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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티내기

『대성당』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작성자빅피쉬|작성시간11.12.13|조회수193 목록 댓글 10


1.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경이로움

최근 삼주 동안 나는 계속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읽었다. 김중혁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대성당>에 대해 예찬을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김연수 때문이었다. 김중혁을 알게 된 건 김연수 때문이니까. 이게 억지라고? 소설집『대성당』의 번역자가 ‘김연수’인데도? 김연수 때문에 김중혁을 알게 되고, 김중혁 때문에 카버를 알게 됐는데 카버의 책 위에 쓰인 (다시!) 김연수의 이름이라니. 그러니까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나 보다.

첫 번째 소설집『제발 조용히 좀 해요』을 통해 카버를 만났을 나는 그에 대해 전무했다. 비록 지인(F4 김중혁 선생)의 소개로 호감을 가지고 만났다고는 하나 그저 평범하고 어색한 시작이었다. 첫만남에도 그의 문장은 호흡이 짧고 명료한 맛이 있어 읽는 게 수월 했다. 그런데 눈을 통해 무리 없이 소화된 문장들이 대뇌로 진입하려들면 삐걱대기 시작했다. 빙빙 돌리지 않고 직구를 던지는 것 같은데도 이 사람 속이 잘 보이지 않아 내심 당황도 많이 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읽어 나갔다. 그렇게 세권의 소설집을, 50여 편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어느 순간, 내가 이 사람의 말투(?)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무심한 말투가, 힘을 싣지 않고도 눈길을 사로잡는 그의 평범한 어휘가 좋아진 거다. 이를테면 나는 다음 문장을 읽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스웨덴 사람들, 또 하는 일이 뭐래? 농사 말고?”

나는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리는 벌써 드라마에 빠져 있다.

자기가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게 분명하다. 사이렌이 울린다. (…)

                                                                              -작품 <굴레> 중에서


내가 왜 이 씬을 맘에 들어 하는지 누군가는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다. 사실 궁금해야 할 사람도 없겠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에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의 사소한 버릇을 혼자만 알고 있다고 느낄 때 느끼는 짜릿함 같은 거라고 말이다. 하!

  

전혀 근사하지도 않은 것들, 시시한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는 번번이 주인공이 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시시하면서도 매혹적이다. 별것 아닌 나란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처럼 말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지만 나는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으리라.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경이로운 체험이 아닐 수 없다고.


 

2. <대성당>

드디어 <대성당>이다. 애당초 카버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이 작품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가장 마지막에 읽은 건 그저 저자의 집필 순서를 따랐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한다.

궁금한 마음에 이 소설을 가장 먼저 읽었더라면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카버가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응시하던 사람임을 모른 채, 그가 줄곧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인지 비꼬는 사람임을 모른 채 읽었다면 말이다.

 

아내의 친구가 집에 방문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맹인’이다. 남편은 생전 맹인은 만나보지도 못했다고 투덜댄다.

게다가 맹인은 아내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서로 다른 이성과 결혼을 한 후에도 오랫동안 연락을(녹음테이프를 이용해) 이어온 소울메이트 같은 사이였으니 질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편 입장에서는 그에게 호감을 갖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편은 그 사람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맹인은 이런 남편과는 다르게 호방한 면이 있어보였다. 그는 선글라스도 착용하지 않았고 지팡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턱수염이 덥수룩했는데 남편은 그마저도 못마땅한 것 같았지만(맹인이 턱수염이라니, 식의 반응이랄까) 내게는 멋져 보였다. 그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고 얼마 전에 상처(喪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눈에는 그가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지팡이도 안내견도 없이) 훤히 보였으니까.

인사를 나누고 배불리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셋은 거실에 둘러앉아 술을 마신다. 가운데서 부지런히 분위기를 달구던 부인은 피곤했던지 먼저 잠이 들고 만다. 남편과 맹인 두 사람만이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무슨 말을 할지 난감한 남편은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대성당’에 관한 프로를 보게 된다. 내레이터가 설명을 하다가 멈추고 카메라는 대성당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소리없이 TV에 집중하는 일이 결례인 것 같아 나름대로 대성당의 모습을 묘사해주기 위해 애쓴다. 벽의 그림에 대해서, 조각상에 대해서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언어를 동원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너무 지루하다고?

이제 하이라이트다. 나는 ‘마법’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남편과 맹인 사이에서 어떤 마법이 펼쳐졌다고 말이다.

그 마법이란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세상이 있다는 거다.

그 어둠속에서 맞잡을 수 있는 손이 있을 때 우리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세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많은 사람이 이 마법을, ‘레이먼드 카버’를 직접 체험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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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빅피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15 내안에 '긍정' 있는 거야?ㅎㅎ
    사람들과의 사귐을 어렵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연애 많이 하던 시절 ㅎㅎ).
    근데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어렵다. 왜 그럴까? ^^
    내가 그때보다 못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까?
    나중에 여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보자고 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별마루 | 작성시간 11.12.18 사람 사귐을 쉽게 하고 싶으시다면 닉네임을 빅피쉬에서 인어공주로고 바꾼다음
    결혼에 대해 함구한다면 다시 예전같은 시절을 누릴지도...
    그러나 어제 안병무 평전을 읽었더니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결혼을 함으로써 사람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고. 이성을 대할 때 쓸데없는 거품이 빠졌단 이야기지. ^^
    나는 모든 솔로들이 그렇듯이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 때마다 너의 자유가 부러울 따름이다.
  • 작성자최재준(귀농귀촌) | 작성시간 11.12.19 아직 다읽지는 않았지만 대성당이 사랑.... 보다는 개인적을 더 낳은듯합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김연수가 하루키보다 낫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ㅋㅎㅎ
    참고로 고요라는 단편속에서 이발소라는 단어가 등장함으로써 전 하루키를 떠올렸습니다^^
  • 작성자초이 | 작성시간 11.12.20 빅피쉬님의 글은 참 신선하면서도 감동이 있어요. 애독자 중 한 명!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부인이 눈 뜬 채로 그 집단 수용소에 들어가서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옯겨 봅니다 " 그녀는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자신 역시 눈이 멀기를 바랐다. 사물의 눈에 보이는 거죽을 뚫고 들어가 내적인 면에까지 다가갈 수 있기를, 그 눈부신 불치의 실명 상태에까지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 - P87
    "그때 한숨 소리가 들렸다. 신음. 처음에는 숨을 죽인 가운데 시작된 아주 작은 울음 소리,
    언어 처럼 들리는 소리, 언어여야 하는 소리, 그러나 언어의 의미는 점점 높아지는 소리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 P135
  • 답댓글 작성자빅피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22 눈부신 불치의 실명상태라... 이러니 소설을 좋아할 수밖에 ^^ (영화 '머니볼'의 브래드를 흉내내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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