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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성질로 번역되는 티배깅은
게임에서 승리했을 때 뒤진 새끼 한 때
최대한의 능욕(머리에 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는
게이머라면 당연히 갖춰야할 기본 소양이다
근데 이걸 국가 단위로 갈긴 사건이 있으니
일본에는 민속 종교인 신토(神道)라는 게 있다
그리고 이 신토의 신들을 모시는 것이 신사(神社)다
현재 일본에는 대충 16만개 이상의 신사가 존재하는데
이중 일본 황실과 관련된 신을 모시는 신사는
일반 신사보다 격이 높은 신궁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아니지만 1945년 전까지는
황실 허가 없이는 "신궁" 칭호를 붙일 수 없었을 지경
근데 여기서 이 신궁보다 한 급수 더 높은 것이 등장하니
바로 칙제사이다
천황의 대리자인 칙사가 직접 예물을 바치는 신사로
앞서 말한 16만 개의 신사 중 칙제사는 오직 16곳만 존재하는데
이 중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야스쿠니 신사도
포함이 되어있다
※ 일본 신사 최고 존엄인 이세 신궁은 제외
일본 제국 시절, ㅈ본 이새ㄲ들은 점령한 땅에도 신사를 세우는데
한반도에만 평양, 인천, 대구, 부여 등 수십개의 신사를 박아둔다
그리고 신궁 역시 조선, 대만, 만주 등에도 몇 군데가 있긴 했는데
대표적으로 대만신궁, 관동신궁 등이 있다
그러나 칙제사는 일본에 16개
그리고 식민지에는 단 한 곳 밖에 없었다
설명을 이 정도 했으며 대충 눈치 깔 수준인데
바로 경성(서울)의 조선신궁이다
당시 남산에 위치했던 조선신궁은
일본 본토 밖에 있던 유일한 칙제사이자
일본 제국 전체 신토 시설 중 최상위 대우를 받던 곳
사실상 일본 본토에서도 이세 신궁 빼면
조선신궁보다 높은 신사가 없었을 정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전국 신직회는 식민지 조선에
신토를 정착시켜 조선인을 빠르게 동화시키려고 했기에
일본 황실의 황조신인 아마테라스와
메이지 천황을 신사의 주신으로 모시기로 결정
당연히 일본의 최고신 + 인물을 모시니
조선신궁의 위상은 하늘 높이 치솟는다
※ 원래 메이지 천황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는데
1912년에 뒤지면서 기왕 이렇게 된거 합사하기로 결정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상상도)
그러나 문제는 신토가 조선인들에게 퍼지기엔
조선인들의 신앙체계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고
무엇보다 당시 개신교와 천도교(천주교아님)가
조선 전체에 널리 퍼져버린 상황
당연히 아무리 최고 등급의 신사를 박아놔도
약발이 1도 안먹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기에 조선신사 담당자들은 조선인들의
신토 흡수를 위해 온갖 똥꼬쇼를 벌이는데
근데 10덕의 나라 아니랄까봐
점점 이 지ㄹ에 몰입하는 육수들이 등장하니
이제 밑에 나올 주장은 실제로 당시
신사 관련자들이 주장한 내용이다
종교적으로 내선일체를 하려면
조선인들도 인정할만한 인물을 신사에 합사시켜야 함
그리기에 단군이랑 이성계도 함께 모시는게 어떨까?
뭔 소리를 하는거임?
조선신궁은 오직 조선의 시조신인 단군만 모셔야 함!
물론 신사 양식도 조선 전통대로, 음악도 조선 음악 써야됨!!
※ 신토학자 오가사와라 쇼조의 주장
근데 굳이 시조신이 단군일 필요 있음?
그냥 한반도 역대 건국자들을 합체시켜서
국혼신이라는 이름으로 봉안하는게 어떰?
※ 실제 조선신궁의 초대 궁사(주지)인 다카마쓰 시로의 주장
참고로 이양반은 단군은 진위가 불분명하다면서
아마테라스는 틀림없는 실체라는 개드립을 친다
생각해보니 전승에 따르면 스사노오(일본신화 네임드 신)가
사실 단군인 거 아님??
즉 스사노오 모시면 그게 내선일체다 이말이야~~
※ 실제 신화에서 스나노오는 신라의 소시모리로 갔다가
마음에 안든다고 일본 이즈모로 빤쓰런 친다
소시모리는 현재 거창의 우두산 or 경주(서라벌)로 대충 추정됨
참고로 스사노오의 신라 강림을 진지하게 믿던
일부 육수들은 진짜로 스사노오가 강림한 곳으로 추정된
춘천의 우두산에 기어코 강원신사를 세우려다가
조선인들을 자극시킨다는 이유로 총독부에서 거부때리자
근처의 봉의산에 강원신사를 지어서
스사노오를 합사시킨다
당연히 돌아가는 꼴을 본 총독부가 바로 개입해서
육수들의 머리를 한땀한땀 깨놓는데
의외로 총독부는 "조선인에겐 신과 신사의 관념이 없어서 합사할 신격이 없음"
이라는 꽤 합리적인 결론을 내놓으며
조선신궁은 종교시설이 아닌 황국신민의 문화로 규정
그 결과 단군은 고사하고 국혼신도 신사에 합사하지 않는다
암튼 한양도성 일부를 크게 훼손하면서 공사를 강행한 결과
1925년, 메이지 천황의 검이 신궁에 도착하면서
조선신궁이 최종적으로 완공된다
이 때 진좌제를 거행할 때 경성 전역에 임시 공휴일을 선포하고
조선인들도 와서 보게했는데, 당연히 조선인들 반응은
무슨 롯데월드 퍼레이드 보듯이 봤다고ㅋㅋㅋㅋ
암튼 조선총독도 참배하고, 유료로 판매해야하는
팜플렛도 무료로 조선 아이들에게 돌리며
심지어 의무적으로 참배하라는 훈령까지 발표했음에도
조선인들의 반응은 이뭔씹...
종교도 존나 이질적인데, 무엇보다 건물 위엄 세운다고
남산 중턱에 세워버려서, 올라가기 ㅈ나 빡셌기 때문ㅋㅋㅋㅋ
그러던 중 1945년
정진인(Truman)의 짧고 굵직한 폭탄 두발로
奀 본은 그대로 패망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한반도 내에 있던 신사들은
진짜 奀 됨을 직감한다
광복 바로 다음날인 8월 16일
조선신궁의 궁사(주지)인 다케시마 요시오는
한반도 각 신사, 신궁들에게 저마다 신령을 돌려보내는
승신식, 승천식을 거행하고
남은 신체(예물)은 일본으로 가져가거나
조선인의 손에 닿지 않는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전달한다
일단 조선신궁이나 경성, 인천, 대구 신사 같은
큰 신사들은 얼추 승신식을 마치고 예물을 태웠지만
소도시의 신사, 특히 38도선 이북의 경우
진짜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나버렸는데
평양 신사의 경우 8월 15일 밤에 평양 시민들이 불태워버렸고
한반도 각지의 신사들은 조선인들에 의해 전부 박살나버린다
1948년 조선신궁 참배로에 눈을 깔아 스키장으로 만들어버린 한국 정부
아무튼 한반도 내 신사의 본산에 해당하는 조선신궁의 경우
조선인들이 박살내려고 아주 벼르고 있었는데
약삭빠른 새끼들이 미군정에게 자진 철거하겠다고 신고하고
10월 7일 주요 건물들을 소각하며
남산에서 경성 시내를 내려다 봤던 조선신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아직 부속건물이 남아있는 1952년 조선신궁 터
그러나 남산이 어느 곳인가?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일 정도로 한국 전통 신앙의 중심지였기에
여기에 남아있는 일본식 신사의 터도
한국인들은 매우 奀 같이 생각했고
이곳을 어떻게든 개발해서 이 삿된 기운을
모조리 눌러버리자는 여론이 강했다
아니 여기서 싱먼리가??
이런 奀 같은 곳에는 마땅히
대한국민의 총의가 모인 국회의사당이 들어가야지 암!!!
그리고 내 세레브한 25m 이승만 동상도
실제 남산 조선신궁 터에 세워진 이승만 동상
그렇다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에 자기 80세 생일을 기념해서
높이 25m의 자기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
10개월 간 공사한 끝에 동상이 완공되었고
1958년엔 아예 국회의사당도 여기로 이전하기로 결정
1959년에 기공식을 여는데
그리고 1960년 이승만이 4.19혁명으로 하야하고
박정희 소장이 쿠테타로 정권을 잡으며 상황이 180도 바뀐다
이승만 하야 직후 여기에 있던 이승만 동상은
즉각 철거되어서 고철로 팔려갔고
박정희 역시 이승만이 계획한 남산 의사당 계획을 싫어해서
남산 의사당 역시 전면 백지화된다
아마테라스든 메이지든 대한의군참모총장 앞에선 꼼짝 못해~
그래도 조선 신궁 터를 그냥 두기엔
너무 奀 같은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기에
1970년 안중근 의사 순국 60주년을 기념해서
조선 신궁 본전 터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지어버린다
그래도 터가 조금 남자, 남산 어린이회관도 지어서
호국영령과 잼민이의 양기로 아주 奀 본 원령을 눌러버린다
여기에 기념관 아래 쪽 조선신궁 터에는
아예 백범광장을 조성한 뒤
광장 한복판에 김구 동상을 세워
진짜 마패를 박아버린다
즉 奀 같은 기억이 가득한 삿된 기운의 땅에
바로 안중근 - 김구라는 억제기이자 티배깅을 갈겨버린 것
한양도성 발굴 중에 발견 된 조선신궁 배전 터와 이승만 동상 기단
아무튼 좆본이 신궁 짓는다고 파괴한 한양 도성도
2020년 최종적으로 복원하며
현재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 공원에서
신궁의 모습이나 흔적은 철저히 사라져버렸다
다만 현재도 일본의 신토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칙제사였던 조선 신궁 터를 둘러보기도 하는데
당연히(?) 이들은 가이드의 설명과 메카 안중근 동상에 의해
행동을 대단히 조심히 한다고 한다
+
앞서 말한 스사노오에 몰입한 육수들이 세운
강원신사 역시 해방 이후 철거 되는데
당연히 스사노오 = 단군 설을 믿던
버러지 새ㄲ들 때문에 기분이 영 찜찜한 가운데
이 강원 신사 터에 한 건물이 들어서니
바로 춘천 "세종" 호텔이다
참고로 안중근의사기념관에는 남산공원으로 여행 온 일본인들이 방문하는 주요 코스라고 합니다
근데 의외로 이들의 반응은 '좋은 역사 공부가 되었다'가 많다고 합니다
-끝-
여러댓펌)
오호 남산 어린이회관이 왜 산중턱에 있나 했더니 잼민이의 기운으로 날려버리려고 한거구나 ㅎㅎ
아 아마테라스던 메이지 천황이든 7백만 잼민이 총공 감당 가능하냐고ㅋㅋㅋㅋ
ㅋㅋㅋ 무속에서도 음기가 강한 땅은 강한 신을 모셔서 누르거나 관공서를 지어서 누르라고 하죠 ㅋㅋㅋ 초등학교나 어린이회관 같은 거는 관공서+양기만땅 어린애들이라 일타쌍피 ㅋㅋㅋ (정부가 그런 무속을 이용한거는 아니겠지만)
왜 남산의사당이 취소됐냐면, 군사정권 입장에서 보니 국회가 청와대를 손바닥 손금 보듯 내려다보는 꼴이 되서 영 별로였다고...ㅋ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68년 "통일을 대비하려면 국회의사당은 넓직한 땅에 세워야 적합하다"며 막 개발 중인 여의도로 확정됐음.
기껏 간지나게 르 코르뷔지에식 모더니즘 양식으로 의사당 설계 뽑았는데
저 지붕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하면서 돔까지 씌워버린 각하ㅋㅋㅋㅋㅋ
-> 관련글 : 의외로 시작은 개아사리판이었는데 훗날에 평가 좋아진 케이스
https://youtube.com/shorts/8vfym2_Gdhw?si=SumHj45bFYHjpCJb
ai로 누가 저거 박살내는거 쇼츠 만들었던데, 저런 비하인드가 ㅋㅋ
영상 개 고퀄이네ㄷㄷㄷ
봉수대는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joat인 새Z들ㅋㅋㅋㅋ
스사노오가 강림했다고 하는 우두산에는 지금 6.25 춘천지구 전투 기리는 충렬탑이 있고, 본문에 나온 강원신사와 세종호텔은 춘천 중심에 있는 봉의산에 있음
사실 저 춘천 우두산도 저 ㅄ들이 헛지거리한게, 일단 원래 신라 영토에서 좀 많이 떨어져 있고
소시모리로 추정되는 우두산은 현재 거창 or 경주로 추정된다고 하네ㅋㅋㅋ
원래는 진짜 우두산 밑에 세우려고 했는데 총독부에서 반려해서 ㅋㅋ 내 뇌피셜로는 우두산에 신사 세우면 소양강 건너는 다리도 놔줘야하고 그거까지 하면 신토육수들에게 진다는 생각이어서 그랬을거라 봄
알아보니깐 이쪽이 유림들 세력이 강해서 조상을 모시는 조선인들의 강한 반감을 우려했기에
우두산 쪽을 반려때렸다고 함
"조선인에겐 신과 신사의 관념이 없어서 합사할 신격이 없음" < 이건 솔직히 말하면 합리적인 결론이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어떻게 통치할지 감 조차 안 잡고 있었고, 신토에 대한 이해도도 낮아서 나온 소리라고 생각하는게
조선을 내지화 하니 어쩌고 이걸 진심으로 생각 했으면 신토 종사자들 말 처럼 조선 신궁은 단군 모시면서 건축 양식도 조선식 섞어서 했어야 했음. 그랬어야 내선일체인거고, '진짜' 신토식이지.
왜냐면 신토 자체도 고대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세력들을 합병하면서 그들의 신과 신앙을 합치면서 형성된 것이라서
조선 신궁엔 단군을 모셔야 한다는 일본 신토 종사자들이 제대로 생각한거고, 조선 총독부의 행보는 '내지화' 라는 것 자체에 실제론 크게 관심도 없었거나 혹은 이해도 자체가 아예 없어서 나온 결정이라 생각...
애초에 총독부 자체가 국가신토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이긴 했음
신토로 조선인 동화를 헛소리 취급하기도 했고, 총독도 제례식에 안가려고 할 정도ㅋㅋㅋ
걔네 입장에서 2등 민족 편의를 봐주면서 굳이 일본의 문화를 오염시키지 않으려는게 눈에 보일 정도
조선신궁 자체가 1919년에 계획해서 25년에 만들어졌고, 애초 목적 자체가 재조일본인, 그러니깐 조선 거주 일본인을 타겟팅한 거라, 조선인이 시각에 들어올 수가 없음.
조선총독부는 단군, 태조 이성계 관련 논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고.
메이지덴노를 모신다고 한 것도 이 사람 때문에 조선을 일본인이 개척했다에 가까움
그래서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1929년 조선박람회 때,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조선"은 재조일본인들이 일구어놓은 조선이었음.
조선박람회 때 밀었던 조선10경도 조선신궁을 비롯해서 재조일본인 기준으로 만들었고. 이 때문에 조선인들은 "조선없는 조선박람회"라고 욕했음. 저 시기엔 내선일체같은 동화논리가 크게 작동하진 않음.
생각해보니 스사노오가 신라에서 일본으로 탈조선했다는거 전승에 불과하니 근거가 없다 이러는 글 본거같은데
결국 신화라는게 다 전승이 모여서 만들어진거 아닌가?
실제로 스사노오 신앙이 일본 자생이 아니라 한반도계 도래인의 신앙이 합쳐진 거 아닌가라는 설도 있음
실제로 스사노오 도래지인 이즈모 지역엔 한반도 관련 지명, 특히 신라 관련 지명이 많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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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돈많은백수가될래 작성시간 26.08.28 👍👍👍👍진짜진짜 재밌게 봤음 글쓴 여시 천재임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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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늘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길 작성시간 26.08.28 진짜 넘 재밌어서 후루룩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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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롤리살까말까 작성시간 26.08.29 new
흥미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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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긍정은치트키 작성시간 26.08.29 new
지금 저러면 일빠들이 ㅈㄹ하겠지 하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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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buda 작성시간 26.08.29 new
이성계 깃발만 보여도 빤스런 하던 왜구 새끼들이 어딜 감히 남산에 신사를 처 짓고 있어 ㅅㅂ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