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fmkorea.com/6719885299
1971년 여름,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거주하던 구재천 씨는
집에서 배수로 작업을 하던 도중
고철덩어리가 우수수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 뭐야 이거 써먹을 데도 없고
그는 낡고 녹슨 고철덩어리를 써먹을 데가 없어
지나가던 엿장수에게 팔아버렸는데...
오옹 이게 뭐지? 일단 알겠습니다
엿장수는 전남도청에 이 고철덩어리를 유물이라고 신고.
전남도청은 유물을 잘 보관한다.
(*참고로 1998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된다)
4개월 정도가 지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71년 12월 20일 조유전 학예사를 파견하는데....
이는 해당 유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북 지역의 지표조사(유적 기록이라고 보면 된다)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오 마침 잘 오셨음 이것 좀 봐주셈
그런데 갑자기 도청의 직원 중 한 명이
신고가 들어왔던 그 유물을 들고 달려왔고...
이... 이것은...!
빨리 인력 더 보내줘! 빨리빨리! 빨리!!!
조유전 학예사는 유물의 가치를 직감, 보고를 올리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비행기로 청동기 전문가인
윤무병 연구사를 파견,
1971년 12월 24일, 나흘만에 긴급조사를 시행한다.
대곡리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그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더러,
당시까지 유일하게 발굴 장소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물들의 성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제사를 위해 같이 묻었음이 분명했기에,
당시의 부장방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헉 ㅈㅅ;; 몰랐어요
하지만 4개월이나 지나서 찾아갔으니
당연히 현장은 파괴된지 오래였고...
그들은 구재천 씨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전해들어 기록하고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며 추측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데헷
그렇다고 뭐 구재천 씨를 탓할 수는 없는 게,
애초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두 전문가에게 준 시간은
고작 24일 하루였기 때문이다.
물론 구재천 씨의 사유지였으니 어쩔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글쎄, 6개월 전에 무령왕릉에서 깽판을 친 걸 생각하면
그냥 졸속 발굴이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어쨌든, 그 가치를 고려하여,
해당 장소에서 발견된 11점의 유물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발굴]
그러나 2008년, 구재천 씨가 떠나 현장이 폐가가 되자
국립광주박물관은 현장을 정리하고 겸사겸사
조사를 추가로 진행하자고 하는데...
(*현 국립부여박물관장)
만약에 유물 추가로 나오면 내가 춤 춘다ㅋㅋㅋ
(*진짜 동료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은화수 연구관은 목관의 흔적을 걷어내며
내심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길 기대했지만...
따흐흑
이미 2004년에 전남대에서 조사했을 때도 못 찾은 유물을
2008년에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2월 20일, 전문가들과 함께 지도위원회를 연다.
이제 발굴을 마무리하겠다는 신호와 같았는데...
그림은 진짜 현장이 아니라 아무거나 갖고 옴
여기야~ 여기~
그런데 다음 날인 21일 오전 11시 30분, 그는
무덤 바닥 남쪽에 옅은 검은색 띠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자 은화수 연구관은
"여기 이상하다. 느낌이 다르다"라고 중얼거리며
땅을 살살 파 보기 시작하고...
무언가 트라우얼(꽃삽 비슷한 도구)에 걸렸다.
히히 또 나지롱
그렇게 은화수 연구관은
2점의 청동검을 추가로 발굴하게 된다.
(진짜로 춤을 추셨는지는 모르겠다)
귀중한 국보급 유물들을 지켜낸 엿장수에게
전문가들과 국가는 보상하고자 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과연 그가 누구였을지,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