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fmkorea.com/6742647380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이는 곧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국민당은 대륙에서 발 붙일 곳이 없음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국민당과 그 지지세력들은
타이완 섬으로의 도주를 시행하니, 이를 국부천대라 한다.
그러나 하물며 방 하나도 형제랑 나눠 쓰면 좁은데
하물며 200만 명이 우르르 섬으로 몰려왔으니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자 독자 여러분, 지금부터 얘가 본성인이다.
왜냐고? 내 맘이징
타이완 섬에는 명~청부터 건너온 한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을 본성인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1945년~국부천대 동안 건너온 한족들은
타이완 섬 바깥에서 왔다 하여 외성인이라고 불렀다.
본성인이 외성인보다 다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은 외성인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냐고?
총을 든 쪽이 외성인이면 가능하다.
국부천대 이전부터 국민당 정부는 대만 섬의 이권을
외성인에게만 부여하며 갈등의 씨앗을 심었고,
1947년 본성인들의 불만이 반정부 운동으로 번지자
공식적인 집계만 25,000명에 달하는 본성인들을
군대를 보내 학살한다. (2.28 사건)
또한 국민당 정부는 1949년 5월 20일 계엄령을 선포,
정부가 '위험분자'로 지정한 인물들을 체포하고
군사력을 통해 사회를 통제한다.
이 계엄령은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 총통이
1987년 7월에 해제하기 전까지
3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씹새끼들...
이런 상황 속에서 본성인들이 외성인과
같은 중화민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는 없었다.
본성인들은 '우리는 대만에서 살던 대만인'이라는
자신들만의 민족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산다!!!
1979년, 대만의 대도시 중 하나인 가오슝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며,
더 이상 억압적인 체제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은 국민당은
1986년부터 정치자유화를 시작한다.
자유화의 흐름을 타고 사실상의 일당독재에서 벗어나
야당, 그것도 본성인의 정당이 생겨나게 되니,
이 정당을 민주진보당이라 부른다.
한편, 국민당에서는 장징궈가 사망한 후
부총통인 리덩후이가 총통 자리를 이어받는데,
리덩후이는 첫 본성인 총통이었다.
그는 야당인 민주진보당 창당을 묵인하고,
총통 및 지방자치단체의 완전한 직선제를 완성하며
대만의 민주화를 안착시키는 데 성공한다.
본성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일까?
리덩후이는 은근히 '대만화'를 추구하며
대만을 중국과는 별개의 국가로 보고자 했다.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점점 강해지는
본성인들의 '대만 민족주의'도 점점 강하게 표출되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대륙의 중국공산당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게 되는데...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