 찾지 않는다. ‘자아’에서 찾는다. 나라는 괴물에서 찾는다. 인간은 나를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신이던 과학이던 묻지 않고 나에게 유리한 것은 진리요 나에게 불리한 것은 비진리라고 치부한다. 신의 명령에 처절하리만큼 순응하는 자들도 그렇게 순응하고 있는 나 자신만큼은 결코 버리지 못한다. 신의 명령에 잘 따르고 있다고 확신하는 만큼 오히려 자아는 더욱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신의 명령을 이렇게 잘 따르고 있는 나를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장려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하지 않은가?


성경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 책에 보면 당시 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전문가 집단인 ‘바리새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성경의 율법을 지켰다. 어려서부터 배운 탓에 경전을 외우는 것은 기본이고 율법적 생활이 몸에 베여 마치 성자처럼 보인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한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의 차림새, 출생지, 출생 현상 등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메시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아를 신으로 삼은 결과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나라는 거짓 신을 평생 섬기면서도 인생을 알고 진리를 알며 과학에 익숙하다고 속고 있지는 않을까. 글을 마감하면서 성경구절을 하나 인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잘 믿고 있다는 예수님께서는 정작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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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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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7.09 진화론자들만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땅을 다녀가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전부 불신자들입니다.
    스스로 성도라 위장하고픈 그 탐심 때문에 주가 되신 분을 만날 기회조차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지요.
    주여 주여 하면서 셀프 고멜이 되기도 하고 셀프 소경이 되기도 하고 셀프 세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을 성경이 일곱귀신 들림이라고 하는 것을 정작 본인들은 모릅니다.
    도킨슨의 말대로 자기라는 신을 만들고 그신의 뜻대로 성경까지 새로쓰는 사람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들인 것입니다.
    "차라리 소경되었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 하니 죄가 그냥 있구나"
  • 작성자들풀 | 작성시간 19.07.09 장로님은 복음 뿐 아니라 인문, 과학, 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그 깨닫~음의 지혜가 정말 놀랍습니다 ~~^^
    맞습니다 인간은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는 서너살 무렵부터 이미 자기속의 '신' 을 키워 나갑니다 세상속에서 자신은 못할게 없죠 그러다 어느순간 자기 안의 신 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외부에 또다른 신을 만들어서 그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어느날 진짜 '신' 이 그들을 찾아와서 가짜를 부수기 시작합니다
    "네가 무엇을 할수있는지 해봐라!
    내가 다 부숴 줄 테니 " 가짜는 매일 진짜 신에 의해 부숴지고 다음날이면 또다른 가능성을 만들고... 그렇게 우리는 죽을 때 까지 끊임없이 진짜 신을 향해 대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7.09 전쟁하시는 하나님,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어쩌면 다른 신이 아닌 이스라엘이라는 우상과 전쟁하신 하나님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와 전쟁하시는 하나님이 아닐까요? 이천년의 교회사가 그것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해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세상의 고지에 우뚝 서려는 자들이 이땅의 기독인들이니까요.(사5:8) 그러나 그것으로도 불안해서 탈주와 재영토화를 꿈꾸는 세상 건축자들, 예수님은 오늘도 교회라 이름하는 건축자의 버려진 돌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삼대가 약속의 땅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들이 하늘의 사람들이겠지요.
  • 답댓글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7.09 강구만 과분한 칭찬을 하셨는데, 전 머리도 나쁘고 지혜도 없고 나이는 있고 그래서 제대로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죄인과 함께하신 그분의 증인일 뿐입니다. 그래도 맨날 욕만 듣다가 오랫만에 칭찬을 들으니까 기분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브리엘 | 작성시간 19.07.10 강구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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