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잠만자고출근
아래의 금기 사항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하나, 바다 너머에서 너울거리는 하얀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 사흘 동안 외출을 삼간다. 절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계속 보거나 다가가지 않는다.
둘, 바닷가 근처의 성소(聖所)에는 당대의 무당만 출입할 수 있다. 허락 없이 성소에 발을 들여서 입게 되는 모든 피해의 책임 소재는 본인에게 있다.
셋, 양력으로 매년 10월 말일에 벌어지는 제의(祭儀)에는 한 집에서 한 명 이상의 대표자가 참석한다. 외지로 나간 이도 이날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와 있어야 하며, 의식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은 오후 6시 이후 외출을 삼간다.
집에 있는 이들은 모든 창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닫고, 바람에 창문이 심하게 흔들려도 날이 바뀔 때까지 창문을 열지 않는다.
만일 제대로 닫히지 않은 창문을 발견한다면 바로 그 자리를 피해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뒤 불을 전부 끄고 인기척을 없앤다. 문이나 창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와도 자정이 지날 때까지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넷, 모든 부정한 일은 신이 잠든 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신은 인시(寅時)에 잠든다. 인시는 오전 3시부터 오전 5시까지다.
단, 보름달이 뜨거나 달이 없는 밤에는 신이 깨어 있으니 가급적 행동거지를 조심한다.
다섯,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섯, 무슨 일이 있어도 신을 화나게 하지 말라. 당신은 신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
금기 사항은 원래 여섯 개이나 모종의 사건으로 하나가 소실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금기를 어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이게 뭐야.”
재연은 기가 막힌 나머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 몇 년도인데 아직도 이런 허무맹랑한 미신이 통용된단 말인가.
아무리 섬이어도 이건 좀 심한데.
“이모, 이거 저도 지켜야 해요?”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그럼 이모도 이것들을 다 지키시는 거예요?”
“금기도 뭐, 우리 세대는 잘 안 믿어. 마지못해 따르는 거지. 어른들은 정말로 철석같이 믿으시지만.”
“그래도 저 금기만 제외하면 살 만해. TV에 나오는 어촌처럼 막 그렇게 낙후된 곳은 아니거든. 깔끔하고 있을 건 다 있어. 굳이 비유하자면 작은 여의도랄까. 평생 서울에서만 산 너도 크게 불편한 건 없을 거야.”
여의도처럼 번화했는데 미신의 지배를 받는다니.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다.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좋네요.”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새 교복을 다듬으며 재연이 중얼거렸다.
재연은 오늘부터 이 섬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에 가서 전학 수속을 밟는 것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은 이모가 했고 재연은 그냥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었을 뿐이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이 갇혀 있었던 죄수처럼 시끌벅적하게 교실에서 튀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체 모를 굉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지?
바닥에 누가 쓰러져 있었고, 남학생 하나가 그 애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야, 아니꼬우면 너도 나 때려.”
가볍게 툭 말을 내뱉는 입술은 요사스러울 정도로 붉었다.
신발 끄트머리로 동급생인지 후배인지 모를 상대의 머리를 툭툭 칠 때마다 염색을 했는지 회색 머리카락이 가붓하게 흔들렸다.
교복은 마지못해 걸친 수준으로 대충 맨 넥타이는 어깨 뒤로 넘어가 있었으며, 체격은 남자다운데 얼굴은 아주 희었다. 명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해윤.
외모만큼이나 인상적인 이름이었다.
“맞아준다니까, 응?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맞아줄게. 그러니까 때려봐.”
재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철저한 방관자였다.
TV에서나 보던 폭력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데 이 많은 구경꾼들 중에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그저 말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뭐가 그리 두려운지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벌벌 떠는 여학생도 있었다.
쟤가 뭔데? 그래 봤자 똑같은 학생이잖아.
어째서인지 넋이 나가 있는 남자애에게서 반쯤 강탈하다시피 축구공을 빼앗은 재연은 자세를 잡았다.
“너 변태야? 혹시 남한테 맞으면 막 쾌감이 느껴져? 그렇게 맞고 싶으면 내가 대신 때려줄 테니까 이거나 먹어!”
기세 좋게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축구공은 기해윤을 홱 지나쳐서 바닥에 떨어졌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명언을 떠올리며 쓰라린 후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푸하하!”
기해윤이 등을 구부린 채 배를 잡고 박장대소했다.
“아니, 내가 피한 것도 아닌데…… 푸흡, 대체 어떻게 되먹은 운동신경…… 하하!”
그 순간 수업 종이 쳤다. 도망칠 기회였다.
“뭐야, 안 때리게?”
기해윤이 물었다.
재연은 낯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등을 돌렸다.
“내가 왜 네가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 해?”
“하하하!”
“안내문은 봤지?”
할아버지는 재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것부터 물었다.
제일 중요한 일이기라도 한 양.
“오느라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귀찮을 텐데 저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재연이가 다닐 학교에 혹시 그분이 계시니?”
“맞네. 재연이랑 동갑이잖아.”
“아아!”
조금 전까지 평범했던 할머니의 낯빛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젓가락도 내려놓지 않은 재연의 두 손을 덥석 붙잡고 당부했다.
“재연아, 그분과 엮여서는 안 된다. 아예 그분의 눈에 띄지도 마. 그분에게…….”
“그분이 대체 누구예요?”
“금기 사항 두 번째에 있는 ‘성소에는 당대의 무당만 출입할 수 있다.’는 내용 기억나니? 그 무당, 이번 대는 남자니까 박수지. 박수무당할 때 박수. 여하튼 그 무당은 이 섬에서는 삼한 시대의 천군과 다름없는 존재야.”
“설마 그 박수무당이 저랑 동갑이에요? 저와 같은 학교에 다녀요?”
“아니, 무당은 마흔 살도 넘는 아저씨야. 겉보기에는 주름도 하나도 없고 이십 대 같지만. 그리고 무당이라고 해봤자 결국 사람인데 뭐 그리 무섭겠니? 문제는 그 무당이 18년 전에 임신한 어느 여자를 가리키며 한 예언이야. 저 안에 해신(海神)이 있다. 저 여인은 장차 신을 낳을 것이다.”
재연은 이모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 네가 내일부터 다니게 될 학교에 신으로 지목된 그 아이가 있단다. 이름이 아마 기해…… 뭐였더라? 기해윤? 맞아, 기해윤.”
“신앙을 맹신하는 이 섬의 주민들에게 그 애는 살아있는 신이야.”
수업이 끝난 뒤 첫날인데 학교는 적응할 만한지에 대한 상담을 나누고 나서 밖으로 나오니 기해윤이 있었다.
“너 이 섬의 신이라며.”
“아, 그 개떡 같은 소리는 또 누가 한 거래.”
“너 비나 바람 같은 거 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아니.”
“거친 파도를 잠잠하게 만드는 건?”
“되겠냐?”
“그럼 신 아니네. 너처럼 뱃사람들을 위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무능한 해신이 어디 있어?”
심드렁한 재연의 반문에 기해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내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떡볶이 먹을래? 내가 살게.”
“난 떡볶이에 튀김이랑 순대 안 곁들여 먹는 사람과는 겸상 안 해.”
“아, 진짜. 너 정말 골 때린다.”
허리를 새우처럼 접고 기해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치는 시늉을 하며 그가 말했다.
“이재연.”
“이제 안면 텄으니까 이제부터는 이름으로 부른다, 전학생?”
“그게 그 애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이야기를 마친 재연은 건조한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한 컵 마셨다. 수화기 너머에서 조금 느릿하게 남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군요.
상대는 정신건강의학 전문 의사,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였다.
그 섬에서 겪었던 일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피곤하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재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목이 아프긴 했지만, 그보다 말하고 싶은 충동이 더 컸다.
“계속 얘기할래요.”
<책소개>
“신앙을 맹신하는 이 섬의 주민들에게 그 애는 살아있는 신이야.”
가세가 기울어 미술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재연.
단념하려던 도중,
어머니의 고향인 섬 ‘기수도’에 가면 입시 미술에 필요한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전학을 결심한다.
아무리 검색해도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던 으스스한 섬.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발견한 것은 마치 미신과도 같은 금기 여섯 가지와 잿빛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기해윤.
외모만큼이나 인상적인 이름.
해윤과 평범한 또래처럼 티격태격하던 재연은 해윤이 기수도의 ‘신’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너 이 섬의 신이라며.”
“아, 그 개떡 같은 소리는 또 누가 한 거래.”
신이라는 말 한마디에 평생을 섬에서 속박받던 해윤.
재연은 기꺼이 해윤을 끌어내주려 하지만,
어쩐지 자꾸 기수도의 금기만 어기게 된다.
기수도에서 재연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잠자는 바다 - 이정운
전 플랫폼에서 구입가능!(아마도..)
이북은 19금인데 수위 높은거 안 좋아하는 여시들은 전연령 플랫폼에서 15금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 참고하슈,,
요한티테까지만 쓰고 힘들어서 소설글 안쓰려고 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글을 쓰고 있더라고..
신선한 소재의 로설을 읽어보고 싶은 여시들한테 추천할게!
키워드는.. 스릴러+박수무당+금기+무속신앙+오컬트+하이틴+집착+로맨스+판타지..?
(몰러..)
조금 으스스하니까
쫄보 여시들은 낮에 불키고 보자😇
오늘 같이 날씨 흐린날 읽으면 더 재밌겠다😋
희란국 연가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페르세포네를 위하여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누가 도로시를 죽였을까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절벽에 뜬 달
사마귀가 친구에게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메리 사이코
문제 시, 울면서 수정할까.. 삭제할까..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콘센트줄 작성시간 21.05.29 오ㅜ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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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목시플 작성시간 21.05.29 와 소재 진짜좋다 좋은 책 소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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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져 작성시간 21.05.29 진지하게 읽다가 주인공 이름이 나랑 똑같아서 소름 돋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신기술로 각자 자기 이름 나오는건가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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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쭈글죠르디 작성시간 21.05.29 헐 나중에…꼭 읽어본다 여시 제발 글 삭제 말아줘…글 적어줘서 고마워 진짜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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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젬지보이 작성시간 21.08.07 잠바다 개재밌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외전 나왔으면 좋겠지만 절대 안나올거같고 그래서 좋기도한 ㅠㅠㅠ 오랜만에 재탕해야겠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