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초록 잎을 내고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식물들이 한껏 내리는 비로 생의 갈망을 축일 수 있는 오후입니다. 땅과 만물의 생명에게 물을 내리는 축복의 날씨처럼 이번 주 매달 4째 주에 있다는 오블라띠 후원 미사 동안에 제 영혼에도 촉촉하게 성령의 축복이 내렸습니다.
요새 다음 달 논문 발표 때문에 읽을 책이 많아 숨도 잘 못 쉴 정도로 잔뜩 위축되었습니다. 오늘 학교 행사도 빠지고 중간고사라 큰 덩어리 시간이 생겨 열심히 책을 읽고 있던 중에 오블라띠 미사가 있는 날이라 성당에 가보았습니다. 얼마 전 처음 나가기 시작한 주중 미사에서 어느 날 사람들이 다 일어나 제단 앞으로 가는 것을 보고 저도 순서대로 따라 나갔다가 헌금통에 발길이 닿았는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미사는 얼마 전 방글라데쉬에서 돌아오신 류희구 안셀모 수사 신부님이 집도하셨는데, 그 내용이 겸손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로부터 시작해서 한 회사의 CEO로 자수성가하신 어느 분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영감을 준 ‘담벼락 꼭대기에 놓여진 거북이’ 그림에서 그 분은 느린 거북이가 자신의 힘으로 저 담벼락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위에 놓았을 것이었듯이, 자신의 삶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누군가의 힘으로, 즉 하나님의 도움으로 오늘에 이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일상의 삶에서도 겸손하게 임하였고, 오히려 이런 겸손함 때문에 사업에서도 사람들의 신의를 사게 되어 더 잘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신부님의 강론은 정말 저 자신이 얼마나 겸손함에서 먼 삶을 살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고, 저 뿐만 아니라 제 옆의 자매님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속성을 가진 분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태로 내려와 우리의 언어로 가르치셔야했고, 우리의 무지와 강팍함 때문에 그 전통에 따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철학에서 이 과정을 하느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자기를 ‘비하’하시고) 인간의 상태로 변하였다는 케노시스(kenosis)의 과정이라고 배웠는데, 오늘 본인은 예수님의 삶에서 나타나는 케노시스, ‘비움’의 과정을 겸손을 통하여 실천하여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비워져야 더 많이 채워지는데, 자신을 낮추어야 주님께서 많은 성인들과 교류하신 그 충만한 영을 부여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자신의 아집에서 나온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영을 채우고 다른 쓸 데 없는 것으로, 그리고 자신의 허영과 자만감으로 자신을 채우기 때문에 비움의 과정, 예수님이 손수 보여주신 케노시스의 과정을 못 실행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케노시스의 과정을 실제 인간들이 행하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오블라띠 미사를 통해 실제로 그 수도회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영광과 쾌락을 마다하고, 자신을 비우고 가난한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위해 삶을 바치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런 겸손, 자기를 비움, 자기를 낮추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 많은 신앙의 실천자들의 모범을 보고 진정한 케노시스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가지고 온 오블라띠 책자를 보고 오늘 강론하신 수사 신부님의 이름도 알게 되었고, 이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의 창립자이신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Eugene de Mazenod) 성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류신부님이 책자를 문 바깥에서 가져가라고 해서 그것을 가지러 갔는데, 어떤 자매님은 벌써 이 단체의 활동도 잘 아실뿐만 아니라, 신부님께 이 책자를 가져다 달라고 제안한 사실도 엿듣게 되었습니다. 정말 저는 이렇게 우리 신자들이 세심한 신앙의 숨결로 우리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예수님의 제자 되는 것을 실천하는 단체들과도 교제하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성숙한 신앙의 면들이 어떤 계기와 인물들을 통해 제 삶 속에서 비춰질지, 눈과 귀를 열고 주시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은 저도 오블라띠의 후원자가 되어 간접적으로 비움의 삶, 케노시스의 삶, 겸손한 삶의 한 걸음을 내 딛고자 합니다. 이런 단체를 초대한 성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신명아 데레사)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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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명희 헬레나 작성시간 12.04.26 글만 읽어도 다녀온 기분입이다^^좋은글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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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필범야고보신부 작성시간 12.04.2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늘 마음을 열고 준비한다면 좋은 가르침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지요. 그런데 한가지 글 중에 "하나님"이란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 표현은 개신교의 표현입니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이라고 표현하지요. 별 것 아니라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그 안의 의미도 다른 의미들이 담겨있으니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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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넘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4.26 아차! 깜박 하였습니다. 제가 너무 오래 개신교에서 지내 항상 그 단어를 조심하던 차에 이번에 자기 검열에서 비껴 갔습니다. 다시 고치겠습니다. 신부님 '강론과 훈화' 사이트 덕분에 신앙이 많이 자란 것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이제 천주교로 '귀향'했으니 훌륭한 양치기 신부님의 인도로 성숙한 천주교 신자가 되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