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세월을 살아낸 둔터골 회화나무를 살려야 한다

작성자최영숙|작성시간14.09.06|조회수123 목록 댓글 2

 

▲ 2009년 둔터골 뒷산에서 바라본 마을과 복사꽃에 묻힌 회화나무     © 최영숙

 

 둔터골 마을에 들어서면 아, 시흥에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곳이 있었는가 싶었다.

 

 

▲ 2008년 마을 어르신들이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다.     ©최영숙

 

둔터골 회화나무의 나이는 60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당고사를 지내려면 우물을 치우고 이곳에 제를 먼저 지내고 당고사를 지냈다. 회화나무의 가시가 부러져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경외하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2009년 여름 마을 어르신들이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다.

 

 

▲ 2009년 복사꽃 사이로 보이는 둔터골 회화나무     ©최영숙

 

둔터골은 2004년 7월 장현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었다. 2009년 봄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 회화나무는 새싹을 밀어내고 있었다.

 

 

▲ 2008년 11월 둔터골 느티나무의 가을 풍경     ©최영숙

 

가을이 되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냈다.

 

 

▲2009년 둔터골 회화나무로 가는 길에서 노는 어린이들     ©최영숙

 

겨울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마을 길에서 즐겁게 놀았다. 멀리 회화나무가 보였다.

 

 

▲2008년  회화나무 아래에서 빨래를 하시는 어르신     © 최영숙


둔터골이 장현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야 했던 마을 주민들은 회화나무가 이 자리에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당신들이 태어나고 또는 시집와서 인연을 맺은 이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이었기 때문이다. 살아낸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 지켜본 나무에 대한 애정을 넘은 주민들의 경외심은 남달랐다.  보호수목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10년  둔터골 회화나무에 보호수목이라는 띠를 달아주고 공사를 하다     ©최영숙


공사가 시작될 즈음 둔터골 회화나무에게 보호수목이라는 명찰이 붙여졌다.  마을 주민들은 다행스럽게 여겼다.

 

▲2010년  둔터골 마을에서 공사가 시작되다     © 최영숙


마을 주민들이 한 집 두 집 떠나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2010년  쓰러진 명자꽃과 회화나무     ©최영숙


둔터골 회화나무를 제외한 나무들은 옮겨지거나 뽑혀져 나갔다. 600여 년 동안 천천히 들어서던 집들과 집집마다의 이야기를 담았던 장소들은 한순간에 사라져갔다. 마을주민들이 사용했던 우물도 메워졌다.

 

▲ 2014년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남겨진 회화나무는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최영숙


마을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이곳에 살던 집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곳에 남겨진 것은 회화나무 뿐이었다.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떠나자 허리에 두르고 있던 보호수목이라는 이름표도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요즈음 둔터골 회화나무를 베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LH공사에서 이 나무를 베겠다고 했다고 한다. 회화나무가 그 자리에 있어서 고향를 떠난 사람들의 심리적 구심점 역활을 하고 있었는데 불연듯 나무를 벤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었다.

 

2009년도 담은 아래 사진을 보면 회화나무 가지가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공사차량이 다니면서 오른쪽이 잘라져 나갔다. 회화나무는 오른쪽으로 가지를 더 뻗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품위있고 당당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600여 년 역사를 베어내는 것이다.  둔터골 주민들과 동거동락했던 회화나무는 다음에 들어올 주민들과도 만나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어렵다면 이곳에 들어선다는 문화예술회관이나 문화원 앞에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둔터골 주민들에게 회화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가지가 부러져도 가져가지 못할 정도로 신성시 하던 나무이다.  나무에게 안좋을 일이 생기면 걱정이 되는것은  600여년 인연을 맺어오면서 그렇게 주민들과  마음 속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민들은 범배산터널이 뚫렸을 때, 신목이 베어졌을 때, 마을 주민들게 안좋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생겨서 심적 부담이 많았다. 이런 심적 고통을 토속종교라고 치부할 수 는 없다.

 

토지보상을 다했다고  LH공사는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지켜낸 회화나무에게도, 또 유서깊은 마을을 떠난 주민들과 이 마을로 들어올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가교역활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공사할 때 보호수목이라고 이름표를 달아줬으면, 당연히 보호수목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09년 회화나무 아래 고양이 두 마리가 사부작거리며 지나가고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최영숙

 

둔터골 회화나무를 시로 쓴 임경묵 시인의 시를 옮겼다.

둔터골* 회화나무


임경묵


  웅숭깊은 우물가에 회화나무 한 그루. 얼마나 많은 바람과 햇살이 회화나무 푸른 이파리 사이를 헤엄치다가 우물 속으로 떨어졌을까요? 이끼처럼 납작 엎드려 우물에 반짝이는 햇살의 잔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참나무 고갯길 넘어 개나리봉으로 달맞이 다녀온 아낙들의 웃음소리, 들깨밭 머리에도 자줏빛 싸리꽃 피었더라며 두레 파작을 끝낸 사내들이 꽹과리, 장구를 내려놓고 왁자하게 등목하는 소리가 지금도 들릴 것만 같습니다.


  갯바위 따개비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은 막다른 골목일수록, 산에 가까울수록 벌써부터 하나, 둘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우물가 삼거리를 서성이다가 회화나무 붉은 외피 하나를 주웠습니다. 오래된 햇살 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햇살에 달궈진 푸른 이파리들을 식히려는 것일까요? 후두두두 소나기 긋고 지나갑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말고 우물 쪽으로 조금 비켜서서, 너무 많은 꽃을 이고 있는 늙은 회화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경기 시흥시 광석동 자연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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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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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경묵 | 작성시간 14.09.11 최영숙 선생님 고맙습니다. 나무 한 그루도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는 택지개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곳에 사람의 삶터가 생긴들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최분임 | 작성시간 14.09.15 그러게요. 저 회화나무 꼭 살아 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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