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794048583
※ ※ ※ 일본 쪽발희 올려치기 아님 ※ ※ ※
옛날 경주는 발전한 도시로서 인구가 많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주막이 뒤뜰을 넓힐 겸
주막 뒤에 있는 언덕을 파 보기 시작하는데...
? 님들 이거보셈 땅에서 구슬이 막 나옴
과연 옛날부터 땅 파면 유물 나오는 동네답게
구슬들 우르르 땅 속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오 뭐임 이거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가져가도 됨?
ㅇㅇ 그러셈
역시 경주사람은 쿨하다.
그렇게 땅에서 나온 구슬을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가져가게 되는데...
어이어이!!!
너희들 이 구슬 어디에서 난 거냐구!
그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는 조선인 아이들이
일본 순사의 눈에 걸리게 된다.
저기 주막집에서 언덕 파니까 구슬 나오길래...
그거 갖고 온 건데...
뭐라고? 그러니까 너희들 말은
땅을 파니까 푸른색 유리구슬이 나왔다 이거잖아?
민나! 당장 안내하도록!
순사는 구슬의 출처를 들은 후
중요한 문화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당장 주막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주막의 주인 박문환 씨는
열심히 땅고르기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으아아악!!! 스토뿌!!!
아무리 봐도 그것은 그냥 언덕이 아니 고분데스!!!
순사는 당장 작업을 중지시키고
경찰서장에게 서면으로 상황을 전한다.
근데 이거 발굴 어케함?
소식을 듣고 곧바로 총독부박물관에서 달려왔지만...
ㅁㄹ 일단 걍 해보죠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건지,
아니면 중요성을 잘 몰랐던 건지...
고고학자 없이 불과 2~3일만에
현지 초등학교 교장 등이 주축이 되어
발굴조사를 해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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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소 주인이었던 모로가 히데오(오른쪽)와 경주보통학교 교장이던 오사카 긴타로(왼쪽)가 금관총 발굴을 주도했다. 관변단체인 경주고적보존회 일원이었지만 발굴의 ‘발’자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금관총을 발굴한 것이다.|함순섭 대구박물관장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분에서는
3만여 점에 달하는 아름다운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당시에는 무덤 주인 이름조차 몰랐기에)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금관에서 이름을 따 와
이 무덤을 금관총이라 부른다.
이렇게 보니 고고학자 없이 발굴해도
'오 뭐임 파는 족족 개쩌는거 나옴ㅋㅋㅋ
우리 발굴 좀 잘하는듯?'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이 쪽발희 순사 한 명이 재빨리 말리지 않았다면
유물들은 땅고르기 중 상당수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무덤의 주인은 92년 뒤에 대한민국이 다시 조사하고 나서야
'이사지왕'인 게 밝혀졌습니다.
근데 이사지왕이 누군지는 여전히 모름
그리고 쪽발희 순사의 진실은..........
모로가는 1925년 멀쩡한 첨성대를 두고 “약간 기울었다”면서 해체·복원을 주장했다가 호응을 얻지 못해 무산됐는데요. 보존상태가 양호한 첨성대를 해체하려고 했던 이유는 있었답니다. 분황사 전탑의 해체(1915년) 과정에서 화려한 유물이 출토된 사례를 기억해낸 겁니다. 모로가에게는 한국 문화재의 보존은 안중에 없었고, 온통 유물만 보인겁니다.
■경주왕에서 도굴품매매업자로 체포
그런 모로가를 긍정평가하는 이들도 있겠죠. 모로가가 이유야 어떻든 경주박물관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냐고요. 과연 그렇게 긍정 평가할 수 있을까요. 모로가가 금관총을 발굴했잖습니까. 그런데 당시 금관총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반출된 유물 중 금제 장신구 8점이 그 악명높은 수집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의 수중에 넘어갔는데요. 이때 모로가와 금관총 유물의 반출이 모종의 연관성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일본학자들도 있었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요. 결국 모로가는 도굴품 매매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00원형을 받습니다. 불법소장품들은 압수되고 박물관 주임(분관장)직에서도 쫓겨납니다. 압수된 모로가의 유물 중 일부는 경주박물관이 사들이고, 나머지는 일본 제실박물관(도쿄국립박물관)이 구입 인수했습니다. 이 모로가 유물은 1965년 한·일 회담으로 환수된 유물 가운데 포함됐는데요. 반환유물 중에는 ‘황남동’이라고 출토지점까지 표시된 신라유물도 있었답니다. 모로가가 사주한 도굴을 통해 탈취한 유물인거죠.
1933년 문화재 장물 매매혐의로 체포된 모로가를 다룬 기사. “경주를 좌지우지한 속칭 경주왕의 말로”라고 표현했다.
전문은 아래글로
매우 흥미로움
https://m.blog.naver.com/bhjang3/2222680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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