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흥미돋]여시야 사랑해 꽃도 열매도 없이 오래 살자 누구의 꽃도 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작성자리소목작성시간22.06.13조회수2,966 목록 댓글 3출처 : 여성시대 표류
선아
사랑해
꽃도 열매도 없이 오래 살자
누구의 꽃도 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무엇도 예감할 수 없는 이 심연 속에서 내가 네게 준 건 단지 그림자뿐이었을까. 그럴까. 너의 마음은 전부 가짜였을까. 내가 끝없이 속으로 물을 때.
⠀목을 움켜쥔 손처럼. 눈물과 고백의 밤을 지나온 창백한 두 사람처럼. 서로를 동일시할 때마다 서로를 가장 멀리 밀치면서.
⠀언니, 언니가 그렇게 썼잖아 나는 그걸 읽고 언니, 그것의 제목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기억나지 않아 언니 나는 단지 언니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얼굴이 빨개졌을 뿐인데 왜냐하면 어떤 것은 꼭 내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고 어떤 문장은 내가 잊기 위해 평생 애쓴 계절 같아 나는 가끔 언니가 너무 밉고 너무 좋고 언니의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나를 벗어버릴 것 같고 영원히 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언니
물결에 부서지는 빛
이상하게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파
이렇게 말해도 될까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너만 가진 것 같다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오래 생각해왔어. 그런 게 있다면. 이 차가운 밤도 운명의 일부겠지. 안 그래? 초록 눈동자는 어둡고 축축한 동굴처럼 빛난다. 너를 알지도 못하는데, 사랑하게 될까 봐 겁나.
어쨌든 너는
갑자기 모든 게 끝났다는 듯 차가워질 수 있는 사람
나는 남아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
모두
백은선 도움받는 기분의 문장들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그러니 문장이 좋았다면 책도 꼭 읽어보길 바라
잔잔함 속에서 아름다움의 소용돌이를 느낄 수 있는
여성 시인의 시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