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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한국독립운동사에서 소실된 자료들(로스트미디어)

작성자세차|작성시간24.10.23|조회수974 목록 댓글 1

출처: https://www.fmkorea.com/7602998757

1. 임시정부 문헌들 및 국새

1945년 해방 이후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때 임시정부는 가죽상자 13개를 구해 10개에는 임시정부의 문헌들을, 다른 3개에는 임시의정원(의회) 문헌들을 담아 돌아왔다. 그러나 이 문헌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임시정부의 국새도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2019년 KBS의 보도에 따르면 사라진 문헌들은 다음으로 추정된다.

 

 1. 임시정부 국무회의 회의록

 2. 대국민 포고문

 3. 법률 제정안

 4. 각 부서 인사 자료

 5. 각 부서 재정 자료

 

이 문헌들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두 개의 원인이 있다. 첫번째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사 이후 일본 측이 임정 건물을 급습했는데, 이때 1919년 임정 수립 이후 1932년까지의 문서 980건이 일제에 넘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때 넘어간 임정 문서들이 중국 상하이당안관에 보관되어 있을거라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두 번째는 1950년 터진 한국 전쟁이 원인이었다. 앞서 말했듯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에서 가져온 문서들과 국새를 처음에는 김구가 머물던 경교장에 보관했다 1946년 임시정부 비서처 용도과장이었던 조남직(趙南稷)의 자택으로 옮겨 보관하였는데. 1953년 여름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이었던 조경환(趙擎韓)이 조남직의 자택에 찾아가보니 부인에게서 매우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다. 문헌들을 보관해 놓은 창고가 소이탄 폭격에 불타는 바람에 창고 내의 자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거기에 조남직이 전쟁 도중 납북되면서 이 문서들의 행방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문서들이 폭격으로 유실된게 아니라 북한군에게 약탈당했고,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되어 있을거라고 주장하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또 임시정부의 국새는 위에서 언급한 조경환이 보관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임시로 맡겼는데. 이 사람이 전주에 머물던 조경환을 찾아와 말하길 1.4후퇴 당시 경기도 안성에 사는 친구의 집 지하에 묻었다가 거기를 미군이 폭격하는 바람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게 임시의정원의 문서와 인장은 1946년 창설된 비상국민회의 의장을 맡은 홍진(洪震)의 후손이 보관하였다고 한다.

문서는 1967년, 인장은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손이 2019년에 기증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2. 조선총독부 문서들



조선총독부도 바보가 아니기에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의 목록, 행적, 위치 등을 육군 헌병대와 특별고등경찰등을 통해 수집하고 정리해 문서로 보관해 놓았다. 하지만 이 문서들도 상당량 유실되어 독립운동가 발굴 및 의거 연구에 꽤나 애를 먹고 있다. 총독부 문서들이 사라진 이유도 위와 같다. 바로 한국 전쟁으로 사라진 것. 미군의 폭격, 국군-유엔군과 북한군의 전투, 북한군의 약탈과 방화 때문에 유실되고 만 것이다.

 

영화 영웅에 나오는 게이샤 설희처럼 당시에는 독립운동 조직에서 총독부로 보내는 밀정들이 꽤나 많았는데. 이들은 대외적으론 친일 부역을 하면서 뒤로는 몰래 일제의 기밀을 빼돌리거나 국내 연락책, 자금책과 조직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위의 임시정부 자료가 실종되고, 또 총독부 자료도 사라지고 하다보니, 

이 사람이 어디선 독립운동가라고 하고 어디선 친일파라고 하다보니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어져 진상이 영원히 묻히는 경우도 많다. 

영화 밀정의 모티브가 된 황옥 경부 폭탄사건의 주모자 황옥이 대표적.

 

그 외로 해방 이후 총독부가 일본으로 철수하기 전 자신들이 보유한 문서들을 소각하고 갔는데. 이 과정에서 사라진 문서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3.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군 관련 정보



김좌진, 홍범도, 양세봉, 지청천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1910년대부터 만주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활발하게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일본을 많이 괴롭혔는데. 이때 독립군들은 만주에 거주하던 동포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이 제공한 식량과 숙소, 자금으로 전투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남은 자료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 중국사의 커다란 비극 중 하나인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조선족 자치구를 습격해 이들이 보관하던 자료들을 파괴하면서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자료들이 상당수 소실되고 말았다.

 

4. 월북, 또는 납북된 독립운동가들의 행적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남은 미군정, 이북은 소군정이 들어서면서 김원봉, 박헌영, 허헌, 이강국 등 많은 좌익 독립운동가들이 월북했다. 그리고 김두봉, 최창익, 김무정 등 국외에서 활동하던 좌익 독립운동가들도 남한보단 북한으로 많이 귀국했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여 북한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다.

 

북한 정권 초기의 조선노동당은 김씨 일가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는 현재와 달리 박헌영의 남로당파, 김두봉•김무정의 연안파, 허가이의 소련파 등이 상당한 세력을 보유한채 당내야당 격으로 김일성의 만주파와 김일성의 우군 박금철이 이끄는 갑산파를 견제했다.

 

그러나 1956년에 있었던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등 반 김일성 세력들이 숙청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갑산파마져 1960년대 중후반에 숙청되면서 우리가 아는 현재의 북한과 같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숙청된 이들은 북한 내에서 기록말살을 당하고 말았다.

 

1967년부터 1974년까지 진행된 도서정리사업도 큰 악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북한 정부나 민간에서 보관하던 수많은 서적, 기록, 사료들이 사라졌고. 남은 기록들도 모두 김일성의 행보보다 못하다는(혹부리의 독립운동이래봐야 실상은 마적질과 배신으로 점철된 각종 온갖 만행들이지만)보다 못한 평가절하를 당하고 말았다.

 

또 안재홍, 조소앙, 원세훈, 김규식 등 많은 인사들이 한국 전쟁때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고, 추후 숙청되었다 추정되지만 북한의 폐쇄성 때문에 이들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특유의 폐쇄성과 기록말살이라는 악재들 때문에 북한 인사들의 행적을 알기가 어려워 연구를 위해서는 1990년대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기밀이 해제된 러시아(소련),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의 구 공산권 국가들의 기록, 그리고 8월 종파사건때 북한을 탈출한 연안파와 소련파 인사들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구소련과 중국조차도 저 기형적이고 폐쇄적인 북한 체제에 대해 다 알지못했으며, 탈출한 연안파와 소련파 잔당들도 자신과 관련된 인물이 아니면 기억이 부정확하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 악명높은 기록말살은 21세기에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북한 인사 연구가 힘든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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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영앤리치루 | 작성시간 24.10.23 가슴아픈 역사가 제대로 보존되어있는 것 같지 않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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