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x.com/nannyoun/status/1793977619458969843
1792년 만인소 올린다고 안동에서 서울 올라간 유생들 얘기 보다가 빵 터짐. 하회마을에서 서울 성균관 앞까지 가는데 걸어서 며칠 걸렸을 것 같나요
— 적츄 (@nannyoun) May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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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입니다.(심지어 죽령도 하루만에 넘음)
조선의 선비는 다리힘 없음 못 한다. 🤣🤣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이상호, 푸른역사) pic.twitter.com/iOlpr2ewrB
걸어서 4박 5일
4/19 안동 하회마을 출발
4/20 1박 노자리(현재 경북 영주 노좌리)
4/21 2박 장후점(현재 충북 단성 장회나루)
4/22 3박 장우원(현재 경기 이천 장호원)
4/23 4박 비가점(현재 경기 광주 곤지암 근처)
4/24 한양 성균관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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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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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본인 닉네임. 작성시간 26.05.09 네? 선비가 의외로 튼튼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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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본인 닉네임. 작성시간 26.05.09 이미지에 제공된 경로는 조선 후기 문신 **학서(鶴棲) 류이좌(柳宜佐, 1763~1837)**가 1792년(정조 16년) '영남 만인소' 사건 당시 안동 하회마을에서 한양 성균관까지 이동한 실제 기록에 근거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세부 날짜와 숙박 지점에 대해서는 학계의 고증과 기록(류이좌의 행장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여정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 역사적 배경
1792년 4월, 영남 유생들이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청하며 올린 **'영남 만인소'**에 참여하기 위해 류이좌가 급히 상경하던 상황입니다. 당시 그는 안동에서 한양까지 약 500리(약 200km) 길을 매우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진짜네 -
답댓글 작성자(본인 닉네임. 작성시간 26.05.09 2. '이봉주'급은 아니지만, '말'을 탔을 가능성
이게 핵심입니다. 류이좌가 혼자서 봇짐 메고 터덜터덜 걸어간 게 아닙니다.
승마: 명문가 선비가 급한 일로 상경할 때는 직접 말을 타거나, 최소한 하인을 대동하고 짐을 맡겼습니다. 말이 있으면 이동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체력 소모가 적습니다.
역참 제도: 당시 조선에는 주요 간선도로(영남대로)마다 역참이 있어 말을 갈아타거나 쉴 수 있는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
작성자봄햇쌀 작성시간 26.05.09 와 저때 호랑이도 있던 시절 아님? 대단하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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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밤E 작성시간 26.05.10 개빡치셨나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