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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결국에는 나를 성장 시켰지만, 신은 나에게 한번이라도 의사를 물어야 했다.

작성자예프넨|작성시간24.08.22|조회수7,406 목록 댓글 14

출처 : 여성시대 예프넨

 

 

 


엉망진창 뒤죽박죽 쓴 일기이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15

 

어디서부터 써내려가야 할지를 모를 고뇌가 있다.

하나의 기쁨에도 금세 잊혀지긴 해도, 그 실체는 언제나 발판처럼 발 아래를 지키고 있다. 항상 그래왔다.

나는 어디서부터 불안했을까.

 

혼자 처음 심부름을 갔던 다섯살 배기의 여름부터인지,

펑펑 눈 오는 길따라 저 멀리로 사라져가는 아빠의 뒷 모습을 보았을 때 인지,

내가 추구하던 정의라는 두 글자로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떄 부터인지.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사채업자의 전화와 문자와 편지 때문이었는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려 할 때마다 눈앞에서 가로막혔던 경험들 때문인지.

 

나빴고 슬펐던 기억에서 찾으려 했던 나의 불안의 근본은 그곳이 아닌 행복했던 순간에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들은 항상 나를 울게한다.

보살피던 길고양이가 싸늘하게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를 사랑하고 기대하고 기다리고 지켜봐주는 부모님을 볼 때,

한때는 죽을 듯이 사랑했지만 서로를 가장 많이 아는 타인이 되었을 때.

 

한송이 민들레가 홀씨가 되어 날아가는 것에도 나는 이별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결코 영원을 바라진 않는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형태는 달라질지라도 존재는 남는다.

 

사랑이 보이는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 보이는 순간이 눈에 보이면 얼른 주워담곤 한다.

노모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혀드리는 딸과, 봄과 가을이*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 이름이다.) 

 

내가 다른 무언가를 사랑해 마지않게 되어, 그런 사랑이 보이는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좋겠다. 

내가 그런 사랑을 보여주는 순간을 충만하게 행복해 하는 사람.

마치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품에 안고 잠들듯이,

내 마음을 소중히 받아 오래오래 아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다시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왔다.

아직 찬 바람사이로 작게 그리고 나즈막히 불어오는 봄의 숨결 한자락이 있다.

잘 지내었느냐고 조심스레,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듯 하다. 

보고싶었노라고, 올해는, 이번봄에는 좀 더 같이 있자고 소원한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 너무 빨리 다가오지 않고, 목련을 오래 볼 수 있길. 

매년 봄을 바라고 또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아주 많이 행복하길. 괴로움에, 우울에 잠식되지 않길.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아주고, 기대어 볼 수 있길.

조금만 힘들어하길.

 

 

 

 

 

 

 

 

1/8

 

마른 손에 비누가 닿듯이 별 의미 없게 느껴졌다. 

거품은 나지않는다. 일렁이지 않는다. 감흥은 없다. 왜일까.

전속력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만이 남았다.

거칠게 숨을 내 쉬고 싶다.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은 적다. 분명 그들만 안고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은 도저히 한 편이 될 생각이 없다.

 

 

 

 

 

 

 

 

 

 

 

3/22

 

아픔이 지나면 꼭 성장과 기회가 오더라고,

마음속 은사님과 같은 분에게 책 말머리를 받았다. 

 

내가 원했던 고통도 시련도 아픔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나를 성장 시켰지만, 신은 나에게 한번이라도 의사를 물어야 했다.

 

“내가 너를 절망하게하고, 어쩌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 수도 있어.

하지만 너를위해, 너만을 위해 준비 된 시련이라, 남들보다 몇 배는 단단해질 거야. 어때, 해볼래?”

 

만약 그렇게라도 한번이라도 물어봐줬다면.

끝에 정함이 있는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죽음의 앞에서 서성이며 눈물 흘리진 않았을 것이다.

 

신은 또다시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있다.

마치 지쳐 쓰러진 꿀벌에게 설탕물을 먹이듯, 다시 일어나 꽃을 찾아 내 몸집보다 작은 비루한 날개를. 퍼덕이도록 종용하고 있다. 

결국 찾아야만 한다던 꽃밭은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 앞의 단물을 빨아댄다.

분명히. 또다른 해일이 몰아 닥칠 것 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느낀다. 내개 달린 날개는 너무나 작아 속절없이 휩쓸리겠지.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제까지 넘어온 언덕들을 헤아린다.

아직까지도 비가 내리는 곳도 있다. 소담스럽게 꽃이 피어있는 곳도 있다.

결국 같은것은 비가 온 후 잡초는 더 깊게 뿌리를 내려 더이상

어떤 비바람에도 쓸려 갈 염려는 없다는 것.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살펴본다.

자갈, 돌, 찔레, 어쩌면 말벌이 있을지 모르는 땅. 차근차근 돌을 치워내고 가시덤불을 솎아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만나왔던, 나에게 믿음이라는 비료와 사랑이라는 종자를 준 사람들의 선물을 하나씩 심는다.

손은 상처에 익숙해졌다. 종자를 뿌린 나머지 공간에는 나라는 잡초가 땅을 더 단단하게 잡아줄 테였다.

 

너는 앞으로, 내가 온 길을 뒤따라 오기만을 바란다.

겪지않아도 되는 시련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너는 그래도 분명히 성장 할 것이다.

아프지 않아도 충분히 자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라길 바래본다. 

시들어가는 꽃을 보며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것 보다,

피어나는 계절의 변화를 보며 시간의 오고감을 배우는 사람이었으면.

강아지, 고양이같은 슬픔을 키우기 보다. 너보다 오래 살아갈, 이를테면 은행나무나 천년을 산다는 바오밥 나무를 보며, 세상을 잠시 다녀감을 알았으면.

 

아픔은 나를 기어이 성장시켰지만,

사랑하는 이는 그런식으로 성장하지 않아도 되길. 

 

생각하며 열심히 땅을 고른다.

나의 수고로 네가 예쁜 길을 돌아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준다면,

그것으로. 그것만으로 분명 깊은 잠에 들테니.

 

 

 

 

 

 

 

 

 

 

 

 

3/16

 

슬픔이 밀려올 땐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모든 노래 가사가 내 마음같아진다.

나는 도망가고 싶어하고, 나를 사랑해주기도 바라고, 사랑해 주지 않기도 바라고, 

동시에 이별하고 있으며, 마음을 다잡아 다시 일어나보기로 마음먹기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정하지 못하는 내마음.

단한가지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나는 나를 들여다 봐 줄. 걱정해 줄. 안아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이건 외로움도 고독도 아닌 것 같다.

 

“ㅇㅇ씨는 누군가를 돌봐주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려 하는데,

그럼 ㅇㅇ씨는 누구에게 돌봐지나요”

 

그러게요. 선생님, 저는 누가 돌볼까요.

제 마음은 누가 들어주나요.

 

사실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그냥 저를 가만히 안아주기만 해도 되거든요.

 

근데 그 모습조차도 들키고 싶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요.

분명 울 것 같거든요.

 

그조차도 미안해요. 그 모습으로 누군가 슬퍼할수도 있잖아요. 특히 엄마나 아빠요.

제 눈물에 천둥이 치는 기분일거에요. 그랬을거에요.

 

선생님, 그런데도 이야기 하고 싶어지는 건 제가 미친걸까요.

알아주길 바라지 않으면서 알아주길 바라는게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만 수면제를 먹어야 겠어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요.

 

 

 

 

 

 

 

 

 

 

4월 모일

 

우리는 편지 쓰기를 멈추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잊었고,

그 추억은 희미 해 질 테지만, 

더 자주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궁금해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1/9

  1. 나를 가장 닮은 달 : 1월. January. 내 영어이름, 새 시작이면서, 음력으로는 끝이기도 하다.
  2.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 :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 날 기분은 우울한 편 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3. 그리움에 저항하는 당신만의 노하우 : 당신과 헤어짐으로서 그리움은 내것이니, 이제서야 나는 당신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4.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 :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시점을 혹자는 기록을 하면서 부터라고도 하지만, 어떤 학자는 ‘부러졌다가 붙은 다리 뼈’라고 한다. 보통의 포유류 집단은 동료가 다친다면 무리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친개체를 버리고 떠난다. 그러나 부러졌다가 붙은 다리뼈가 설명하고자하는 바는 동료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될 때 까지 함께하며 치료하고 돌보아주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란 그런것이 아닐까.
  5. 내가 혐오하는 시간 : 오늘과 내일의 경계. 악마가 작은 악마에게 이르되, 네가 인간을 홀리고자 한다면 이것만 기억하라. 인간이 무언가 하려 할 때 “내일 하라”고 속삭이기만 하면된다. 왜냐하면 인간에겐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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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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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된장찌개 하나만 갖다줘봐 | 작성시간 24.08.26 아니미친 이게 일기라니
    진짜 굉장하다
    글 엄청 잘 쓴다 여시야,,,
    맘에 와닿는 부분 있어서 캡쳐해서 갤러리에 두고두고 보고 싶네
    글 제목인 3/22 일기가 특히 내 마음을 울렸어,,
    올려줘서 고마워!
  • 답댓글 작성자예프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26 캡쳐해셔도됨비당
  • 작성자외로운늑대 | 작성시간 24.08.30 신이 나한테 물어봤어야된다는 말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ㅠㅠㅠ
  • 작성자쾌변하자똥꼬락스 | 작성시간 24.09.07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슬프고 공허해 나도 캡쳐할게 고마워!
  • 작성자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작성시간 24.10.07 여시 글 너무 고마워 내 마음ㅇ하고 같은 부분들이 많아서 너무 공감갔어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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