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단국대학교는 아랍어과를 신설할 목적으로
현지인 교수를 초빙했다
필리핀인 아버지와 레바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무하마드 깐수.
그는 1984년에 한국에 들어와 연대 한국어 학당을 수료하고
단대에서 박사과정을 딴 후 단국대 사학과에 교수 임용이 되었다.
그는 국내 문명 교류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교양 역사 프로 고정 자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신문 사설 등저술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아랍어, 필리핀어, 한국어, 영어 등
7개국어를 할 줄 알았던 그는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매주 금요일마다 기도를 드렸다.
성품도 선량하여 학생들에 인기있었고
a+폭격기, 간디 교수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던 96년 12월
안기부에서 무하마드 깐수를 잡아가게 되는데
죄명은 간첩혐의였다
그의 나이,이름 국적, 종교, 외국어 능력, 기혼 여부
모든것이 거짓이었던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조선족 출신 '정수일'로 베이징대를 수석 졸업하고
카이로 대학교로 유학을 가 모로코 중국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을 하다가 민족주의 뽕을 맞고
조국통일에 기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북한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는 7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실제로 그는 조선어와 한국어를 포함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아랍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마인어, 필리핀어
총 13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의심을 받을까봐 7개국어로 줄여 말했다 한다.
그의 위장은 아내조차 눈치채지 못했다고 할정도로 철저하였는데
잠꼬대마저 아랍어로 했다고 한다.
이국적인 외모 덕분에 아무도 그를 조선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반면 그가 북한에 보낸 정보들은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없었는데
대부분 아랍 역사 및 연구 관련 정보였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이딴걸 뭐하러 보내냐고 짜증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러한 점과 그동안의 연구 성과 등을 감안받아
12년형을 받고 광복절 특사로 4년만에 출소하게 된다.
출소 후에는 문명교류학과 이슬람권 역사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으며
저서 활동도 꾸준히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