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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너만좋다면
광복절은 어제였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의미를 생각해보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 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란히
벌 까의 하로 일을 다 맞추고
석양(夕陽)에 마을로 도라오는 꿈을,
즐거히,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일흔 내 몸이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잇섯드면!
이처럼 떠도르랴, 아츰에 점을 손에
새라새로운 탄식(歎息)을 어드면서.
동(東)이랴, 남북(南北)이랴,
내 몸은 떠나가니, 볼지어다
희망(希望)의 반짝임은, 별빗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나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엇지면 황솔한 이 심정(心情)을! 날로 나날이 내
앞페는 자츳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바라건데는 우리에게 보습대일 땅이 있다면, 김소월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北方(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絶頂 (절정), 이육사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여진 시, 윤동주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 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 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 날이 오면, 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