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흥미돋]난 당신을 알아버렸고, 당신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요. 이제 내게 남겨진 몰락이 눈 앞에 선합니다.
작성자엔요와요플레작성시간24.10.30조회수1,483 목록 댓글 8 출처 : 여성시대 잠만자고출근
20여 년 전 앤 셀린이 쓴 첫 작품 『공주와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등장인물도 단 두 명뿐이다.
타는 듯이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공주,
그리고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금발의 기사.
기사는 공주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청혼한다.
공주는 기사에게 이렇게 답한다.
[내 방 발코니 밑에서 100일 밤낮을 기다려 준다면, 당신의 사랑을 믿고 결혼해 드리지요.]
기사는 바로 그날부터 공주의 성 앞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공주만을 바라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렇게 99일이 지나고, 이제 공주와 기사 앞에는 단 하룻밤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기사는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대로 터벅터벅 걸어 성 뒤의 깊은 숲으로 사라진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이렇게나 허무한 끝.
그런데 20년 만에 앤 셀린이 다시 펜을 들었다.
『공주와 기사』의 다음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 원고가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 편집자, 코델리아 그레이의 손 안에 들어온 것은 기적이었다.
코델리아는 앤 셀린이란 작가가 이렇게 저를 성가시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말에도 전화번호를 적어달라는 말에도 앤 셀린은 우체국의 인이 찍힌 노란 봉투 안, 하얀 종이로 답장을 전해왔다.
[전 전화번호가 없어요.
이메일 주소도 없습니다.]
[전 집 주소가 없어요.]
존재하기는 하시나요, 작가님?
[다행히 원고를 맡길 곳은 있습니다.
포토벨로 거리 끄트머리에 초록색 간판을 단 골동품 상점이 있어요.
그곳에서 제법 근사한 남자 직원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가 주는 원고를 받으세요.]
“동화 속에서 사는 사람이군.”
출입문을 열자, 문 위쪽에 달린 금색 종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그러나 코델리아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진 것은 작은 종이 내는 귀여운 울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엔 정말이지 겁나게 잘생긴 직원이 있었다.
“코델리아 그레이.”
“어, 그, 네? 제가 코델리아 그레이긴 한데, 음, 그러니까.”
“어떻게 알았냐고요? 빨간 머리에 꽤 예쁜 얼굴의 아가씨가 올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전 리암이에요.”
“리암, 리암이라고요. 아, 전 코델리아 그레이예요.”
“알아요.”
“어떻게요?”
“우리 방금 그 얘기 하지 않았나요?”
아, 네, 그러게 말입니다.
리암은 짙은 색 나무로 만든 작은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비스듬한 사다리꼴 모양의 그 상자는 끽해야 코델리아의 서류가방만 한 크기였다.
“뭐에 쓰는 물건이에요?”
“서책 보관함이에요. 이 안에 책을 집어넣어 보관하는 거죠.”
“사실 이건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예요.”
“코델리아, 그런 거 알아요? 시간을 초월하는 편지함 같은 거요. 힘든 일이 있으면 편지를 써서 이 상자에 넣어봐요. 누군가 답해줄 테니까.”
“꼭 편지를 써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 세실리아보다 먼저 그 애를 찾아야 한다.
야심이 득실득실한 세실리아가 그 애를 먼저 찾는다면 당장 죽여 버리고 말 테니까.]
공주와 기사의 후속편은 뭐 그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40여 페이지의 원고를 읽은 코델리아는 노트를 꺼내 간단한 메모를 적어보았다.
[1. 첫째 딸, 세실리아 공주가 너무 개연성 없이 악녀로 그려진다.
세상에 이렇게 못돼 먹기만 한 여자가 어디 있음? 어쩌다 이렇게 큰 거야?
2. 사라진 사촌 동생이 낳아놓은 아들에게 다시 왕위를 돌려주려 하다니, 아델라이드 왕은 너무 착하다.
현실감 없음.
3. 아치 왕자가 잘생겼다는 묘사는 마음에 든다.
하지만 좀 너무 한량이고 야망이 없는 것이 남자 주인공으로선 실격.
붉은 머리의 아이를 얘가 찾아도 문제임.
제대로 일 처리나 하겠나.
매일 놀기만 하는데.]
코델리아는 일단 원고와 메모를 서책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그날 밤 그녀는 아주 산뜻한 기분으로 잠들었고, 오랜만에 돌아가신 엄마가 나오는 기분 좋은 꿈까지 꾸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날 아침 서책 보관함을 열었을 때 발생했다.
원고가 사라진 것이다!
서책 보관함 안에 들어 있는 건 오로지 빛바랜 종이 한 장뿐이었다.
[이름 모를 침입자님께.
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감히 내 방에 들어와 나의 서책 보관함 안에 이런 서신을 두고 간 겁니까?
세실리아 누님의 인성에 대한 당신의 통찰력 있는 평가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왕족 모독이 가득한 문서를 당장 어머님께 전달했을 겁니다.
대체 어떻게 내 방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으나, 당신의 대범함 하나만큼은 높이 사겠습니다.
내 외모에 대한 상세한 칭찬 역시 고맙군요.
제대로 일 처리도 하지 못하고 매일 놀기만 한다는 평 역시 기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태어난 기쁨을 가장 편히 누리는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귀하의 의견은 어떠신지.
삶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견해 차이와는 별개로 유쾌하게 조롱할 줄 아는 분을 만난 것은 기쁩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눈감고 지나가지요. 그럼 모쪼록 평안히 놀기도 하시며 지내시길.
추신. 개연성 없이 악하기만 하다는 세실리아 누님에 대한 평에는 매우 동의하는 바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컸느냐는 당신의 물음엔 태어났을 때부터 이러했다고 대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적어도 제가 태어난 이래로는(그러니까 다섯 살 때부터) 줄곧 이런 상태였습니다. 일관성 있는 사람이지요?
1314년 연초록 달 여섯 번째 날 화창한 아침에, 아를리 궁에서.
흠 없이 착하기만 한 왕의 아들이자 개연성 없는 악녀의 남동생인 아치 앨버트.]
<책소개>
우연한 기회로 얻은 골동품 서책 보관함, 그곳에 편지를 적어 넣었더니 답장이 돌아왔다.
소설, 『공주와 기사』 속 한심한 조연, 잘생긴 한량 왕자님, 아치 앨버트에게서.
소설 속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게 된 일이 꿈만 같은 코델리아,
자신이 사는 세상 속 미래를 알고 있는 코델리아의 조언이 절실한 아치 왕자,
두 사람이 서책 보관함을 통해 주고받는 편지는 여름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계속되는데…….
—
아치,
그런 적 있으세요?
누군가와 걸어가는데, 그 길에 꽃이 피어나는 거예요.
—
그래서 그 남자랑 했어요?
—
저열한 아치,
정말 저질이시네요, 왕자님.
유감스럽게도 전 처음 만난 남자랑 자기엔 너무 생각이 많은 여자랍니다.
—
자요? 전 키스 말한 건데요.
—
아, 키스요?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원작) - 유폴히
전 플랫폼에서 구입가능!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웹툰) - 티바, 쭈냐
갸는.. 리디북스에서만 볼 수 있다 했슈...
a.k.a 읽씹왕자로 유명한 작품
내 인생작 중 하나.. (종이책 못산게 한이야..)
재밌고 아름다운 작품이니까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원작은 주로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편지로 대화를 나누는 서간체로 이루어져 있으니 서간체 안좋아하는 여시들 참고해줘!
웹툰도 넘 잘나왔어!
『공주와 기사』 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다고 해줘...
희란국 연가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잠자는 바다
페르세포네를 위하여
문제 시, 울면서 수정... 또는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