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10170536934
서울 중심에 있는 경복궁은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인이라면 친구들과, 연인과, 부모님과 평생에 한 번쯤은 가게 되는데요,
(아, 연인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 쓸만한 경복궁 관련 잡지식들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방문 시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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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복궁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5호선 광화문역으로
위 지도에서 보이듯, 경복궁 근처 지하철역은 2개가 있습니다.
5호선 광화문역, 3호선 경복궁역이죠.
3호선 경복궁역은 지하 통로를 통해 경복궁 내의 국립고궁박물관 쪽으로 바로 나올 수 있고,
(5번 출구 기준)
5호선 광화문역은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내린 뒤 걸어와야 합니다.
(9번 출구 기준)
그런데 왜 광화문역을 이용하라고 말하냐고요?
경복궁을 진짜 제대로 느끼면서 시작할 수 있거든요.
건축에는 보통 시퀀스(Sequence)라는 것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차례대로 이어지는 특정 공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화문역은 '육조거리'라는 광화문 고유의 시퀀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은 조선시대와 판이하게 달라지긴 했지만,
광화문광장을 쭉 걸으며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동상을 보고,
바로 윗 사진처럼 광화문과 북악산이 겹치는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 때의 풍경은 조선시대(흥선대원군 시기 기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듭니다.
물론 체력이 부족하시다거나, 더 편하게 가고 싶으신 분은 경복궁역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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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화문 관련 잡지식들
1) 위 사진의 광화문 앞으로 쭉 뻗은 길은 '월대'라고 합니다. 권위를 드러내는 장치로써 사용되고,
수문장 교대식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죠.
2) 월대는 2023년 복원된 것으로, 원래 있던 돌과 새 돌을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돌 색깔이 제각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3) 위 사진을 보시면 계단 양옆에 조각상이 있죠. 이걸 '서수상'이라고 하는데,
복원 전에는 이렇게 삼성문화재단 소유의 용인 호암미술관 정원에 있었습니다.
4) 광화문의 출입문 위를 보시면, 돌로 된 무언가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걸 '석누조'라고 부릅니다.
돌 사이에 빗물이 들어가 문이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배수구이죠.
광화문 남쪽 석누조는 위 사진처럼 용 모양이고,
광화문 북쪽 석누조는 연꽃 모양입니다.
5) 위 사진처럼, 광화문의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입니다.
이를 '묵칠금자'라 부르고, 2023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참고로 이건 그냥 금색으로 칠한 게 아니라,
동판을 글자 모양으로 잘라 붙이고 그 위에 금칠을 한 것입니다.
6) 광화문 너머로 등장하는 모든 문은 문이 3개 달린 삼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천자국은 5개의 문을 달고, 제후국은 3개의 문을 달았습니다.
다만, 대한제국이 선포된 뒤에도 덕수궁, 풍경궁, 환구단을 보면 딱히 문의 수를 늘리진 않았습니다.
7) 삼문 중 가운데 문은 왕이, 양쪽은 신하들이 다닙니다.
'양반'은 무반(武班)과 문반(文班)으로 나뉘는데,
무반은 서반(西班), 문반은 동반(東班)으로도 불립니다.
그렇기에 동쪽 문으로는 문관들이, 서쪽 문으로는 무관들이 출입했습니다.
https://x.com/Woori_Geonchuk/status/2083481390176452846?s=20
8) 다들 아시다시피 경복궁은 임진왜란 중 파괴된 후 고종 대에 재건되었는데,
조선 전기의 광화문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과 다르게 문의 모양, 지붕의 구조, 단청, 옆 담장 등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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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복궁, 어디부터 어디까지 봐야 하나
경복궁은 넓습니다.
그 넓이에 비해 "아니 왜 이렇게 빈 땅이 많지?" 라고 느껴지신다면
원래는 그 빈 땅에도 건물이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렇게 줄어들었던 것을, 현재 수준까지 복원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흥복전 단청 작업 중 & 영훈당 복원 중)
그렇기에 순수 대지면적으로는 자금성의 70% 정도 되는 경복궁을 다 보려면
우리의 다리가 고생을 좀 해야 합니다.
거기에 덥기까지 하다? 그럼 더욱 고생하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그려본 지도입니다.
빨간색 선 안 : 필수 코스.
광화문 -> 근정전 -> 강녕전 -> 교태전 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시간이 없더라도 여기 정도는 봐야 "경복궁 가봤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황색 선 안 : 빨강만큼 중요한 코스.
경회루와 향원정이 낀 코스로, 경복궁에서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장소들입니다.
파란색 선 안 : 다리가 좀 튼튼하신가 봐요? 코스.
계조당, 자경전을 포함한 코스와 향원정 뒤편 집옥재 & 건청궁을 낀 코스입니다.
보면 좋지만, 힘에 부친다면 굳이 보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보라색 선 안 : 이야 독하다 독해 코스.
경복궁 서북쪽 태원전 권역과, 국립민속박물관을 낀 코스입니다.
여긴 사실 안 가셔도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태원전 쪽은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조용히 데이트 하기에는 좋습니다.
음.... 솔로라면 고독하게 산책하기 좋습니다.
초록색 원 : 국립고궁박물관
여기를 따로 해 둔 이유는, 이 박물관도 꽤 커서,
시간 되실 때 따로 오는 걸 권해드리기 때문에 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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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흥례문 권역 관련 잡지식들
1) 흥례문은 광화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문입니다.
2) 흥례문은 조선총독부(중앙청으로도 불림) 건립을 위해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습니다.
3) 흥례문 안으로 들어서면, 위 사진처럼 다리가 보입니다. 이 다리가 영제교입니다.
(위 사진의 설명처럼 금천을 가로지른다 하여 보통명사로는 '금천교'라 부릅니다)
4) 영제교 밑은 '금천'이라 불리는(고유명사가 아니라 궁궐 안을 가로지르는 천을 뜻하는 보통명사입니다)
물이 흘렀는데, 이 하천은 '대은암천'으로, 경복궁을 빠져나가 삼청동천을 통해 청계천으로 흘러갔습니다.
원래는 물이 흘러야 정상이나, 지금은 메말라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제교 주변을 제외하고는 아직 금천 복원이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뒤 영제교 자체는 복원했으나,
금천까지 전부 복원하려면 청와대 자리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다시금 복원해야 하니...
더 복원하지 못하고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처럼 물이 차 있는 금천을 보고 싶으시면, 비가 온 다음날에 가시면 됩니다.
위 사진처럼 물이 덜 빠진 금천이 맞이해줄 겁니다.
5) 영제교 양옆은 '천록'이라 불리는 상상 속 동물 4마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천록은 요사스럽고 나쁜 것을 쫓는 동물인데,
그중에서 영제교 서북쪽의 천록은 혼자 '메롱'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조각했는지는 이유를 모릅니다.
석공의 이스터에그라고 생각합시다.
6) 영제교를 건너 근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왼쪽을 보시면, 문과 건물이 있습니다.
왼쪽의 문은 유화문이고, 오른쪽의 건물은 기별청입니다.
7) 경복궁 중건 당시엔 유화문으로 들어가면 궐내각사(궁궐 내 관청)가 나왔지만,
궐내각사의 건물들이 헐리고 사라져서 유화문도 닫혀있습니다.
8) 기별청은 조선시대에 '조보'라 불리는 관보(신문)를 발행하던 기관입니다.
조보를 적은 종이는 기별지라 불렀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라는 속담의 어원이 바로 이 기별청과 기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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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정전 권역 관련 잡지식들
1) 흥례문부터 시작해서 근정전까지, 건물과 문 주위를 둘러싼 이 복도는 '행각'이라 부릅니다.
"왜 이렇게 텅텅 비었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원래는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다 방으로 둘러져 있었습니다.
향실, 예문관, 방색 등등 수많은 관청들이 입주해 있었죠.
사라진 이유는 역시나, 일제강점기에 다 헐렸기 때문입니다.
2) 근정전 행각 동쪽과 서쪽에 무언가 튀어나온 것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이렇게 똑같이 생긴 누각이 행각 동쪽과 서쪽에 뚫려 있습니다.
이 누각은 각각 '융무루, '융문루'라 불립니다.
위에서 뭐라고 했죠? 무반은 서쪽, 문반은 동쪽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여기서도 융무루는 서쪽에, 융문루는 동쪽에 있습니다.
안쪽에서 보시면 출입용 계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올라가실 수는 없습니다.
https://blog.naver.com/bang-atgan/224323513114
3) 근정전도 광화문처럼 조선 전기의 모습은 지금과 매우 달랐는데,
실록에 따르면 위 그림처럼 청기와를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4) 근정전의 마당은 '박석'이라 불리는 돌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 박석은 평평하기보단 울퉁불퉁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흔히 '박석의 효능'이라 하여 햇빛의 난반사를 일으켜 눈부심을 방지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설에 대해서는 좀 부정적인 편으로,
그냥 '이게 예뻐 보여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 박석 자체는 '매우 귀한 돌'로,
강화도 옆 석모도에서 나는 고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정되며,
현재는 채취되지 않고 있기에 정말 원본 박석은 여기와 종묘 말고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5) 근정전 등 중요 건물에는 이렇게 지붕 아래에 망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보수공사 중이거나 현대의 물건이 아니라,
튀어나온 부분에 새들이 앉아서 새똥에 취약한 목조건축이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둘렀던 '부시' 라는 물건입니다. 조지고 부시는 그분 아님
부시를 두르기 애매한 건물은 이렇게 '오지창'이라는 철창을 박아서
새들이 앉지 못하게 했습니다.
6) 사극에서 '나랏일' 하는 모습을 그리면 대개 이런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근정전같은 궁의 정전(중심 건물)에서 회의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백관이 정전에서 '일어서서' 정사를 논하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창덕궁 희정당의 모습)
보통은 국사를 논하는 편전 등의 건물에서 회의와 집무를 보았습니다.
그럼 근정전은 언제 쓰냐고요?
바로 행사용입니다.
현대의 청와대도 본관은 국빈 환영 등 예식용으로 많이 쓰고,
실무는 여민관 같은 건물에서 주로 진행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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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번외
지금 있는 경복궁은 고종 대에 중건된 경복궁을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중건된 경복궁 역시 오래 쓰이지 못했고,
명성황후가 명성/황후가 되어버린 을미사변 이후엔 덕수궁이 중심이 되어버렸으며...
경복궁은 일제에 의해 훼철되는 결말을 맞습니다.
그러니까 일행과 함께 경복궁을 보러 갔는데
"가슴이 너무 아리고 눈물이 주륵주륵 떨어진다"라고 한다?
"전생에 공주 아니었을까"라고 한다?
"연표를 봤을 때 그랬을 리가 없다"
"창덕궁이었으면 이해라도 하는데 여기서 그랬을 리가 없다"
라고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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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경복궁 잡지식은 2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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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착하게 살게요 제발 로또한번만 작성시간 26.08.05 재밌다...가져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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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내림올림반올림좌우 작성시간 26.08.05 후 아주 일상적으로 혐일하게 되네ㅜ 얼마나 멋졌을까 자금성의 70프로나 되는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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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몽인 작성시간 26.08.05 시핥 일혐 충전
경복궁 나 죽기 전까지 얼만큼 복원될까 너무 궁금해 -
작성자내가쓴글왜검색안되냐 작성시간 26.08.05 광화문 경복궁 진짜 양의 기운 낭낭해.. 갈때마다 기분 좋고 국뽕 차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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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민트쵸코칩콰삭킹 작성시간 26.08.13 new
재밋다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