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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나치 독일과 악마의 민낯, 한나 아렌트와 지타 세레니

작성자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작성시간21.08.19|조회수12,605 목록 댓글 77

 출처 : 여성시대 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






여시들 ㅎㅇ 미리 말하자면 존나 긴 글임.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들 출근길이나 퇴근길 등등 할 일 없을 때 한번쯤 읽어보길 바라


혹시 저 사람 얼굴 어때? 익숙해? 만약 얼굴을 모르더라도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어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할 거임.

이 사람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임.


아직 모르겠다고?




그럼 이 분은?

이 여성의 이름은 한나 아렌트야. 도덕 수업이나 윤리 수업에서 한 번쯤 들어본 거 같지 않아?



이번 이야기는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승리자인 연합국은 독일 전범들의 처리를 두고 회의를 한 끝에 1945-1948년간 독일 뉘른베르크에사 국제군사재판을 열어 나치 독일의 부역자들을 하나둘 사형대와 감옥으로 보냄.

하지만 저때가 얼마나 혼란한 시기였음? 발 빠른 전범들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하나둘 남미로 탈출함.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


대표적인 인물이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였음.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는 나중에 프랑츠 슈탕글과 함께 다루기로 하고, 모사드와 아이히만의 재판에 먼저 주목해보겠음.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1948년 유대인들이 세운 나라임.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 모사드를 출범함. 출범 당시 모사드의 목표는 '나치에게서 생존한 유대인들을 무사히 이주 시키는 것'과 '나치 전범 추적, 처벌'임.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 친위대인 슈츠슈타펠의 중령이자 아우슈비츠 학살의 책임자였음. 모사드는 집요하게 아이히만을 추적했고 1960년, 아르헨티나에 은신 중이던 아이히만을 체포하게 됨.

이건 모사드의 집념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인데...사실 모사드의 아이히만 체포는 엄밀히 따지면 국제법 위반임^^;;,,,아이히만은 독일 국민이었고, 당시에 아르헨티나 땅에 있었는데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국가 기관임. 체포권이 있을 리 없음. 하지만 모사드는 아이히만을 체포한 후 아르헨티나 독립 160주년 행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대표단이 귀국할 때 승무원으로 위장시켜 비행기에 태운 다음 예루살렘으로 압송함. 유대인의 분노와 집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음.




이렇게 예루살렘 감옥에 갇힌 아이히만은 재판을 받게 됨. 재판이 열리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음.


아르헨티나 :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나라 땅에서 니들이 불법 납치를 하면 우리가 뭐가 됨?? 도랐멘?? 송환하셈;;

UN 안전보장이사회 : 야 이건 좀;; 니네가 주권 침해했네;;;

이스라엘 : 아 ㅈㅅㅈㅅ 주권 침해 인정함. 근데 이새끼는 우리가 조져야겠음. 대신 돈으로 배상할게 콜??


이렇게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했음. 당시 이스라엘은 외국인 변호사의 재판 참여가 불법이었는데 그렇다고 변호사 없이 재판을 하자니 나치 전범 처벌이란 명분에 금이 갈 것 같으니까 살인죄에 한해서는 외국인 변호사가 출석할 수 있도록 법률을 바꿔가면서 재판을 열었음. 재판은 56일간 열렸고, 홀로코스트 생존자 112명이 재판에 출석해 증언함.


아이히만은 유대인 포로들을 수용소로 '운반'하여 600만 명의 학살에 동참했다는 혐의, 즉 살인죄로 재판대에 서게 됨. 워낙 증거가 확실했던 지라 아이히만도 범죄 사실을 부인하진 않음. 대신 다른 주장을 펼침.


<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크게는 아돌프 히틀러, 그 외 힘러&하이드리히 등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홀로코스트 대량학살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 당시, 아이히만의 자기 항변과 재판을 지켜보던 한 철학자가 있었음.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임.

한나 아렌트는 독일인이었으나 유대인이었기에 나치 독일의 숙청 속에 국외 망명을 한 철학자였음.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에 실존적인 차원의 관심을 느꼈고,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후 평론을 발표하는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부제는 '악의 평범성임'


아렌트가 주장하는 악의 평범성을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 악은 특별히 악마적인 어떤 것에서 기원하는 게 아니다.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 그 자체가 곧 악이다.> 대충 이런 거임.


물론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옹호한 건 아님. 아렌트는 철학자였기에 아이히만 개인의 행위를 논외로 두고 악의 본질적인 기원에 대해 고찰했고, 누구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며 그 예시로 아이히만을 제시한 거임.




어려우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사회학적으로 설명해볼까?


사회학에는 사회실재론과 사회명목론이란 게 있음.

예를 들어 김여시 박여시 이여시 셋이 사는 여시 사회가 있다고 할게.

사회실재론은 사회가 단순히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독자적 실재이며, 개인의 총합 이상의 힘이 있다는 이론임. 즉 여시사회에는 김여시+박여시+이여시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거임.

반대로 사회명목론은 여시사회 = 김여시+박여시+이여시 이며 그 이상은 없다. 라는 이론임.



악의 평범성은 사회실재론에 가까움. 그 당시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고, 그 결과로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판단 능력이 사라졌다는 거임. 따라서 이런 전체주의 체제의 악은 대단히 비범하고 소름끼치는 형식이 아니라 '이게 불법인가?'라고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의 소멸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거임. 전체주의 체제는 인류가 가진 선악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사람을 순응하게 만들고, 홀로코스트 같은 인종학살에 참여 내지는 무관심하도록 만든다는 거지.

한나 아렌트의 이론은 나치 독일에 국한된 이론이 아님. 당장 동시대에 일본만 봐도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며 천황에게 거역하는 것을 역적으로 몰았고, 이런 제국주의 사상은 교육현장에도 반영됨. 가족 또는 이웃이 카미카제에 동원돼 죽는데 그걸 슬퍼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하고 자랑스러워한 게 현재 우리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잖아? 그게 단순히 일본 국민 개개인이 또라이라서가 아니라 당시의 제국주의 사회가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렇게 사상하도록 교육했기 때문이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는 거임.


(근데 사실 나 이과라 잘 모름🙂 대충 주워들은 상식으로 떠드는 거니까 문과 여시들 보면 조용히 지적해줘*^^*...)





자 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검사는 아이히만의 변호에 대해 <명령이 잘못되고 불법적인 경우에는 명령을 마지못해 따른 것 또한 불법적인 행위임ㅇㅇ> 이렇게 응수했고, 이스라엘 재판부는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선고함.




참고로 아이히만은 죽을 때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이스라엘 대통령한테 사형을 면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냄. 이에 대해 이스라엘 대통령은 구약 사무엘기 중 한 문단을 친필로 써서 답장을 씀.

<너의 칼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자식을 잃었는지 아느냐? 너의 어미도 그 여자들처럼 자식을 잃어야 마땅하다.>




이리하여 아이히만의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 됐고, 아이히만은 참관한 사람들에게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나하고 연고가 있는 이 세 나라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 규칙과 정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나는 준비되었다. 여러분, 또 만납시다. 이게 운명이라는 거요.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고, 신을 믿으면서 죽을 거요. < 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음.

참고로 아이히만을 체포한 모사드 간부 라피 에이탄도 사형 집행 현장에 있었는데



아이히만 : 유대인 친구, 자네도 나를 따라 죽게 돼있음

에이탄 : ㅇㅇ 니 말 맞음. 근데 지금은 아님ㅋㅋ


이라고 대답함;;...저 말대로 라피 에이탄은 92세까지 장수하며 이스라엘 복지부 장관까지 하고 2019년에 죽음.

참고로 이스라엘은 1954년에 사형을 폐지했는데 유대인에 대한 범죄는 예외임. 아이히만은 사형 폐지 이후 사형을 선고받은 유일한 인물.




자 이제 1절 끝남 (???)

2절은 한나 아렌트보다 덜 알려진 지타 세레니의 이야기임




이 분이 지타 세레니임. 오스트리아의 전설적인 전기 작가로 대표작으로는 알베르트 슈페어 전기, 프랑츠 슈탕글 전기가 있음. (참고로 세레니가 완전무결한 선인은 아님. 최연소 살인마 메리 벨 전기를 대필해주고 5만 파운드 받아서 욕 오질나게 먹음. 다만 이 글은 나치 독일을 예시로 악에 대해 고찰해보잔 취지의 글이니 메리 벨 이야기는 스킵하겠음.)



자 일단 알베르트 슈페어가 누구?


이 사람임.

슈페어는 대대로 건축가를 해온 건축가 집안의 아들이자 자기도 건축학도였음. 당대 유명 건축가였던 하인리히 테세노의 제자가 되어 학위를 따고 조수로 일하며 가끔 강의 땜빵도 뛰던 슈페언 1930년, 학생들의 권유를 받고 나치당 집회에 참석했다가 나치당에 가입함. 그러고 나치당 활동 중에





카를 한케 라는 슈츠슈타펠 간부를 만나게 됨.


카를 : 아...집 수리해야되는데...

슈페어 : 님 제가 해드릴?

카를 : 오 ㄹㅇ? ㄱㄱ. 얼마?

슈페어 : 공짜로 해드림

카를 : 오 ㄱㅅㄱㅅ 님 나중에 내가 보답함




그리고 비슷한 시기....



괴벨스 : 아...베를린 지부당 리모델링해야되는데 누구한테 맡기지...

카를 : 님 내가 아는 건축가 있는데 소개 ㄱㄱ?

괴벨스 : 오 ㄱㄱ


이리하여 슈페어는 괴벨스와 연줄을 맺고 나치당의 건축에 관여하게 됨. 당시 나치당은 당 홍보와 선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당 대회를 개최했는데, 당 대회를 개최할 경기장이 아직 건축 중이었음.

아 명색이 당 대회인데 미완성인 경기장에서 막무가내로 할 수는 없고 어쩌지 ㅅㅂ....하던 슈페어는 기똥찬 아이디어를 내는데, 기둥의 빈 자리에 서치 라이트를 세우자! 였음. 이리하여 결과물이 나오는데...




사진에서 스케일이 대충 느껴지지?

2021년에 봐도 스케일이 장난 아닌데 1933년에 저런 광경을 어디서 보겠음. 나치당 높은 사람들은 슈페어의 창의력에 크게 감탄했고, 이걸 '빛의 대성당'이라고 명명하고 이후에도 줄기차게 써먹음.


한편...나치당에는 유명한 예술 덕후가 있었음



ㅇㅇ...히틀러

빛의 대성당을 보고 슈페어의 재능에 흠뻑 빠진 히틀러는 매일 저녁 식사마다 슈페어를 초대해 함께 예술 이야기를 했고, 슈페어는 나치당 주임 건축가가 됨.


참고로 이런 일화도 있음



스탈린 : 이야 걔 기똥차다. 모스크바 리모델링 책임자 시키게 좀 빌려줘라

히틀러 : (흠 슈페어를 빌려주면 모스크바가 베를린을 능가하는 위엄 도시가 될 것 같은디)

스탈린 : 야 왜 대답이 없어? 빌려달라니까?

히틀러 : ㄴㄴ 안 됨 내꺼임

스탈린 : ㅅㅂ놈이?



여튼....슈퍼어는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히틀러의 입맞에 꼭 맞게 위엄만 쩔고 실용성는 조또 없는 건축물을 짓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건축물이 1939년에 세워진 히틀러의 총통 관저임.



왜 실용성이 조또 없냐고?



이런 대형 건축물은 중앙, 즉 분홍색 위치에 문이 있어야 정상임. 하지만 슈페어의 총통 관저는 연두색 위치에 문이 있었음. 실용성이 조또 없는 거임.

대신 위엄이 존나 넘쳤고, 히틀러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함. 참고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인 에밀 하하는 원래 심장이 안 좋았는데 나치 독일이 자꾸 강해지니까 부담을 느껴서 담판 지으러 베를린에 왔다가



이렇게 시작되는 무려 400M짜리 복도를 마주하고 위압감에 질려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싸인 안 하면 프라하 폭격한다?! 라는 괴링의 협박에 기겁해서 두번째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 항복 문서에 서명함(;;;;;;;;;;;;)



여튼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슈페어는 1942년, 군수부 장관이 됨. 엥 갑자기? 할 수도 있는데 그만큼 히틀러의 총애가 대단했음. 슈페어는 군수부 장관으로서도 일을 존나 잘했고, 나치 독일 패망 직전에는 히틀러의 후계자로도 거론됨.


허나 슈페어의 유능과 별개로 나치 독일의 패색은 점점 짙어졌음. 1945년 3월, 패망이 거의 확실시되자 정신이 훼까닥한 히틀러는 "패전한 독일 민족은 살아 남을 가치가 없다. 사회 간접 자본을 다 파괴해라." 며 다 같이 죽자 식의 명령을 내림. 이걸 네로 명령이라고 함




슈페어 : 저새끼 미친거 아님??;;;

한스 크렙스 등 경제부 인사들 : 그런듯ㅇㅇ;;;

슈페어 : 독일 국민이 뭔 죄가 있음;; 어차피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이번 명령 걍 쌩 까자. 콜?

경제부 인사들 : ㅇㅋㅇㅋ...콜...


이리하여 독일의 인프라는 보존됨.




이후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뉘른베르크 군사 재판이 열림. 슈페어도 당연히 재판대에 오름.



재판 : 자...군수부 차관 자우어씨. 독일 기업이 외국인 노동자 동원하는거 증언해주면 형량 깎아드림.

자우어 : ㅇㅋㅇㅋ 합의 ㄱ

재판 : 자...슈페어씨. 당신도 하실?

슈페어 : ㄴㄴ 안 함

재판 : ??? 형량 깎아준다니까??

슈페어 : 그래도 안 함.

재판 : 아니 미친놈이???

독일 기업 : 아싸 개이득


슈페어가 입을 꾹 다문 덕에 독일 기업들은 국부 유출을 막고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 자우어의 가족들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슈페어의 가족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렸고



장녀인 힐데 슈람은 독일 녹색당의 정치인이 됐고


장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로 대성공해서



베이징 올림픽 단지 디자인을 총괄함.





참고로 슈페어는 네로 명령을 거부해 독일의 인프라를 보존하고 독일 국민들을 살린 공로를 인정 받아 20년 형을 복역하고 풀려났는데, 비슷한 전범들은 사형을 당해 아직까지 논란임. 슈페어의 재능을 높게 산 유명인사들이 감형 청원을 해줬는데 프랑스 샤를 드 골 대통령 같은 정치인부터 심지어는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의 검사팀에서도 탄원자가 나옴.


슈페어는 재판 내내 학살을 몰랐다고 부인했으나 복역 중 회고록을 써서 "친밀한 고위 당직자들의 암시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조금만 주의 깊게 나치 체제를 관찰했다면 바로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고 간접적으로 뉘우침.


이리하여 슈페어의 평가는 둘로 갈림.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 나치 or 비열한 기회주의자.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나치 전범이고, 또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유능한 예술가일 거고,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나치 독일 패망 후 독일 국민들을 살리고 현재의 독일을 있게 한 사람이기도 하겠지.




자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ㅎ)

프랑츠 슈탕글 이야기임.




이 사람인데...이름만 들어서는 누군지 모르겠지?

트레블랑카 절명수용소의 소장임.




사실 나치의 수용소? 하면 아우슈비츠는 다들 알 거임. 하지만 나치는 온 유럽에 유대인 수용소를 만들었고, 아우슈비츠 외에도 7곳이 더 있었음.

절멸수용소는 말 그대로 유대인을 '절멸'하기 위한 수용소임. 노동수용소는 '분배작업'을 통해 노동할 수 있는 유대인은 살려서 노동을 시키고, 노동할 수 없는 노약자나 병자들만 가스실로 데리고 갔음. 하지만 절멸수용소에는 그런거 없고 다 죽임.


몰랐다고? 당연함 ㅇㅇ

노동수용소의 존재는 나치가 딱히 숨기지 않음. 하지만 절멸수용소는 존재 자체가 1급 기밀이었고, 연합군이 오겠다 싶으면 수용소를 통째로 파괴해서라도 존재를 숨기려고 애썼음. 빼도박도 못하는 인종학살이니까 ㅇㅇ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사망률은 99.993프로임. 걍 100프로라고 보면 됨. 13개월의 운영기간 동안 90만명의 유대인이 죽음. 이걸 단순히 수치화하면 한달에 7만명, 일주일에 약 1.7만명, 하루에 약 2.5천명의 유대인이 죽은 거임.



나치 독일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연합군이 진군하자 트레블링카 수용소는 폐쇄되고, 슈탕글은 다른 나치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미로 튐. 브라질에 정착한 슈탕글은 무려 16년을 평범한 노동자로 살며 평온히 죽는가 했는데...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 등장.


비젠탈은 홀로코스트에서 100명에 가까운 친척을 잃었고, 본인도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구출됨. 이후 비젠탈은 나치 전범들을 잡는데 평생을 바침. 위에서 언급한 아이히만 체포도 비젠탈과 모사드의 공조. (물론 비판도 많음. 나치 전범 체포가 중요한건 맞는데 남의 나라 주권을 막무가내로 침해하고 댕기는 거니까....체포 후 국제 재판에 넘기기라도 하면 모르는데 자국 재판까지 하니 국제법상 당연히 불법이고 아이히만 사형 시킨거 아직도 국제법한테 비판 받음. 불법 체포라 재판 자체도 불법이거든ㅎ....글구 모사드가 여기저기 암살도 많이 하고 다녀서 국제적으로는 욕 많이 먹는 기관임)


비젠탈은 무려 1100명의 전범을 잡고 94세에 은퇴하며 "살아있는 모든 전범들을 찾아냈다. 설령 아직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 재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임무는 끝났다." 라는 어록을 남기심.


비젠탈의 집요한 추적에 슈탕글도 결국 잡혔고, 무려 20년만에 재판에 서게 됨.



슈탕글은 재판에서 아이히만과 비슷한 논리를 펼쳤음.

학살? ㅇㅇ 인정함. 근데 나는 나치 독일의 군인이었고,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고 실천하는 게 군인의 의무잖아. 난 군인으로서 의무를 따른 거 뿐인데?



참고로 범죄학에서 범죄를 정의하는 4가지 요소가 있음.
- 행위자 (범행의 주체. 여기서는 슈탕글)
- 목표 (범행의 목표. 여기서는 유대인)
- 행위 (범행 행위. 여기서는 유대인 학살
- 의도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 여기서는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악의, 더 나아가 인종 학살의 의도를 뜻하겠디.)

슈탕글 왈 : 자 니들도 알다시피 범죄의 성립 요건은 저 네 가지임. 내 행동에 행위자, 목표, 행위는 있음. 근데 의도가 없음. 나는 그냥 상부의 명령을 따른 거임. 따라서 나의 범죄는 성립되지 않음.


뭔가 말만 들으면 그럴 듯 하지? 주워들은 글월이 좀 있었나봄. 하지만 비젠탈과 모사드가 쉽게 포기할 리 없었고, 3년의 재판 끝에 슈탕글은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 받음. (이때 재판이 서독에서 열렸는데 서독 법정은 사형이 없음)




지타 세레니는 한나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악의 민낯을 탐구하는 작가였음. 세레니는 슈탕글이 종신형을 선고 받은 직후부터 6개월간 감옥을 드나들며 총 70시간의 인터뷰를 함.


아래는 몇몇 인터뷰들.


Q : 당신이 종국엔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A : 브라질에 들어온 뒤 1년쯤 뒤 언젠가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요, 내가 탄 기차가 도살장 옆에서 멈췄습니다. 우리 안의 가축들이 기차 소음을 들으며 울타리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면서 기차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가축들은 내 창문 옆으로 아주 가깝게 지나갔는데요. 한마리 한마리가 밀집되어서 울타리 너머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보자. 이건 트레블링카를 생각나게 하는군. 확실히, 바로 저렇게 희생자들이 바라봤지. 그 깡통 속에 들어가기 전에 말이야.'


Q : '깡통'이라 하셨는데 무슨 뜻인가요?

A : 그 뒤론 통조림 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커다란 눈들. 바로 뒤에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걸 모르면서 말이죠.


Q : 그래서 당신은 그들을 인간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는 건가요?

A : 화물이요. 그들은 화물이었습니다.


Q : 언제부터 그들을 화물이라 생각했죠?

A : 아마 트레블링카의 학살구역을 처음 본 뒤로 그랬던 것 같군요. 내 기억으론 비르트가 거기 서 있었는데, 구덩이 옆에는 검게, 파랗게 썩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인간적인 부분이란건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건 엄청난, 엄청난 양의 부패한 살점이었습니다. 비르트가 말했습니다. "이 쓰레기들을 가지고 무얼 하지?" 아마 그때부터 저는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화물로 본 듯 합니다.


Q : 그 희생자들 중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한번이라도 당신의 아이들을 떠올린 적 있나요? 부모의 입장으로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A : 아니오...전 한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그들을 거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대량의 화물이었습니다. 전 가끔 벽에 서서 그들이 '튜브'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습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들은 나체로 발가벗겨져서 밀집된 채로 달리면서, 채찍을 맞으면서 마치....


Q : 그걸 바꿀 수는 없었나요? 당신의 지위에서 마치 가축우리에서와 같은 나체 이동, 채찍질을 멈출 수는 없었나요?

A : 아니요. 아니요. 전혀요. 이건 시스템이었습니다. 비르트가 고안했죠. 이건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슈탕글은 70시간의 인터뷰 대부분 동안 재판에서 했던 진술을 반복함. 학살은 인정하되, 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명령을 따른 것 뿐이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 되지만 대량의 죽음은 통계가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구절이지. 이제 책의 마지막 부분을 봐보자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부끄럼이 없소. 난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는 뭔가 다르게, 이전보다 덜 예민하게 강조했고, 다시 오랫동안 기다렸다. 나는 처음으로, 그동안 많은 날을 인터뷰했지만 처음으로 그의 대답을 거들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그는 마치 탁자에 붙어있는 것처럼 탁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더니

"그렇지만... 저는 거기 있었지요."

기묘할 정도로 메마르고 피곤한, 후회의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 몇 마디 문장이 나오는 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네 맞습니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말했다.

"실제로 저도 책임(Guilt)을 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죄, 나의 죄를 오직 이 대화에서만 이제서야 처음으로 이야기하게 되었군요..."

그는 이야기를 멈췄다. 그는 "나의 죄"라는 단어를 이야기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이 대화의 마지막에 그의 몸과 얼굴은 축 쳐져 있었다. 약 1분 뒤 약간 성의 없이 탁한 목소리로 그가 다시 이야기했다.

"저의 죄는, 제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겁니다. 그게 저의 죄입니다."
"아직 여기 있다구요?"
"전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게 제 죄입니다."
"당신이 죽었어야 했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죽을 용기가 있었어야 했다는 말인가요?"
"뭐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군요"

그가 애매하게, 이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지금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그때는요?"
"맞습니다."

그는 천천히 대답했는데, 아마 내 질문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한 것 같다.

"난 20년을 더 살았어요. 그 좋았던 20년이요. 하지만, 이젠 정말 살아 있는것보단 죽는 게 나은 것 같군요."

그는 좁은 감방을 둘러봤다.

"전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솔직한 어조로 그가 얘기했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젠 그만하지요. 지금껏 해왔던 이 대화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젠 끝냅시다. 이젠 이야기를 끝내자구요."

그리고 끝났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탕글은 19시간 뒤, 다음날 월요일 오후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이 70시간을 기록한 전기가 지타 세레니의 역작으로 평가 받는 <어둠 속으로>임. 이 책의 부제는 "양심에 대한 시험"임



세레니는 이 책을 내고 악마를 인간화한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음.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슈탕글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없었어. 근데 어째서 90만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죽였을까? 더 나아가 나치 독일은 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을까?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는 모든 나치 간부가 악인일까? 나치당에 가입한 850만 명의 당원들이 전부 악마였을까?


나는 나치 독일이나 일본의 제국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아렌트와 세레니 글의 부제를 다시 보자. 악의 평범성, 그리고 양심에 대한 시험.


여기 양심에 대한 시험이 있어.

"당신에게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소장 직책을 제안하겠습니다. 수락할 경우 나치당의 간부가 되어 풍족한 삶을 누리겠디만 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해야 합니다. 거절하면 유대인을 죽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당신과 당신 가족들은 고난을 겪을 거고, 국가 체재에 대한 배반자로 손가락질 당할 겁니다. 당신은 가족들과 망명해야 할 거고, 심한 경우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슈탕글은 제안을 수락했어. 도덕적 관점에서 봤을 때 슈탕글은 오답을 고른 거겠지.

만약 슈탕글이 거절했다면? 트레블링카 수용소는 없었을까? 90만명의 유대인이 죽지 않았을까? 그럴 리는 없어. 슈탕글이 아니어도 양심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인간, 제 2의 슈탕글과 제 2의 아이히만이 나왔겠지. 그들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트레블링카 수용소는 돌아갈 수밖에 없어. 필연적으로 말이야.

즉 아렌트와 세레니의 책에서 도출할 수 있는 궁극적인 결론은 비슷해. 사회실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나치즘과 전제주의 체제가 존재하는 한 그 사회의 힘에 의해 트레블링카와 슈탕글, 즉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다시, 나치당원 850만명이 정말로 모두 악마였을까? 또 반대로 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이 현재의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인권 탄압을 하지? 그들이 악마가 된 걸까?

아렌트와 세레니의 이론은 우리가 나치즘처럼 증오심으로 생겨난 이념을 경계하고 배척해야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개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도덕율에는 한계가 있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양심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도덕사회를 설립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우리가 홀로코스트 같은 인류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개인에게 양심과 도덕을 요구하기에 앞서 나치 정부, 즉 '개인에게 양심의 시험을 출제할 정부'를 세우지 말아야겠지. 이거야말로 우리가 일상 속 증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써보았습니다~ 말 주변 없는 이과라 잘 전달 됐을지 모르겠넴



여시들이 건강한 사고와 토론을 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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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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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귀염둥야 | 작성시간 23.01.22 흥미돋!!! 잘 읽엇어!!!
  • 작성자Amy Pond | 작성시간 23.02.19 덕분에 너무 잘 읽었어
  • 작성자동양고속 | 작성시간 23.03.06 고마워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이다
  • 작성자신드라 | 작성시간 23.04.02 소중한글 고마워 여샤
  • 작성자이젠안녕긋바이 | 작성시간 24.10.16 한나 아렌트 영화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됐어 글 써줘서 고맙고 좋은글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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