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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

27. 천사와 사탄은 정말로 존재하나요?

작성자송사도요한|작성시간11.03.02|조회수678 목록 댓글 9

야곱의 우물 27

 

천사와 사탄은 정말로 존재하나요?

 

어린 시절 우리가 자주 상상하곤 했던 장면 하나.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부끄러운 일을 할 때면 내 머리 양쪽에 붙어서 한 쪽은 양심대로 행동하라고 나를 타이르고, 다른 한 쪽은 “그 까진 것 해도 괜찮아. 남들도 다 하는데 뭐”라고 살살 유혹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천사와 사탄이다. 천사는 늘 하얀색 옷을 입고 날개를 달고 사랑스런 미소를 띠고 있는 반면, 사탄은 주로 검은색 옷에 괴상한 뿔을 달고 험악하게 생겼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린 시절에는 천사와 사탄이 내 마음 안에서 싸우면 대개 천사가 이기는 일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탄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양심 속에서 귀 기울여 듣던 천사의 음성은 점점 듣기 싫은 교과서 같은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들리고, 때로는 사탄의 속삭임이 달콤하다 못해 천사가 그냥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맘까지 들게 하니 말이다.

 

성경은 천사가 주로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해주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맡아왔다고 전해준다(루카 1, 19). 천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영적 존재로서(창세 28, 12), 우리를 보호해주고(마태 18, 10), 우리의 기도를 전해주며(묵시 8, 3), 그리스도의 협조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풀어주기도 한다(사도 1, 10-11). 흔히 사탄을 천사와 대적해서 싸우는 힘 있는 영적 존재로 알고 있지만, 구약성경에는 사탄이 하느님의 궁정의 천사 중의 하나로서 하느님의 능력에 종속되어 그 분의 정의와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는 검사와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욥기 1-3장). 하지만 오랜 교회 전승은 사탄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뜻에 반대하여 천사의 그룹에서 밀려나 조직적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며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힘센 존재로 가르쳐왔다. 예수님도 공생활 이전에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고(마태 4, 1-11),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의 본성을 흔드는 사탄의 세력과 맞서 고뇌하시며(마태 26, 37-39) 죽음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영광의 승리에 자신을 봉헌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영신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영적 투쟁은 이 사탄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하고자 하는 열망을 수호천사들과 하늘나라의 성인들의 도움으로 지켜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고통이 신비인 것처럼 악의 문제 역시 풀기 힘든 신비 중의 하나이다. 창세기의 원역사에 나타난 ‘뱀’의 유혹(창세 3장)은 인간 본성에 숨겨진 ‘악’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성서적 표징에 속한다. 인류가 겪고 있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투쟁의 역사와 이에 대한 해석을 일일이 돌아보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 발견되는 선과 악의 투쟁은 선하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적지 않은 걸림돌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악이 선의 결핍에서 나온 것이라는 통념을 지지해왔다. 즉 완전한 선(善)이신 하느님은 결코 악을 창조하신 적은 없지만, 당신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에 개입하시는 순간 악은 이미 선을 드러내기 위해 허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 시간과 영원의 이분법적 갈등은 빛이신 하느님이 창조 때 어둠과 빛을 가르시고(창세 1, 4), 죄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을 허락하시는 순간(창세 3, 19) 시작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영원하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요한 1, 14)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 1)을 창조하시는 선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이다.

 

천사와 사탄은 이렇듯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창조와 구원 역사를 지탱해주는 훌륭한 표징이면서 동시에 생생한 실재들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천사와 사탄을 의인화해서 표현하다보니 인간이 겪는 다양한 악의 체험들을 사탄의 형상으로 표현해내는데 익숙하고,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선한 것들을 천사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데 익숙해진 것일 뿐이다. 성숙한 신앙인은 어린 시절 가졌던 천사와 사탄의 달콤한 대화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과 나, 하느님과 인류가 맺는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할 줄 안다. “내 몸에 가시”(2코린 12, 7)와 같은 사탄의 유혹과 악의 실재는 어쩔 수 없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나약한 우리들의 처지를 비관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영과 교만에 빠진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어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여긴다. 또한 세상의 악의 실재들을 사탄과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단순한 논리를 벗어나, 우리에게 선사된 하느님의 자유가 시간 속에 제한되어 맞을 수밖에 없는 죽음과 고통의 현실이라고 여길 줄 안다. 그것은 마치 욥이 고통의 문제를 죄와 악의 결과로 보지 않고, 인간 본성에 심겨진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우리들의 본성적인 결함과도 같은 것이다.

 

천사와 사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신화속의 형상이 아니라, 우리들 영혼 깊은 곳에 심어주신 하느님을 닮은 우리들의 영적 본성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볼 수 없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표징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천사와 악마의 형상은 다를 수 있다. 너무도 미운 사람, 상상을 초월하는 악을 자행하는 인륜 범죄자들의 얼굴 속에서 사탄을 그려볼 수 있다. 반대로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평온한 얼굴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들의 놀라운 손길 속에 천사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애타게 찾는 내 영혼 안에서, 끊임없이 내 삶을 갈라놓는 내 영혼의 상처들 안에서 매일 천사와 사탄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천사와 사탄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은 우리 일상의 선과 악의 체험에서 비롯되었지만, 천사의 존재가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고,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과 싸우도록 돕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사탄의 유혹을 조금은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넘어지고 마는 내 부끄러운 모습 뒤에 “에구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애교 섞인 뉘우침을 외면하실 정도로 하느님이 쫀쫀한 분이 아니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송용민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인천교구 삼산동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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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여초 | 작성시간 11.10.24 감사합니다^^*
  • 작성자천사 안젤라 | 작성시간 11.11.25 신부님? 저도 아주 어렸을 적에 신부님과 똑같은 마음 이었답니다
    그리고 성인으로 살아 가면서도 신부님말씀 완전히 동감 합니다
  • 작성자역마 | 작성시간 12.03.25 상식에 벗어난 현상들이 날로 일어나는것
    사탄의 책동입니다
  • 작성자나뭇가지 | 작성시간 12.04.25 천사와 사탄은 저 자신의 양면성을 나타내기도 하는것 같아요.
    선과 악의 싸움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선의 쪽을 선택하려 노력합니다.
    신부님 글 감사 드려요.^.^
  • 작성자참나리 | 작성시간 13.05.02 신부님의 글 잘 읽고 제 카페로 모셔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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