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흥미돋]조선왕실 의복에 대해 알아보자! (고증&후궁편)

작성자오기륭|작성시간12.04.18|조회수3,998 목록 댓글 20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오기륭

 

 

 

글에 앞서 스크랩은 닫아둘께. 뭐 아예 글 전체를 캡쳐 해 갈수도 있겠지만 나도 이거 글 하나 쓰는데 거의 한시간씩 투자하고

그냥 좋은 정보 같이 나누자는 취지인데 댓글 하나없이 스크랩만 낼름 해가는 사람 진짜 좀 싫어서 닫아둠.

 

이번편은 사진이 좀 많을 예정이야!

우선 왕비 및 후궁들의 머리모양에 대해 알고 갑시다.

 

 

 

조선초기 궁중여인들의 가체머리야. 이 머리모양은 고려왕실에서 부터 시작된게

조선 개국초까지 유지 되었다고 보면 돼. 그래서 용의눈물이나 대왕세종에서는 가체

머리가 이런식으로 유지가 되는 부분이 있어.

 

 

 

 

이건 세조~연산군조를 배경으로 한 왕과나에서 구혜선이 했던 중전의 머리인데

왕과나는 정말 고증따위 개나 줘버린 시망똥망존망 발로 한 고증.

대략 머리모양은 저 머리와 같이 비슷한데 가운데 핑크색! 여염족두리는 일상시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 떨잠도 저렇게 과할정도로 사용하지 않은데다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는데 비녀도 조그마한거 양쪽에 꽂는 경우는 대수머리에서나 사용했음.

 

 

 

 

이 머리가 조선초기의 가체머리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김성령씨는 대왕세종에서

후궁인 효빈 역할이었고 위에 구혜선은 폐비윤씨 역이었지만 김성령씨 머리에 장식이 좀 더 화려하면

그게 바로 중전의 머리스똴!이 되는거야. 사실 점차 중기에서 후기로 오면서 떨잠에 대한 문양이나 그런게

확립이 되었지 (경국대전 이후라고 보면 될듯) 조선 초기에는 내명부에 대한 품계도 거의 중구난방 식이라

복식 또한 제대로 확립이 되어있지 않았다고 해. 하지만 중전>>>>>후궁 이것만큼은 기본베이스라는거.

 

 

 

 

 

 

 

요게 바로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가체머리야. 위는 후궁인 장희빈이고 아래는 세자빈인 단의왕후야.

그리고 가운데 공처럼 생긴 여염족두리는 평소에는 안 썼다고 해. 그래서 저 머리를 가체머리라고 하기 그런게

여염족두리를 쓴 머리는 여염머리라고 따로 칭함. 근데 사극에서는 여염족두리가 빠지면 여배우들 얼굴이

좀 넙대대 해보이고 안 예뻐 보여서 쓰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듯! 평소에는 여염족두리가 일상화는 아니야.

각설하고. 미묘하게 머리가 달라 그치? 그건 아마 중앙의 나비 떨잠 유무에 대해서 일거야.

 

후궁은 다시 태어나도 절대 못 쓰는 왕비의 특권이 있어.

용문양, 봉황문양, 떨잠3개, 홍색

 

중국황실에서는 황제와 황후를 뜻하는 색이 황색이었고 우리나라는 황실의 제후국을 조선시대에 칭했기 때문에

황실의 제후국에서 사용하는 홍색(대홍색)을 왕과 왕비만이 사용할 수 있었어. 그래서 세자의 용포를 만들때도

왕의 대홍색과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원래 이건 나중에 왕의 용포에 대해 설명할때 자세히 쓰려고 했는데 황제의 용포와 왕의 용포

그리고 왕세자의 용포와 왕세손의 용포가 다른 점은 바로 수놓아진 용의 발가락 갯수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편 왕의 의복에서 자세히 쓰도록 하고.

 

그래서 왕비 또한 왕의 배필이었기 때문에 용문양과 용의 배필이라고 하는 봉황문양 그리고 가체에 장식하는

떨잠은 3종류, 왕이 사용할 수 있는 대홍색을 사용할 수 있었어.

 

가끔 후궁가운데 떨잠 3개 하고 나오는 후궁들이 있는데 종종 빈급 그러니까 정1품 영의정과 같은 품계의

왕의 총애가 지극하고 왕의 아들을 낳은 빈(嬪)가운데서는 떨잠을 3개 사용할 수 있다지만 그 장식의 기준이나

나비 떨잠의 경우엔 왕비는 제대로 나비모양이지만 그 모양을 아래위 바꿔서 단다거나 그런식으로 왕비보다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야했지. 만일 왕비랑 똑같이 치장을 한다면 그건 반역에 맞먹는 행동이라고 보면 돼.

 

 

 

 

 

영조 이후 사극에 나오는 일명 첩지머리야. 지금이야 실로 가발을 만들어서 가체를 올리지만 예전에는 그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인모로 만들었다고 해. 무겁기도 무거웠겠지만 엄청나게 비쌌겠지? 그래서 가체는 여인네들의

집안 부(富)를 상징하는 것이 되기도 했어. 서로 돈 많다고 자랑하는 지금의 샤넬백과 같은 그런것?

그래서 결국 한 양반가의 며느리가 머리위로 가체를 미친듯이 올리다가 결국 목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목이

부러저 죽자 당시 임금이었던 영조가 사치를 금하면서 가체 머리 또한 폐지를 시켰지.

그 폐지법은 왕실에도 적용이 되어야 했기에 벼슬이 있는 그러니까 내명부의 여인네들부터 외명부의 여인네들은

각각 자신의 직책에 맞는 첩지를 올리게 된거야. 왕비의 경우엔 봉황의 문양을 주로 사용했다고 하네. 거북이도 쓰고.

 

금으로 된 첩지는 왕비와 왕세자빈만이 사용가능하고 이하 후궁들부터 상궁들은 은이나 다른 보석류를 사용.

 

 

 

 

 

 

위에 올린 사진들은 일상시에 하는 머리들 이었고 그럼 대례(왕실행사)시에 사용하는 머리를 보고 갈께.

 

 

 

왼쪽은 왕비가 하는 대수머리 왼쪽은 떠구지 머리야. 여염머리 위에 가체를 얹고 다시 그 위에 떠구지라고 하는 나무 가발을

얹는 머리인데 저 머리는 후궁만이 하는게 아니라 왕비도 원삼을 입었을때는 떠구지 머리를 했어.

근데 동이 또한 고증을 개발로 해서 한효주가 입은 옷은 후궁의 자적원삼 비슷한 모양이지만 머리는 완전 왕비의 머리 삘이야.

후궁은 아무리 대례때라고 해도 저렇게 떨잠을 많이 꽂을 수 없었어.

 

 

 

 

 

이 사진이 명성황후에 나오는 어린 세자빈의 대례때 모습이야. 아무리 아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세자빈인데

윗 사진의 후궁과 너무 많은 차이가 보여 그치? 하물며 세자빈이 저렇게 떨잠이 세개인데 후궁따위가

떨잠을 다섯개나 꽂다니!!!!! (궁금해 할 여시들을 위해... 저 어린 세자빈은 박은빈이 맞다.)

 

 

 

 

 

그럼 이제 잘못 된 고증의 예를 짚고 넘어가 볼까?

 

 

 

 

 

일개 후궁따위가.... 머리에 봉황잠을 꽂고 있다............................

봉황은 누구꺼? 왕비꺼!

후궁이 꽂으면? 대역죄다!

 

한효주가 저 복색하고 조선시대 있었으면 바로 능지처참감이여....

 

 

 

 

 

이건 인현왕후 폐비때인데 폐비가 감히 은비녀를?

폐비라고 하는건 왕비가 서인(흔히들 말하는 쌍놈)으로 강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죄인의 신분으로 강등되는 거라 전에 왕비였건 지랄이었건 죄인은 은비녀 사용 못 to the 함.

 

나무비녀를 꽂아야 맞는거야.

저런 은비녀는 왕실에서 후궁들이 국상중에 사용할 수 있었음.

국상중에 왕비와 세자빈은 은으로 된 용잠(용비녀)를 꽂아.

 

 

 

 

 

 

후궁나부랭이 주제에 감히 옥책을 들다니!!!!!!!!!!!!!!!!!!!!!!!!!!!!!!!!!!!!!

옥책이 뭐냐면 한효주가 들고있는 푸른색 막대기를 말 하는건데.....

제대로 고증하려면 후궁은 죽책을 들어야 해.

 

원래는 저 책에 한문으로 블라블라 써 있어. 간단히 말하자면 신분패라고 할 수도 있고

'너는 이러이러한 신분으로 봉한다' 라는 내용이 한문으로 적혀있었다고 해.

 

따지고보면 후궁 또한 왕과 왕비의 신하나 마찬가지야.

내명부에게도 품계라고 해서 벼슬아치와 같은 품계로 봉하고 그에 걸맞는 내탕금(연봉)을 내려줬으니까.

그래서 저 '책' 이 뭐에 따라 다르냐면.

황제와 황후는 금책, 왕과 왕비는 옥책, 신료 및 후궁은 죽책 이런식으로 나뉘어.

근데 감히 후궁나부랭이 따위가 옥책을 들다니 이건 뭐....

 

 

이걸 보면 볼 수록 동이는 똥으로 고증을 했다는게 파헤쳐짐........................

 

 

 

 

 

 

그리고 이건 1편에도 올렸지만 조선 초기의 왕비 책봉식에서 웬 대한제국 시대의 12등 황후 적의가....

왕과나도 똥으로 고증한거 인증!!!!!

 

 

 

 

 

 

그리고 이건 대왕세종에서 정소공주와 정의공주의 의복인데 실제 공주들의 의복은 저런식 이었다고 보면 돼.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가 입은 옷은 개구라임........ 흉배 자체는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왕세손빈

아니면 넣을 수가 없어. 왕실에서는.

신하들 조차 조복(신하복)에 넣는 흉배의 문양도 달랐고 왕실과 구분하기 위해 ○ 모양이 아닌 □ 식으로 넣었으니까.

 

 

 

 

(명성황후 아역들인데, 여자애는 박은빈이고 남자애는 그래.... 해품달에서 양명군.... 이미노....!!)

 

이건 왕세자빈의 간택부터 책봉식 까지의 의복 설명이라고 보면 돼.

맨 처음 입은 노랑 저고리를 예전에는 송화색 저고리라고 했는데 초간택의 의복 꾸밈 자체가

성장(화장)은 조금만, 송화색 저고리에 적색 치마 라고 되어있거든.

그리고 금박을 조금 넣은 연두색 의복이 보이지? 그건 재간택과 삼간택에서 입는 의복이야.

누군가는 왕세자빈으로 간택될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금박을 넣었고 성장(화장)이 가능했어.

그리고 맨 마지막 사진은 왕세자빈 책봉식이라고 보면 될 듯 하고.

 

세자빈도 보통 대수를 쓰고 대례복을 입지만 위 사진에서 처럼 왕세자빈도 홍원삼을 입었고

대례때 하는 떠구지 머리를 했지? 아마 어린나이에 혼인해서 그런거라고 믿고싶다........

 

 

 

 

요건 혹시 궁금해 할 까봐 넣었어. 저렇게 사극에서 보통 궁녀들이 하는 머리로 나오는 머리는 새앙머리라고 해.

머리를 땋고 둘둘 마는 식이라고 하던데 나는 머리가 짧아서 재현 절대 불가능 ㅋㅋㅋ;;

그리고 사극에는 궁녀들만 하는거로 나오는데 미혼여성들은 새앙머리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구.

 

 


 

 

 

 

 

이번에도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아 땀나;;;;;;;;;;;;;;;;;;;;;;;;;;;;;;

다음편은 왕의 용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잣!!!!! 물론 언제 올릴지는 모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細流 | 작성시간 12.04.20 참고로 언니 왕과 나의 12등 적의는 따지고 보면 12등 적의도 아님ㅋㅋㅋ 12등 적의에는 깃, 도련, 수구에 용문양이 있어야 되는데, 저기에 있는 건 봉황 무늬야.. 일단은 꿩이랑 이화문양이 몇등으로 나눠졌느냐에 따라 12등인지 9등인지 알겠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고....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저건 12등 적의도 아니고 9등 적의도 아닌 이도저도 아님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공주도 흉배를 놓을 수 있었다고 함. (다만, 옹주는 못했지...)
  • 답댓글 작성자細流 | 작성시간 12.04.20 그리고 첩지머리의 첩지는 조선 초중기때도 있었어. (다만, 말기때 저런식으로 화려거나 크지는 않았음) 원래 첩지머리 용도가 족두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용도인데, 어여머리를 할때는 첩지머리를 먼저하고 그 위에 어염족두리를 쓰고 (이 어염족두리는 또 어여머리나 큰머리의 밑받침 역할을 하기도 함) 일곱깍지의 가체를 한대 묶어 두 갈래로 땋아 어염족두리 위에 올리고 비녀와 배씨댕기로 고정 (혹은 떨잠으로 장식도 하고)하는게 어여머리야. (어여머리 설명할려고 한게 아닌데;; 첩지머리의 원래 용도를 설명하다보니...;;;) 하여튼, 그나마 고증이 잘 되어 있는 왕과 비에서는 (왕과 나 말구요ㅋㅋ) 어염족두리 없이 그냥 어여머리 틀어
  • 답댓글 작성자細流 | 작성시간 12.04.20 틀어서 나오더라구... 암튼, 이런 글 자주 올라와서 난 고마워^^ (아참.. 대장금에서는 어염족두리가 너무 커서 진짜 놀랬던 적 있었다;;;)
  • 작성자미나끼 | 작성시간 13.09.10 아 재밌엉 ㅠㅠㅠㅠ 언니 수고했어!!!
  • 작성자Yuna_Kim | 작성시간 14.09.11 [조선왕실복식 언니 덕에 잘 알고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