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써봄.
양자 문제에 대한 글이 챈에 몇몇 올라온걸 봤는데, 사실 대부분의 인식이
1.동네 힘센 나쁜놈이 약한 옆집 사람 괴롭히면서 강도짓 한다
2.지 문턱에 싫은 애들 들어오면 안되니까 먼저 겐세이 놓는거다
일단 2번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라 미뤄두고 1번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함.
우선 확실히 알아두고 넘어가야 할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중, 한-일 관계와는 그 성격이 다름.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은 서로 선조, 역사, 문화, 언어, 종교 등
어떠한 '민족'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족류 요소에서부터 다름.
한국인은 단군을 시조로 두지만, 일본인들은 진무천황에서 연원을 찾으며, 중국인들은 황제로부터 연원을 찾음.
일제때 한국인들에게 일본 신사참배를 강요했을 때 한국인들은 일본 귀신이 왜 우리 신이냐,
하면서 신사 참배를 단순 소풍으로 여겼고,
심지어 신사 앞에다 똥 싸기까지 했었다고 하는데다가,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는 서로 다른 언어이며,
토속 신앙 역시도 서로 다름. (관우 신앙처럼 나중에 넘어온거 제외하고.)
즉, 민족의 근원이 되는 족류적 요소에서부터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은 이질적인, 서로 다른 존재였던 셈임.
이제 우크라이나-러시아-벨라루스로 가서 보면,
얘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동슬라브 혈통을 공유하고 있는데다가, 언어적 동질성을 갖고 있음.
우크라이나어나 벨라루스어라는걸 생전 본 적도 없는 러시아사람한테 텍스트 보여줬는데 한 두번 보더니만 그냥 알아먹더라.
그리고 기독교 이전 이교 전설 역시도 공유하고 있고.
게다가 키예프 루스와 블라디미르 대공에서 자기네 연원을 찾음.
그 블라디미르 대공 역시 처음부터 키예프에 눌러앉았던게 아니라
오늘날 러시아에 있는 노브고로드에 있다가 계승 분쟁을 거쳐 키예프의 대공위를 먹었음.
또, 비잔티움의 문헌을 살펴보면 루스인들의 강역은 흑해로부터 백해까지 이어진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14세기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조차도 오늘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를 한 덩어리로 인식했다는 뜻임.
여기서 키예프 루스와 모스크바 공국을 아예 별개의 존재라고 악을 쓰는 경우를 왕왕 봤는데,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야를 떠올리면 됨.
잠깐 국사 교과서로 들어가보자면, 가야는 김해, 고령, 함안 등 변한 지역의 연맹체였음.
그 중 김해의 금관가야가 초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지만, 고구려한테 한대 맞고 금관가야가 약해지니까,
고령의 대가야가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함.
키예프-모스크바의 관계가 바로 그런 개념임.
원래 편의상 키예프 루스 라고 부르는 강역의 지도자 역할을 하던 키예프가
몽골한테 두들겨 맞고 박살나니까 모스크바가 루스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것임.
키예프 루스와 모스크바 공국을 다르다고 하려면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별개의 상이한 나라라고 구분해야하는데,
아무도 안 그러지?
'우크라이나의 고대사를 러시아가 도둑질해갔다' 라는
일부 우크라이나 극단주의자들의 발언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는 역사 그 자체가 증명함.
근대 이후 우크라이나에도 소위 민족주의 라는 것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니콜라이 코스토마로프임.
이 사람의 텍스트 '두 루스 민족성' 이라는 글을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나름 구분한다고 했지만,
그 구분이라는 것이 러시아인들은 보다 중앙집권적이고 딱딱하고 가부장적이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유분방하고 모성을 중시하고 어쩌고 이런 이야기를 함.
근데 결론적으로 결국 이들은 같은 뿌리의 형제라는 이야기임.
쉽게 말해서 경상도 사람들은 과묵하고 충청도 사람들은 느긋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 셈임.
코스토마로프 역시 그런 차이가 생긴 것은 사는 환경이라던가 그런게 미친 영향이 있다 라고 언급하고 있으니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을 차별했다 라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것이,
저 코스토마로프는 그 서슬퍼런 니콜라이1세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역사학과장을 맡음.
우크라이나인이라 어떤 공직 진출이라던가 그런게 제한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임.
또 다른 예로, 니콜라이 1세 시기에 내무장관부터 해서
가장 높은 직위인 재상까지 올라간 빅토르 코츄베이는 폴타바의 카자크 집안 출신이었음.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출신 내지는 혈통을 배제하고 탄압했다면
코스토마로프는 어떻게 러시아 최고 교육기관의 학과장을 맡았겠으며,
코츄베이는 어떻게 장관, 재상이 되었을까.
그리고 러시아 미술계의 거장이라 하는 일리야 레핀은 어떻고.
그런즉슨, 제정기도 그렇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탄압했다 라는 것도 들여다보면
민족이나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혈통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상술한 우크라 중심 슬라브주의자였던 코스토마로프와 러시아 중심 슬라브주의자였던 포고딘은 친한 친구였음.)
-사상의 문제였던 것임.
그 사상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슬라브주의였고,
이 슬라브주의는 우크라이나 문화나 특색을 언급한 코스토마로프나 셰브첸코 뿐 아니라,
러시아가 주도적으로 슬라브민족을 해방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중심 슬라브주의 역시 마찬가지로 두들겨맞았음.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러시아 민족주의를 러시아가 때려잡았다는 이야기임.
그 이유는 나폴레옹 이후 유럽 현상유지를 골자로 하는 빈 체제의 수호자였던 러시아가
동맹국이자 빈 체제의 또 다른 축인 오스트리아를 자극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음.
제국 내 주류 민족이건 소수민족이건,
민족주의를 억눌러야한다는 것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모두 한 덩어리 내에 묶어야 하는 '보편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음.
여튼,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라는 것을 일종의 정치사상 비슷하게 발전시킨 인물이
그루솁스키(우크라이나식으로는 흐루솁스키.
근데 남쪽 러시아 애들도 G 발음을 약하게 해서 흐 에 가깝게 함. 볼고그라드 토박이가 그렇게 발음함.)인데,
그루솁스키조차도 카자크 외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본질적 차이를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함.
근데 그 카자크의 시대는 극히 일부이며 이들과 러시아의 차이는 발해 살던 말갈인과 고구려인만큼도 안 난다는게 문제임.
더군다나 지금 문제가 되는 돈바스 지역은 본격적으로 산업화하면서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니까
얘들은 호적 파고들어가보면 할배가 어디 모스크바 근교나 볼가강 언저리에서 오고 이런 사람들이 많음.
일례로, 체르노빌 원전 소장이었던 빅토르 브류하노프는 부모가 러시아 사라토프 출신으로,
우즈벡 타쉬겐트 청소 노동자로 일했었고,
자기도 타쉬겐트에서 대학까지 나와서 거기서 일하다가 우크라이나로 초빙받아 가서 거기 눌러 앉은 케이스임.
반대로, 러일전쟁 후 재상이 된 스톨리핀은 농민 구제 및 극동 개발-방위 정책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나 남부러시아 농민들을 극동 연해주나 우수리 지역으로 이주시켰고,
때문에 극동지역에 우크라이나 출신자들이 만든 정착촌도 생기는 등 이미 서로 뒤섞일 만큼 뒤섞인 상태였음.
여튼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한 몸이었고,
한중일에 등치되는 것이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렇게 등치시키는게 더 타당하다는 것임.
(벨라루스는 리투아니아-폴란드와의 관계가 있는데,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만들면서 그쪽으로 붙게 되면서 자동으로 모스크바와의 정통성 경합에서 빠져나갔다는게 정론임.
실제로 리투아니아 대공이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만들면서 기존 정교도 루스 공들이 모스크바로 옮겨갔고.)
그렇다보니 지금 마이단 세력이 집권한 상황에서 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증오하는 것마냥 언급되는데,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것임.
여튼 이렇게 한 몸이었던 것을 인위적으로 쪼갠게 볼셰비키였음.
별개의 존재로서 우크라이나의 성격이 강했던 것은 러시아 제국 치하의 우크라이나보다,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하의 갈리치아 지역이었는데
여기를 포함해서 우크라이나를 별개의 공화국으로 떼어버린 것이 볼셰비키였으니까.
기본적으로 볼셰비키는 러시아 라는 것을 죄악시했음.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 다가올 세계 혁명과 공산주의로의 이행에 필요하다고 여겼으니까.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선 부르주아 민족주의 혁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여긴 볼셰비키가
러시아 제국 하의 여러 민족들을 자치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떼어낸 것은
니콜라이 1세가 러시아 민족주의를 부르짖은 슬라브주의자들을 때려잡은 것 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피해의식이 스탈린 시기 홀로도모르인데,
물론 우크라이나가 많은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임.
하지만 이게 우크라이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남부 러시아, 카자흐스탄도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입었음.
이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족치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지역 관료들의 과잉충성과 스탈린의 농민에 대한 불신, 강제적 농업집산화,
자력갱생을 위한 외부 원조 거부라는 환장의 박자들이 맞물려서 벌어진 전연방적인 대참사였음.
물론 우크라이나가 전통적으로 농업 강세 지역이라 영농인구가 많았고,
그만큼 타격이 심대했던 것은 사실이긴 함.
그래서 러시아 역시도 08년도 국가 두마에서 기근 사태를 야기한 소련 당국의 정책을 비판하고
전 소련에서 당시 기근으로 사망한 이들에 대한 추모를 공표한 바 있음.
다만 이게 제노사이드 는 아니다라는 입장임.
실제로 제노사이드에 대한 사전 정의를 보면 제노사이드라고 말하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은 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여하튼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 신화는 전 소련을 강타했던 재해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사유화하여
러시아에 의한 조직적인 우크라이나 학살로 변질시켜버림.
그게 그루솁스키의 후배들이 우크라이나 민족 신화를 만드는데 훨씬 용이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이후 소련 내에서 가장 소득 및 생활 수준이 높은 지역으로 자리잡았고,
1차산업부터 3차 서비스 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영역에 자치공화국으로서의
제대로 된(외무부를 포함한) 정부체제를 모두 갖춘 얼마 안되는 연방주체가 되었음.
게다가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크림을 우크라이나에 떼줬는데,
당시엔 별 불만이 없었던게 이건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냥 충북 보은군이 원래 경북이었다가
행정구역 개편하면서 충북으로 간 것이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이었지.
(근데 이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다른 나라가 된다고 하니까 크림 사람들 입장에서는 개소리마쇼 하고
실제로 크림은 러시아 편입을 위한 독립을 선언했음. 그걸 무마시켜준게 러시아였음.)
게다가 몰도바로부터 이즈마일, 폴란드로부터 코벨, 리포프와 같은 지역들을 떼다가
우크라이나에 붙여주면서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영역이 행정구역으로서 확립되었고,
형식상으로나마 입법, 사법, 행정부 모두를 만들어줬지.
즉, 우크라이나 라는 국가 자체가 소련이 만들어준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연장선이라는 이야기임.
혼란기에 볼셰비키가 만들어준 나라 라는 말은 과언이 아닌 셈이지.
벨라베자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크라브축이 91년도에 실시된 소련 존속 찬반투표의 민의를 거스르고
(우크라이나는 70%가 연방 존속을 찬성했고, 러시아에서는 71%였음.
기존 방식대로 우크라이나가 자치공화국으로서 소련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데는 80%가량 찬성을 표함.)
독립하겠다고 한 데에는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조성해준 여러 사회, 경제, 정치적 요건들이 있었기도 했음.
따로 살림을 차려도 우리가 가진 것으로 충분히 잘 벌어먹고 살 수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개떡이었지.
파란색 (발트3국, 몰도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불참
나머지는 색깔이 진할수록 연방 존속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인데, (형광색이 70%~75%)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 모두 소련 존속에 찬성하는 비율이 과반 이상이었음을 볼 수 있음.
결국 국내적으로 쪽박을 차게 되는 결과, 우크라이나가 손 벌릴 데는 그래도 같은 집안 사람인 러시아였음.
기름이고 석탄이고 러시아는 분명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대해서는 저렴하게 가스를 공급해줬고,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러시아로부터 받아오는 가스 판 대금으로 국가 재정 운영의 상당수를 충족했었으니까.
(예를 들어, 가스 시세가 1입방미터당 100원이라면 러시아는 우크라나 벨라에 20~30원 정도에 공급을 해 줘서
우크라나 벨라가 그걸 유럽 국가들에 100원에 팔든 90원에 팔든 알아서 하게 뒀음.)
게다가 러시아가 쏘아올리는 소유즈 우주선 발사로켓도 우크라이나에 만들어놓은 유즈마쉬에서 조달해왔는데,
이제 러시아도 엿이나 쳐잡수라고 유즈마쉬 패싱하고 자체조달하고 있으니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면 돌릴수록 소련때 육성된 첨단산업들 다 날려먹고 빈털털이 될 판임.
그러니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란건
'러시아가 괴롭혀서'가 아니라 대체로 크라브축이 지멋대로 행동한 이후에
정신나간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임.
오죽했으면 저번달인가,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장이 실컷 러시아 욕해놓고 뒤에 가서는
'그렇지만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계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라고 하는 것만 봐도 각이 서지.
흥부가 놀부네 집에 가서 형님 돈 좀 줍쇼 해서 돈 줬더니 가서 형님 개스키 하고 욕하는거랑 진배없는 셈임.
정리하자면,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모든 것을 해줬음.
인구, 영토, 자치시스템, 1~3차 산업, 교육, 문화, 가장 높은 소득과 생활 수준 등등..
소위 말하는 우크라이나 고유의 무언가 라고 하는 것도 레닌의 민족어 정책,
뒤이어 흐루쇼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여러 배려를 통해 성장했던 것도 사실임.
소련을 살았던 세대들이 인정하는 바임.
물론 30년대의 어려운 시기도 있었고,
체르노빌 원전사고도 터졌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 수습을 위해서 전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도왔고,
지금도 러시아는 체르노빌 수습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돈 들이고 있음.
(소련의 모든 국제적 권리라던가 그런걸 러시아가 가져갔으니 당연히 할 일이긴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게 제공한 배려나 특혜는 항상 '잊혀진 무언가'가 되고
러시아의 이미지는 일방적으로 칼 들고 우크라이나로부터 모든 것을 갈취하는 강도가 되어버림.
여하간 동네 힘센 사람이 옆집 약한 사람 일방적으로 괴롭히기나 한다 라는 그런 이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했음.
근데 러시아가 땅뙈기가 그리 큰데 왜 우크라이나에 그리 민감히 반응하느냐,
이건 글 서두에 언급했던 2번 문제로 상당부분 설명이 되지만,
위에 장황하게 써놓은 내용과 연관지어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
러시아 입장에서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과거의 외국 동맹국'이 EU나 나토로 넘어가는 것과
'우리 집'에 나토가 기어들어오는 것은 그 상황이 완벽하게 다를 수밖에 없음.
우리로 치자면 어디 뭐 갑자기 강화도라던가 인천같은데 중국군이 들어와서 기지 설치하고
전투기 띄우고 미사일 배치하는 급의 상황이 된 것임.
심지어 발트3국처럼 이미 서로 이질적인 존재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데도 아니고.
쿠바 미사일 사태때부터 해서 미국이 쿠바 문제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걸 모두가 알거임.
쿠바가 미국의 앞마당이라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안방임.
미국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임.
여기에 더해 과거의 트라우마도 존재함.
전통적으로 영국의 대러 정책은 바다로의 진출을 차단한다는 것이었음.
그 중에서도 특히 흑해 진출을 차단한다는 것이었는데,
러시아가 흑해로 나와서 보스포러스로 나오게 되면 바로 지중해와 인도가 위협받는다는게 이유였음.
그랬기 때문에 크림전쟁이 벌어졌고,
적백내전기 연합국의 개입이 우크라이나 방향에서 이뤄졌던 것이고.
물론 영국 식민제국이 해체된 오늘날,
인도 이권이 어쩌고 하는 것은 옛날 말이 되었지만
적어도 러시아가 흑해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대전제 자체는 유효함.
이런 흑해 차단 문제와 더불어 러시아로서는 독소전의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안고갈 수밖에 없는 나라임.
그래도 히틀러가 쳐들어 올 때는 오늘날 몰도바~폴란드 바르샤바~발트3국 선에서 독일군이 공격을 개시했지만,
만약 우크라이나가 넘어가게 되면 유사시 대서방 군사분쟁은 독소전보다 훨씬 더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하게 됨.
우크라이나에서 조금만 넘어오면 바로 볼가-돈 산업지역 및 캅카스 유전지대임.
푸틴이 '러시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라고 한 말은 그냥 엄살이나 핑계가 아니라 진짜로 하는 소리임.
이처럼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정말 국가 존망,
그리고 고대로부터 이어져왔던 동슬라브 공동체의 영구 분단에 처하게 될 상황이니 경제제재니 뭐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님.
경제제재가 두려워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안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것은 우리의 환상일 뿐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의 특수성 상 우크라이나를 잃는다는 것은 자기 몸 반쪽을 도려낸다는 것으로 봐야함.
때문에 푸틴 스스로가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더라도, 계속 몰리게 되면 키예프에 깃발 꽂는다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음.
(이건 작년에 작고한 미국의 학자이자 러시아 전문가 스티븐 코헨도 언급한 바 있음. 내 사견이나 찌라시가 아님.)
실제로 나토도 그걸 아니까 대러 경고 할 때도 외교적, 경제적 정도로 수사를 정제해서 말하는거고.
프랑스, 독일, 이태리 같은 나라에게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불바다로 만들어가면서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가 아님.
차라리 노스스트림 깔아가지고 싼 값에 가스 들여오고 러시아 관광객 유치하고 갑부 투자 받고,
공산품이나 농산품 수출해서 우호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걸 가장 잘 아는게
독일-프랑스 같은 유럽 대륙 주요국가들임.
나아가서, 현재 저 상황을 정확히 1:1로 등치시킬 수 없지만
우리가 러시아의 서부지역 군사훈련 이런 것을 비난할 입장은 아니라고 봄.
왜냐, 러시아에서는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 함.
'영국은 구 소련이었던 에스토니아로 기갑부대를 보내고 외무장관이 직접 전차 타고 훈련 시연을 하면서 우리를 공개적으로 적대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영내에서 우리 군대를 이동시키고 훈련한다. 누가 더 위협적이냐'
우리와 북한의 상황이랑 다를게 없음.
우리는 한미연합훈련을 우리 영해와 우리 영토, 영공에서 실시하지만
이북에서는 그걸 자기네를 향한 침략 야욕이니 어쩌니 하면서 비방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성명내고 그럼.
물론 우리는 '우리가 느그 진짜 때린다냐' 하면서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의도가 중요하다 라고 말을 하지만,
적어도 표면상으로, 러시아가 모아놓은 병력으로 실제 침공을 하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다
정말 통상 군사훈련만 하고 다시 주둔지 복귀하고 그런 상황이다보니
이해관계에서 멀찍이 떨어진 우리로서는 뭐라 입을 대기도 뭣한 상황임.
(물론 나 스스로는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시기 내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제2의 페레야슬라프 조약이 맺어지던가
무력 통합이 이뤄지던가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건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임.)
게다가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에 있는 한국이 러시아를 비난하게 된다면,
향후 대북, 대중 문제에 있어 안 낄 수가 없는 러시아가
우리한테 우호적이진 못할지라도 최소한 중립적인 제스쳐는 취해줘야 할 상황에서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유리한 제스쳐를 취해줄지 우려스러움.
그러니까 외교부에서도 사실 뭐 대러 제재니 공개성명이니 할때 입 쓱 닫고 있는 것이겠고.
물론 우크라이나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챈럼들도 있겠고
실제로 교전지역 민간인들은 친러건 아니건 잘 살다가 갑자기 폭탄맞고 피난다니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임..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동네 힘센 나쁜 사람 러시아가 약한 옆집 사람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으로 해석하며
러시아를 나쁜놈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지금 저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더 복잡하게,
그리고 오해하게 할 소지가 다분함.
(이 이야기 역시 나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라 폴 다니에리 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가 저서에서 언급한 바 있음.)
결국 이 모든 원죄는 한몸이던 나라와 그 구성원을 갑자기 쪼개놓은 볼셰비키,
그리고 대다수 민의를 멋대로 씹은 크라브축, 옐친, 그리고 상황을 통제 못한 고르바쵸프에게 있으니,
솔제니친 말마따나 러시아는 스스로 열어젖힌 지옥문을 스스로 닫아야 하는 운명에 놓인 셈임.
일단 역사적인 발달을 중심으로 해서 양자 관계의 특수성 등에 대해 썼는데,
누구누구처럼 무조건 러시아가 옳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님.
물론 러시아의 입장을 설명해야하다보니 그렇게 쓰인 부분도 있지만,
특수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글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발달 노정이 그러한 것이다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함.
출처 : arca.live/b/airsoft2077/39765489?mode=best
사실 우크라이나 자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가가 아니라 뵬셰비키들이
민족의식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해 사용한 세뇌로 생각하고
이 민족이란 걸 부정함으로써 전세계의 노동자들은 민족을 초월한 하나란걸 증명하기 위해
서로 정체성이 다른 갈라치아와 말로로시야라는 두 지역을 인공적으로 합쳐서 만든 국가라
어느정도 안정적인 상황일 때는 몰라도 국내 상황이 혼파망인 상황에서는 안습할 수 밖에 없음
* 루스족
러시아(로시야) : 흑루스 -> 대루스
우크라이나(말로로시야) : 청루스 -> 소루스
벨라루스(벨로로시야) : 백루스
갈라치아 : 적루스
소루스와 백루스는 대루스와 역사 대부분을 공유함
루스의 시작인 루스카칸국부터 공유하고 중간에
몽골 침공으로 인한 키예프 루스 멸망 이후 혼란 시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침입으로 인해
200년 동안 분리 되었지만(분리된것도 지배층만 달랐던거지 교류는 키예프 루스 시절처럼 루스지역끼리 존나했음)
대홍수 시기 다시 합쳐지고 그 이후 소련 해체 때까지 쭉 공유
그에 반해 적루스는 루스카간국 시절은 공유해도
루스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시작된 키예프 루스 시절 초기에 바로 키예프 루스랑 분리되면서
대루스랑 공유하는 역사가 100년도 안되는 지역임
그리고 이 적루스와 소루스가 합쳐진게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루스는 모두 루스카간국들 중
키예프 루스가 성립되면서 확립되었고 확고한 정체성이 시작됨
적루스는 키예프 루스에서 바로 분리되었고
적루스가 분리된 후 400년 후에 몽골에 의해 키예프 루스가 멸망
루스계 지역은 한동안 거의 무정부 지역이 되고
이런 재난상황에서
키예프 루스의 주요 잔존 세력들은 몽골을 피해 깡촌 시골인 모스크바에 집결
모스크바 루스가 루스의 주도권을 차지하게됨
많은 루스인들이 몽골을 피해서 동북쪽 모스크바쪽으로 이동하자
기존 지역은 힘의 공백이 생기고 이것을 본 리투아니아는
텅텅빈 백루스(벨로로시야)와 소루스(말로로시야)의 일부를 차지하게되는 데
아무리 백루스와 소루스 지역의 인구가 몽골 때문에 급감했다 하더라도
리투아니아의 체급이 워낙 작아서 문제가 있었고
결국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이루면서
이 체급 문제를 해결함
이렇게 모스크바에서 재기를 시작한 루스가 대루스로
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게 된 루스가 백루스로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와 동군연합이 된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세력을 더 확장해서
추가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게 된 루스가 소루스로
이렇게 아종으로 분화됨
폴란드는 정교회를 믿는 루스인들에게 카톨릭을 강요했는 데
문제는 정교회가 루스인들의 정체성이여서
카톨릭 강요는 당연히 루스인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 반발에 폴란드는 더 강한 강요로 대응 하면서
결국 레흐(폴란드)와 루스의 영혼의 맞다이는 필연이 되버림
폴란드는 자국 내부의 루스들을 착취하는 데 제일 방해되는 것이
외부의 강력한 루스 세력인 모스크바 루스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이 모스크바 루스를 격파해야만 폴란드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했음
때마침 모스크바엔 동란시기라는 내전이 발생하고 폴란드는 이 내전에 바로 개입
모스크바를 함락하면서 폴란드 왕자를 모스크바의 차르로 앉힘
그러나 폴란드 왕자는 폴란드 왕자 답게 또 카톨릭 강요를 했고
이에 모스크바 루스들이 로마노프 가문을 차르로 추대하고
다시 폴란드와 전쟁을 시작
결국 폴란드는 모스크바에서 쫒겨남
그리고 이 폴란드 차르 사태로 모스크바는 폴란드에 대한 복수를 천명하게 됨
당시 루스계 지역의 세력은 크게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모스크바 루스로 나뉘었는 데
당연히 루스계 지역들은 카톨릭 강요하는 이민족인 폴란드보다 루스 그 자체인 모스크바 루스에 합류했고
모스크바 루스는 계속 힘이 강해져서 국명을 루스 차르국으로 바꿈
폴란드에 복수할 날 만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던 루스차르국은
결국 폴란드 대홍수 시기때 폴란드를 대파하고 벨로로시야와 말로로시야를 폴란드로 부터 200년만에 되찾는 데 성공함
이렇게 루스의 성지 키예프를 되찾은 루스 차르국은 루스의 통일을 선언하고
후에 러시아 제국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