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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조선시대 왕 □□□으로 태어난 여시! 어떻게 할지 골라보는 글 2

작성자유소정 여자 친구|작성시간23.03.24|조회수1,646 목록 댓글 9

출처 : 여성시대 유소정 여자 친구

🍀

독립운동가 □□□으로 태어난 여시! 어떻게 할지 골라보는 글

조선시대 왕 □□□으로 태어난 여시! 어떻게 할지 골라보는 글 1



꼭 틀고 글 읽어주세요
감정이입이 더 잘됨





조선시대에 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된 여시.
왕후에게서 나온 적장자가 아니었음.
후궁의 둘째 아들, 세자의 자리와는 멀었음.


그러던 어느날, 왜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옴.
부산, 대구, 충주 그리고 한양까지....


"북쪽으로 피난하여 회복을 도모해야겠다."


수도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다는 아버지의 말씀.
피난길에 앞서 신하들은 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함.


"대계를 정하시어 사직의 먼 장래를 도모하소서."


공석이었던 세자 자리, 세자 책봉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전쟁 중 급하게 세자가 된 여시.

그때 여시의 나이는 18살이었음.
책봉과 함께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여시.
비가 오는 날 아버지를 따라 경복궁을 나서야 했음.


여시가 세자가 된 지 한 달 즈음이 됐을 무렵.


"왕세자에게 조정을 나누어 주겠다.
일국의 왕과 다름없는 책임감을 가지고,
반드시 이 나라와 백성을 호위해라."


"이제부터 네가 이 나라의 왕이다."



아버지의 명으로 분조를 하게 됨.

왜적의 손에 죽을 수 없다고 말한 아버지는 명나라로 망명을 준비했고
여시는 조선에 남아 전란에 휩싸인 나라를 책임져야만 하는 것.




그리고 여시는,












여시의 곁에 남은 신하들과 함께
조선을 수습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음.

험한 산길을 오르고 얼마 없는 식량도 나눠먹으며
들판에서 노숙까지 해야 했음.

식량이 부족한 날에는 신하들과 생쌀 한줌을 나눠먹을 정도였음.





공석이 된 고을의 수령들을 임명하고
지방 관리들의 상서와 보고를 처리하며 조선을 수습하기 시작함.


백성들은 여시가 고을에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하고 다시 살아난 것 같다고 말했음.


민심도 점차 수습되기 시작한 조선.



전쟁통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통받고
함께 슬퍼한 여시.

백성들은 여시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함.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아버지의 명나라 망명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짐.

왜적이 명나라까지 쳐들어올 것을 우려한 명이 지원군을 보내준 것.

1년만에 한양을 되찾은 조선.
한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가장 먼저 분조를 해체시킴.




"세자가 뛰어나고,
세자를 모시는 신하 중에는 현명한 사람이 많으니
나라가 번창하게 될 것이다.

이에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자 한다."




신하들이 모두 아버지의 양위 선언을 말렸음.


"아니되옵니다, 전하!!!"


아버지가 양위를 하지 않으면
불충이자 불효가 되기에 여시도 식사를 거른 채 엎드려서
매일 간절하게 빌었음.




"제발 양위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여시는 아버지의 양위 선언을 18번이나 더 겪게 됨.


왜란이 끝나고....
여시는 아버지에게 문안 인사를 하러 감.

하지만...



"어째서 세자의 문안이라고 이르느냐.
너는 임시로 봉한 것이니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아라."






여시는,









속이 문드러지고 속상하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됨.

결국 속상함에 피까지 토하게 됐음.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던 이유는...
명나라가 여시를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음.
적장자가 아닌 둘째 아들이라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음.




여시는 명나라로부터 무려 5번이나 세자 책봉을 인정받지 못함.



"명나라가 거절하는데, 어찌 하면 좋단 말이냐."


아버지의 말은 압박으로 돌아오고
여시의 지위는 아슬아슬해짐.


여시에게는 친어머니와도 같던 왕후가 고열로 급사를 하게 되고,
아버지는 여시보다 9살이나 어린 새로운 왕후를 들이게 됨.




그리고 새로운 어머니는 혼인 4년 만에 새로운 아들을 낳게 됨.

첫 적자를 품에 안게 된 아버지.....



아버지는 여시를 미워하고, 또 미워함.

대군의 탄생을 축복할 수 없었음.
신하들도 아버지가 여시를 미워하는 것 즈음은 알고 있었을 테니
대군쪽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렸을 무렵,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됨.

아버지가 지목한 다음 왕은





여시였음.

겨우 2살인 대군을 왕으로 세울 수 없으니
여시를 지목한 거임.




"피눈물로 지켜온 용상을
네깟 놈에게 물려 준다 생각하니 내 분통이 터져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여시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약 4개월 뒤, 눈을 감은 아버지.



마침내 즉위하게 된 여시.

명나라가 여시의 책봉을 거절했던 이유가 여시가 둘째이기 때문인데.
여시의 형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존재였음.

형이 없으면... 여시가 책봉이 될 수 있음.






고민하던 여시는,




형을 역모죄로 엮어서 유배를 보내버렸음.
그런데 1년이 지난 어느 날, 형이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




여시는 형의 죽음을 궁금해하지도 않고
실상 파악을 위한 조사도 하지 않았음.

"여시의 뜻"이었기에.


한달이 지나고 드디어 명나라의 책봉사가 한양에 도착함.

세자 때 끝내 받지 못했던 명나라 황제의 승인을
왕이 되고 나서야 받게 됨.



"오직 인재만을 천거하고, 어진 사람만을 기용하여
다함께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게 하라."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옆에서 바로 본 여시.

여시는 토지를 개간하고 토지 대장과 호적을 정리함.
성곽과 무기를 수리해 국방도 강화함.

또한,

여시는 특산물 대신 쌀로 납세를 통일하고
토지 소유에 따라 차등 납부를 하게 만들었음.

전쟁으로 인해 의학과 약학에 대한 수요에 맞춰서
동의보감도 편찬함.


그리고 즉위한 지 5년이 되던 해...

경상도에서 은 강도 사건이 일어남.
문경새재를 지나는 상인들의 은을 약탈한 사건이었음.

잡혀 온 범인들을 취조하는데 그들이 놀랄만한 말을 뱉어냈음.


"은화를 모아 무사들과 결탁한 다음 거사하려 했다."


역모.



... 역모.
여시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거사.
반역 자금을 위해 벌인 강도 사건이었음.


그리고 그 역모의 주도자는,



김제남이라는 인물이었음.

대군의 외할아버지.

김제남이 여시를 쫓아내고 대군을 왕위에 올리려고 했던 것.

여시는 다시 한번 불안해지기 시작함.
8살이지만 대군은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됐음.

우선 역모를 주도한 김제남과 그 아들들을 처형함.






여시는,





대군을 강화도로 유배 보내서 없애버리기로 함.


다음 해 2월 강화도에서 소식이 전해졌음.




대군이 9살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

대군이 빨리 죽지 않을까 걱정하여
온돌에 불을 때서 아주 뜨겁게 해서 태워 죽였다.












대군의 죽음을 조사하지 않은 여시.

여시의 시선이 이제는 다른 인물을 향했음.
궁궐에 입궁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여시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인물.

여시의 새 어머니.









여시는


계모의 처벌을 밀어붙였음.



"지금 이후로는 대비의 호칭을 없애도록 하라."



여시는 계모를 다른 궁으로 유폐한 뒤, 그 궁을 서궁으로 격하했음.


어느 날 명나라가 여시를 향해 군대를 보내달라고 서신을 보냈음.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명나라를 쳐들어오고 있었기 때문.
명나라는 후금과 맞서 싸울 조선의 병력을 원했음.









여시는 명나라에게


"조선은 전쟁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수만 명의 군대를 동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조선 군인들은 실전 경험이 없는 농부들이기 때문에
차라리 압록강변에서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파견을 거부했음.



"명나라는 조선의 부모국이자 왜란 때 은혜를 베푼 은인인데,
부모와 은인이 도와달라고 했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와야 합니다."




신하들의 독촉과 명나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한 차례 지원군을 보냈음.

후금에게 패배한 명나라는 요동 지역을 후금에게 빼앗김.


또 한번 지원군을 요구한 명나라.



여시는 이번에는 단호히 거절함.

명 황제의 책봉을 받은 조선의 왕이
명나라의 요구를 거절함.

여시의 이런 모습에 신하들은 조정에 출근을 하지 않음.


고립된 여시.

그러던 중 여시는 한성에 떠돌던 풍수지리를 하나 듣게 됨.

[인왕산에 왕기가 서려 있으니 인왕산에 터를 잡은 사람은 앞으로 왕이 된다.]
















"인왕산 자락에 궁궐을 짓도록 하라."


여시는 그곳에 엄청난 규모의 궁궐 두 개를 동시에 짓기 시작함.
궁궐 공사에 모든 걸 쏟아부었음.
국고까지 털어서.

국고도 모자라자 재물을 받고 고위관직까지 주며
궁궐 공사를 함.




그리고,




3월 12일.
천여명의 군사가 여시가 있는 창덕궁으로 향함.


"유폐되어 살면서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것은.
오직 오늘날을 기다린 것이다.
내 먼저 이혼 (李琿) 부자의 머리를 가져와서
내가 직접 살점을 씹은 후에야 책명을 내리겠다."





중무장한 군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함.



칼이 부딪히는 소리,
호위 무사들이 죽어가는 소리,
생명을 가지고 있던 몸들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




여시의 끝을 쥐고 있는 자가 문 앞까지 다가왔음.


피범벅이 된 자들이 여시의 앞에 서고,
여시는 끌려 나와서 여시가 폐위시켰던 대비의 앞에 무릎을 꿇고
결국 폐위 당하게 됨.






여시가 집착했던 인왕산 터, 여시가 궁궐을 짓기 전까지 그곳에 살았던 인물이




능양군의 아버지 정원군이었음.



여시의 죄명은
[재조지은: 명이 조선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를 배신하고 후금과 내통한 죄.]



여시는 강화도로 갔다가 곳곳을 옮겨다니며
10년을 살게 됨.


여시를 감시하는 군인들과 종들은
여시를 무시하고 하대했음.

아들 부부는 유배지에서 탈출을 하려다가
붙잡혀 목을 매 자결하고
여시의 아내는 아들 부부의 소식을 듣고
우울증과 홧병으로 사망하게 됨.


바람 불어 날리는 비는 성벽 위를 지나가고
습하고 더운 독기 백척 누각 덮었구나.
고국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진 지 오래되니
안개 자욱한 강 위에 외딴 배만 누워있네



여시는 교동에서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길 때
시 하나를 남겼음.

울타리 안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여시.
여시를 감시하는 별장이 상방, 여시가 하방을 쓰는 등 처지는 좋지 못했음.

온갖 수모에도 여시는 화를 내지 않았음.

죽기 1년 전, 인조가 홍타지의 미움을 사서 청나라의 침입을 받기도 했음.
왜란에 이어 이젠 청나라에게까지...

전 국토가 청나라에 의해 유린되는 모습을 보고 죽어야만 했던 여시.

내가,
잘했더라면,
내가......








오늘의 왕은 여시 모두가 눈치챘듯이
광해군이었음.

물론 본인이 왕위 보전에 대한 집착 때문에...
결국 폐위당했지만...
임진왜란까지 겪은 인물이 죽을 때에는 병자호란까지 겪는 걸 보고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ㅠ

근데 광해군 묘 위치를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은 곳에 둠 ㅉ
광해군 유언이라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아서
유언 조작이라는 말도 있음





글과 상관없는 이야기 금지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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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니 죽이는생각 | 작성시간 23.03.24 명나라 등신아
    선조 쫄보색기야
  • 작성자워쭈뤠계 | 작성시간 23.03.24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기구하니
  • 작성자카토벤 | 작성시간 23.03.24 진짜 두문단 보고 선조랑 광해군인거 알아챔 ㅋㅋㅋㅋ ㅅㅂ 개븅신새끼 개상놈 아니 짐승 새끼가 왕의탈을 쓰고 태어나선.. 지금 지옥에서 천벌받고 있을겨
  • 작성자Mmood | 작성시간 23.03.24 ㅜㅜㅜㅜㅜㅜㅜ어우
  • 작성자남아일언풍선껌 | 작성시간 23.03.25 이 글 무지 좋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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