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보물과 국보를 찾는 모임, 예성동호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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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근처 석불입상을 보러 가기로 한 그들.
그런데 운전을 하던 충북도청 공무원 김예식 씨가
근처 마을에 비석이 있는데 보고 가자며 차를 세운다.
말벌말벌 행동이라니. 역시 역덕은 무섭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우르르 내린 동호회원들.
김예식 씨는 비석에 아무것도 안 새겨져 있다고 보았지만,
여러 사람이 자세히 확인해 보니
글씨가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날 알아봤구나! 그래! 맞아! 내가 바로...!
조선시대 비석인 듯?
옛날에 숙종이 이 마을 사람한테 땅을 하사했다잖아
그거 기록하려고 마을에 세워둔 듯?
왓?
이미 글씨가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호회원 중 일부는 기록에 의존하여
조선시대의 비석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흠... 아닌 거 같은데...
그러나 김예식 씨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이 비석이 신라의 유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한국사학계의 거목 황수영 교수가
2년 전 그들을 만나 한 말 때문이었다.
충주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니
분명 진흥왕 순수비같은 비석이 세워져 있을 걸세.
오래된 비석이 있으면 꼭 연락해 주게...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한지 1년 뒤
단양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되었으니,
김예식 씨는 진흥왕 순수비처럼 이 비석도
중요한 신라의 비석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교수님한테 직접 보여드리면 되겠다!
마침 예성동호회가 찾은 봉황리 마애불상군 연구를 위해
황수영 교수가 일본 학자들과 충주를 찾게 되고...
문화재관리국은
해당 지역 문화공보실장이던 김예식 씨에게
교수님의 안내를 부탁하게 된다.
오호...?
원래는 불상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겠지만,
마음이 급한 김예식 씨는 황수영 교수를
석비가 있는 곳으로 먼저 모셔간다.
황수영 교수는 제자들을 남겨 비를 탁본하게 한 뒤,
봉황리 마애불상군을 연구하러 김예식 씨와 함께 떠난다.
교수님, 방금 석비 있잖아요... 어떻게 보셨나요?
지금 내 마음은 온통 그곳에 가 있소.
힝 나도 보물인데
뭔가 중요한 비석이라는 걸 직감한 두 사람의 마음은
석불이 아닌 비석에 가 있었다.
김예식 씨는 '아 일본인 학자들
왜 이렇게 오래 연구하는 거야!! 비석 보러 가고 싶은데!!'
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와썹?
어쨌든 그날 오후, 황수영 교수에게 차를 대접할 겸
그들은 다방에 모여 탁본을 펼쳐보는데...
신라토내... 당주... 대왕... 국... 태자?
아! 이것은 분명 진흥대왕의 비석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진흥왕 순수비처럼 진흥'대왕'이
이 비석을 세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잠깐만... 나 혈압 높아서 이렇게 흥분하면 안 되는데...
(실제로 한 말)
황수영 교수는 석비의 중요성을 직감하였지만,
충청북도의 연구를 담당하였으며 탁본도 떴던
제자 정영호 교수에게 조사를 양보한다.
응? 뭔가 이상한데...
그러나 연구를 담당하던 정영호 교수는 비석에
고구려 관직명과 고구려 성 이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뭐하세요?
이때, 서울에서 버스를 놓쳐서 제 시간에 못 온
김광수 건국대 교수가 현장에 도착한다.
비석에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만 가득한데
어딜 봐도 고려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아.
정영호 교수는 김광수 교수에게 탁본을 건넸는데...
이게 '고려'잖아요?
김광수 교수는 탁본을 보자마자
'진흥(眞興)'대왕이 아니라 '고려(高麗)'대왕임을 지적한다.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던 발견자들은
대왕 앞의 한자를 모두 진흥대왕으로 읽었지만,
선입견이 없던 김광수 교수는
정확하게 올바른 한자를 읽어냈던 것이다.
서프라이즈~
덕분에 제 정체를 정확히 밝혀낼 수 있었던 이 비석은
한반도의 유일한 고구려 비석,
대한민국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이다.
발로 뛰는 향토연구모임의 발견, 대학자의 예견,
선입견이 없는 전문가의 중요성까지...
모든 이상적인 요소가 만나
소중한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찾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