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알고보면 좀 느낌이 다른 정창손의 개돼지 발언.TXT

작성자딸기치즈케이크|작성시간26.06.17|조회수5,983 목록 댓글 20

출처: https://www.dmitory.com/issue/415178028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를 할때

다른 신하들에게는 체직이나 그저 반박 수준만을 했으면서 정창손은 하루 감옥에 가두고 폭언을 내뿜는 등 분노한건 다들 아는 이야기일 거임

 

아니 어떻게 백성은 개돼지니 교육해봤자 소용없다는 발언을?? 유학자가 할 수 있지?? 

 

이게 현대인의 대부분의 반응일 텐데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는 좀 일부 이해되는 맥락이 있음

 

 

 

 

 

 

 

 

 

세종 10년 진주에서 김화라는 자가 자신의 부친을 살해하는 초대형 사건이 일어난다

 

지금와도 언론을 도배할 일인데 당시 유학 국가에서 어떤 일일까? 심지어 이때는 호족도 정리 안 되고 북방도 개척에 이른 상황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는 상황에서 이런 초대형 패륜 범죄의 등장은 군주/조정의 실덕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큰 사안이었음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나??

 

당연히 조정은 백성을 교화하고자 하고자 논의를 했다

 

우리 세종대왕님도 당연히 극도로 분노해서 빠져서 이들을 개심케할  방책을 갈구했는데 .

 

 

 

 

 

 

 

 

그 방책이란게 바로 세종의 역대 정책 중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대차게 망한 몇 안 되는 건인 삼강행실도 편찬이었다.

 

역대 효자 충신 열녀를 뽑아 만든 서책을 지방에 나눠주어서 백성들에게 읽히게했다는 말이었는데

 

 

 

 

 

 

자 여기서 문제를 알아보자.

 

당시에 관아에 삼강행실도를 비치해놓고 백성들에게 대여해준다고 해서 정말로 교화가 될까?

 

1. 가장 중요한 것. 대부분의 백성들은 문맹이었음. 이미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은 선비인데 이들은 이미 패륜살인을 걱정할 위치가 아님

 

2. 책을 빌리는 건 자율적인 의사인데 이걸 누가 권장한단 말임? 이렇게 빌려서 읽을 정도의 열성을 가진 이가 패륜아일까? 그리고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책을 빌리고 읽을 짬이 있을까? 

 

3. 이마저 지방 관아까지 내려올 책의 권수도 부족해서 빵꾸난 데가 많았음

 

 

 

 

다 떠나서 생각하자

 

동사무소에 한자로 된 도덕 교과서를 배급했다고 중범죄율이 떨어질까? 

 

하면 당연히 실무진도 그렇고 이게 다들 실용성 없는 정책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정권 초기에 저런 유학적인 행실 장려하는 서책 만드는 건 국책으로 필요한 산업이긴하니...동조하긴 했다. 

 

하지만 웬걸? 유학적으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군인 세종대왕님께서는 정말로 서책과 학문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싶어하셨으니.... 

 

꽤나 규모를 크게 벌여 민간까지 삼강행실도를 보급하려 했다. 당시 북벌로 거의 구멍 뚫린 둑 마냥 돈이 빠져나가고 당시 종이와 서적의 값이 천금같던 시기. 아직 중요한 국책 사업도 미진하였고 지방까지 조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던 시기.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닌데. 다른 진짜진짜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들이 있지 않습니까 전하?'

 

이게 당시 신하들의 생각이었음

 

 

 

 

 

물론 이 분이 누구심?

 

백성들을 교화하고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는 것에 진심이었던 성군이심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분이 유학적으로 거의 완성형에 가까웠던 군주라 보면 된다 

 

유교적 성군, 인군이 학문을 통한 교화를 포기한다? 이건 말 안된다 

 

삼강행실도 편찬을 대대적으로 밀어주었고 결과는 망했고........ 

 

이건 사실 세종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으니 

 

이 사건 일이년 전부터 훈민정음 창제가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건으로 더욱 더 세종의 훈민정음 창작 열의가 불타오르게 된 건 아마 안 봐도 추측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편찬될 최초의 서적으로 삼강행실도를 점찍었다는 것도 꽤나 의미심장한 일이고

 

정말 세종은 진심으로, 글모르는 백성들에게 서책을 보급하여 이들에게 윤리를 알게 하고 깨우치게 하겠다는 마음이었고

 

이는 유교 국가 군주에게 숙명이자 성의와도 같은 일이었음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1. 가장 중요한 것. 대부분의 백성들은 문맹이었음. 이미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은 선비인데 이들은 이미 패륜살인을 걱정할 위치가 아님

 

2. 책을 빌리는 건 자율적인 의사인데 이걸 누가 권장한단 말임? 이렇게 빌려서 읽을 정도의 열성을 가진 이가 패륜아일까? 그리고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책을 빌리고 읽을 짬이 있을까? 

 

3. 이마저 지방 관아까지 내려올 책의 권수도 부족해서 빵꾸난 데가 많았음

 

 

 

여기서 1이 해결되었다고 2, 3이 해결이 안 될까?

 

이 시대가 서책이 금값이었던 시대라는 걸 알아야 함 

삼강행실도 편찬 보급이 국책으로 밀어야 한 사업인데 이걸 한 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또 하라니?

 

실무진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임

 

동사무소에 비치 된 도덕교과서가 한자가 아니로 한글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충격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범죄율을 떨어트리거나 할 효과는 거의 없으리란 건 그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훈민정음에 대해서 반대하는 신하중에서 유독 그 사실에 격렬히 반대한 사람이 많았다 

 

개중 하나가 이 정창손이었는데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뒤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뒤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그걸 생각하면 이 발언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이 말인 즉슨 흔히 우리들에게 알려져서 정창성 저 볍신 새끼!! 를 부르짖게 만든 "백성들은 사대부와 달리 미개해서 교화여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니, 도덕 교과서가 한글이든 한자든 쌩 양아치같은 놈들 앞에서는 소귀에 경 읽기라니깐요? 

 

저때도 소용없다는 걸 다들 알았는데 이번이 언문이라고 크게 뭐가 달라진다는 건가? 김위같은 놈들이 삼강행실도가 언문인지 한자인지 뭐가 중요하겠음? 이거 ㄹㅇ 쓸모 없는 정책임 

이라 한 말에 가깝다

 

.......사실 이게 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할 만한 대답이고 실무진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긴 함

 

세종대왕의 답변인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라는 말이 생각해보면 현실성이 부족한 발언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나라가 어떤 나라겠음?

 

ㅇㅇ 유학국가다 그리고 백성 교화는 공자때부터 제자들이 ㄹㅇ 오지산간 돌아다니면서 죽어가면서 이행한 유학자들의 숙명같은 일이었음 

 

비록 정창손의 말이 방법론을 지적한 것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전에 실패한 정책을 언문으로 바꾸어보았자 쓸모가 있나?)

 

상소에 올리는 것이다보니 가타부타 말을 자르고, 첨언을 단 게 문제가 되어 세종대왕을 격노시키고야 만다. 

 

만약 정창손이 교화를 시키려면 언문으로 반포하는 것보다는 다른 실질적인 정책이 낫다, 삼강행실도 편찬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 이 정도 선만 말했어도 그렇게 세종대왕을 격노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을.

 

게다가 사실 이 삼강행실도 정책이 좀 ? 스러워서 그렇지(인쇄술의 발달이 왜 문명의 도약에 절대적으로 중요한지에 대한 방증이지)

 

"도덕교과서의 접근성을 쉽게 하면 계몽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라는 원론적인 말이 틀린 게 아니고

 

"도덕 교육은 사람의 심성을 함양하는데 중요하다"

 

라는 말도 틀린 게 아니다 오히려 현대 교육의 궁극적은 목적은 이런 것에 있으니까

 

단지 이게 삼강행실도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면.......??? 한 게 사실이고 그 책 내용도 좀 극단적인 부분이 많은데다가 일화 중심이라 인성 교육으로서의 기능은 떨어지는 편이긴 했음

 

그치만  이 삼강행실도는 '백성 교화'라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에 너무나도 잘 맞는 정책이었고 

 

또 여기서 정창손의 첨언이 세종대왕의 이 훈민정음 창제 목적, 유교 군주로서의 인생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렸기에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용속(庸俗)한 선비로다!"

 

대왕님께서도 이정도로 분노하시면서 하옥까지 명한 것

 

 

 

 

결국 세종은 옳았고 정창손을 틀렸지만

 

결과를 알고 있는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과 당대의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 생각된다 생각되는 일

 

유학자로서 정창손이 할 수 없는 말을 한 것도 맞고 

 

실제로 현실에서도 '일진 걔네는 교화의 여지가 없어요? 뭔 정책이야' 이런 정치인이 나온다면 개까일 게 맞는 소리지만 

 

맥락이 이렇다는 건 말해주고 싶었음

 

물론 그 뒤 행적까지는 변호할 생각은 없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스님되기 | 작성시간 26.06.18 ㅋㅋㅋㅋㅋ완전 이해돼 ㅋㅋㅋ 내 상사가 저러자고 했으면 나도 정창손처럼 말했겠닼ㅋㅋㅋㅋㅋㅋ
  • 작성자hxhdbd | 작성시간 26.06.18 와 넘 흥미돋 글 진짜 재밌다
  • 작성자침착해 | 작성시간 26.06.18 오히려 세종대왕님을 더 존경하게됨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사람의 가능성을 믿은거잖아ㅠㅠ
  • 작성자다소 친절한편 | 작성시간 26.06.18 넘 재밋다 이런거
  • 작성자왁구와구왁 | 작성시간 26.06.18 정창손 입장도 실무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세종대왕 정책은.. 정말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공한 업적이긴 해. 당시에 실효성을 느끼기는 어렵고ㅜ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