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묵상 #072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Master, no offering, costly and sweet )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6.15조회수180 목록 댓글 1찬송가 묵상 #072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Master, no offering, costly and sweet )
(2022-06-15)
찬송가: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영어제목: Master, no offering, costly and sweet
작사자: 에드윈 파커 (Edwin Pond Parker, 1836-1920)
찬송곡조: LOVER'S OFFERING
작곡자: 에드윈 파커 (Edwin Pond Parker, 1836-1920)
찬송가사
1.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게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2.
연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
성실과 인내로 내 형제 이끌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3.
두려운 마음에 소망주고
슬픔에 싸인 자 위로하며
길 잃은 자들을 친절히 이끌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4.
인생의 황혼이 깃들어서
이 땅의 수고가 끝날때에
주님을 섬기다 평안히 가리라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아멘
[찬송 묵상]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누가복음 7:46b)
이 찬송의 가사에서는 향유를 부은 여인을 막달라 마라아라고 칭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 찬송의 성경 근거를 누가복음 7장에 나타난 사건을 말하고 있어 그러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7장 46절 이하의 기록을 살펴보면 여인의 이름이 막달라 마라아라고 칭하지 않고 한 죄를 지은 여자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향유를 부은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에서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가, 그리고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베다니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7장에서는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 받았을 때 동네의 죄 지은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름을 명시한 요한복음 마리아와 마태복음, 마가복음의 여인은 동일 인물이라는 것에 성경학자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으로 보아 누가복음의 기록은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의 죄인 여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생갑니다.
그 죄 많은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였을까요?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흔히 막달라 마리아가 죄인이었으며 창녀였다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막달라 마리아가 방탕한 여자였다는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처음 목격한 여인이었는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서 일곱 귀신을 예수님이 쫓아 주신 여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왜 누가복음에 나타난 죄 많은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단정지었는지는 필자도 의문을 가지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게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베다니 마리아와 또 다른 여인이 향유를 부어 장례를 준비하게 한 사건을 함께 전해 기념하라고 하셨으니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뿐인 것입니다.
https://youtu.be/2P4NFt6xXWU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 작곡자 에드윈 파커 (Edwin Pond Parker, 1836-1920)
에드윈 파커는 1836년 1월 13일 미국 메인주의 캐스틴(Castine)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 보든 대학(Bowdoin College)을 졸업하고 뱅고(Bangow)신학교와 예일대학을 졸업한 후 1860년 하트포드의 남감독파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1912년까지 목회하였습니다.
그는 찬송가에 대한 애착이 많아 작사는 물론 작곡도 하였습니다.
장로교 공식찬송가인 <찬양의 책(Book of Praise), 1874>, <그리스도교 찬송가(The Christiam Hymnal), 1877> 등 많은 찬송가를 편집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상원의 원목으로도 재임하기도 했습니다.
이 찬송가는 파커 목사가 하트포드(Hart ford)에 있는 중앙회중교회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성경 내용의 설교를 마친 후 1888년에 작사·작곡하여, 설교 마지막에 부른 찬송이기도 합니다.
그는 <교회 창립 250주년 및 성역 60주년 감사예배>를 드린 지 며칠 후인 1925년 5월 28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찬송시를 쓴 시기는 그의 생애의 종반부터였습니다.
파커 목사는 코네티커트주의 하트포드의 중앙회중교회에서 50년간을 시무한 성실한 분인데 그가 56세가 될 때부터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고 나머지 여생동안 약 20여편의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찬송곡조 LOVE'S OFFERING
이 찬송곡조 LOVE'S OFFERING는 파커 목사가 1888년에 작사·작곡하여, 설교 마지막에 부른 찬송시의 제목을 따온 것입니다.
[한국찬송가에서의 소개]
이 찬송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생명의말씀사에서 발행한《청년 찬송가, 1959》에 ‘동포애’란 제목으로 게재된 것이 처음입니다.
이때의 찬송 가사는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게 합니다.
1.
값비싼 재물은 나 없어도 진실한 사랑의 온갖 행동
더 귀한 재물로 정다운 주님께 드립니다 드립니다
2.
날마다 노래로 살아갈 때 음침한 이 세상 맑아지네
친절한 행위로 뭇 심령 건지면 기쁨되네 기쁨되네
3.
공포에 싸인 맘 소망 채워 눈물에 어린 눈 닦아주면
은혜의 이슬이 햇빛에 빛나듯 반짝이네 반짝이네
4.
해 저물 때까지 주의 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겠네
이 세상 이별할 그날엔 즐겁게 주께 가네 주께 가네
이 가사가 1967년 <개편찬송가>를 편찬할 때 지금의 가사로 수정한 것입니다.
[가사 영어원문]
Master, no Offering Costly and Sweet
1.
Master, no offering Costly and sweet,
May we, like Magdalene, Lay at Thy feet
Yet may love's incense rise, Sweeter than sacrifice,
Dear Lord, to Thee, Dear Lord, to Thee.
주여 값비싸고 아름다운 제물은 없습니다.
막달라처럼 주의 발 앞에 드리게 하소서
희생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향을 드리리다
사랑하는 주여, 주님께
2.
Daily our lives would show Weakness made strong,
Toilsome and gloomy ways Brightened with song
Some deeds of kindness done, Some souls by patience won,
Dear Lord, to Thee, Dear Lord, to Thee.
매일 우리의 삶은 약함을 강하게 만들어 보이셨고
힘들고 우울한 길을 노래로 밝히셨네
친절한 행위와 인내로 얻은 영혼도 드립니다.
사랑하는 주여, 주님께
3.
Some word of hope for hearts Burdened with fears,
Some balm of peace for eyes Blinded with tears
Some dews of mercy shed, Some wayward footstep sled,
Dear Lord, to Thee, Dear Lord, to Thee.
두려움에 짓눌린 마음에 희망의 말씀이요
눈물로 소경된 자를 위한 평화의 향유이네
자비의 이슬과 고집스런 발걸음을 드리이다
사랑하는 주여, 주님께
4.
Thus, in Thy service, Lord Till eventide
Closes the day of life, May we abide
And when earth's labours cease, Bid us depart in peace,
Dear Lord, to Thee, Dear Lord, to Thee. Amen.
주여 우리의 황혼까지 주를 섬기게 하소서
인생의 날을 끝내고 우리가 머물게 하소서!
그리고 세상의 수고 끝날 때 우리는 평안 속에서 떠나게 하소서
사랑하는 주여, 주님께! 아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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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6.16 김석중 : 저는 날것 그대로의 직역이 좋다고 봅니다. 초창기 찬송가들에서 발견되는 거친(?)표현들이 오히려 우리 정서에도 맞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를 "내가 비오니"로 바꾼것도 의아하고 "내가 참 의지하는 예수"를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로,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을 "영광의 그 날에 이르도록"으로 바꾼 것은 가사의 깊이를 더 앝게 만든 개악으로 봅니다. 귀한 연구에 늘 감사드리며 짧은 소견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