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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의 사진기행(30) : 돌담길 따라 흐르는 진도아리랑의 여음, 청산도에서(1)

작성자한 길|작성시간14.03.29|조회수233 목록 댓글 5

 

 

유봉은 송화에게 자신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한데 대해 원한이 있느냐고 묻는다.

송화는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모든 건 이제 마음으로 느껴질 뿐이다.

진정한 소리때문이다.

 

유봉은 송화에게 숨을 거두기 전 동편제와 서편제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동편제(東便制)'는 무겁고 매김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情恨)이 많다...

 

그렇게 한편의 영화같은 서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서편제 영화세트장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에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내 시집살이 잔말도 많다
오다가 가다가 만나는 님은 폴목(팔목)이 끊어져도 나는 못 놓겄네
님 죽고 내가 살어 열녀가 될까 한강수 깊은 물에 빠져나 죽자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큰 애기 젖가슴은 몽실몽실
저 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진도아리랑 중에서)

 

 

 

진도아리랑은 여성 민요이다.
그래서 사설의 화자도 여자이고 그 내용도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섬지방 여성들의 구김살없는 신명이 잘 드러난다는 점이 다른 아리랑에 비해 독특하다.
진도아리랑의 애환과 애욕의 감성은 진도에서 비롯되었지만,

기실 청산도에서 그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유봉송화에게 진도아리랑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진도아리랑을 길에서 부르게 한다.
그것도 황토의 붉은 빛이 넘쳐나는 돌담길에서 말이다.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멀리 산자락을 비추다가 금새 푸른 들판을 클로즈업하며 닥아오더니

돌담길에 앵글을 맞추며 멈춰선다.
이 때 그 화면에 세 가족이 들어서고 마침내 애잔한 서편제 가락이 깔리며,

척박한 황톳길에서 끈끈하게 살아오던 남도인의 구슬픈 정서를 솟구치게 한다.
그렇게 한없이 가락을 퍼 올리고 나면 이내 그 가락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소리를 찾아 쓰디쓴 인생길을 걷는 세 사람,

유봉과 송화, 그리고 동호
그들이 세마치 장단에 실어 부르는 진도아리랑의 여음(餘音),

그 돌담길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자진진양조인 세마치는 서양의 3/4박자인 왈츠와 비슷하다.
돌담길에서 세마치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세 사람,

어쩌면 따스한 봄날 바람에 멀리 날아가듯 떠도는 민들레 씨앗을 닮은듯도 하다.

그래서인가?

돌담길은 또다시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세마치장단왈츠’,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 필연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 새재는 웬 고개인가
구비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난다.
소리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히 쌓인 한을 풀어나 보세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뒤어라 노를 저어라.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났네 에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임권택 감독은 감정을 가능한 절제하며,

우조(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는 동편제와는 달리

발림(육체적 표현. 동작)이 매우 세련되어 있는 서편제를 그리기에

돌담으로 둘러쌓인 황톳길이 안성마춤이라는 걸 잘도 알고 있었다.

그 뿐 아니다.
임감독은 서편제에서 영화속 여인이 아니라 삶의 한 유형으로서,

송화라는 여인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판소리를 부르는 송화의 모습에서,

지난 시절 청산도 여인네들 삶의 모습을 오버랩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진도아리랑의 여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게다.

 

 

청산도의 풍경은 유채꽃 피는 3월 하순부터 청보리 익어가는 5월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돌담사이로 보이는 청보리와 유채꽃들이 뿜어내는 빛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고향처럼 아스라한 풍광이

가슴 한켠을 애리게 하는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4월 나지막한 언덕에 유채가 한창 봄을 그리고 있는 곳,

청산도.
당리 언덕에 올라 제일 먼저 서편제속으로 들어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진도아리랑의 여음을 즐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는 갑자기 봄의 왈츠로 흥겨움을 더한다.

그러고보니 나이든 사람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그 길은 함께 가는 길이었다.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봄날 이 길을 걸으면 누구라도 진도아리랑의 춤사위를 따라하거나 봄의 왈츠를 추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세마치장단과 왈츠의 조화로움으로...
참 멋진 발상이다.

 

 당리 언덕에 있는 봄의 왈츠세트장

 

봄의 왈츠 / 이수진

나그네의 거친 몸짓에
이 몸
주눅이 잔뜩 들어
몇 달을
마음 저 깊은 곳에 숨겨둬야만 했던
연둣빛 분홍빛 음표들
이제 웬만해진 나그네의 몸짓
이즈음 꺼내
사랑하는 이와 흥얼거리며
왈츠를 추고 싶나니
봄비여
우리의 작은 음악 세계로 와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음표를 두드려줄 수 있겠는가

 

 

서편제에서 만나는 길들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한데 아름다운 만큼 서럽다.

서편제가 그렇게 슬픈 로드 무비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송화가 가야하는 소리길이 서러울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울수록 서러운 탓이기 때문이다.

서편제에서 카메라가 그 길을 그토록 오래 잡은 까닭은,

이런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불안한 세사람의 관계는 진도아리랑 가락에 묻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흡사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봄은 그렇게 남쪽바다로 부터 오고 청산도에 머물고 있었다.
굽이치는 파도는 남아있는 겨울기운을 온몸으로 빨아들이고,

넘실대는 파도위로 눈부신 봄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봄은 그렇게 바다로부터 찾아와 푸른 보리밭과 마늘밭을 흔들어대고,

갯바람을 앞세워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작은 산등성이에서 유채꽃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청산도의 봄은 그렇게 화사하게 춤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서편제 영화의 장면 장면을 떠올리며 영화속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는데...

진도아리랑의 추임새를 흥얼거리며 걷는 길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로는 부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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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 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9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유튜브에 서편제 영화(120분)를 공개했습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보세요
    (아래 링크주소 따라가셈)

    http://durl.me/2rjsi2
    첨부된 유튜브 동영상 동영상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3.29 참으로 아름다운 청산도의 사진과 멋진 해설글입니다.
    요즘 제가 소리를 배우는데, 진도아리랑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진도아리랑

    후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1.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가 눈물이로구나
    2.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다
    3.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4. 저기가는 저 기럭아 말 물어보자~ 우리네 갈 길이 어드메뇨
    5. 치어다 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리 굽어보니 백산이로구나
    6. 높은 봉 상산봉 외로운 소나무~ 외롭다 하여도 나보담은 낫네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3.29 진도아리랑

    7.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 세상~ 내가 심군 호박넝쿨 담장을 넘네
    8. 물속에 노는 고기 잽힐 듯 못잡고~ 저 처녀 마음도 알듯말듯 못잡네
    9. 산천 초목은 달이 달달 변해도~ 우리들의 먹은 마음 변치를 말자
    10. 저고리 앞섶에다 바늘장을 걸고~ 뒷머리 나지나진 내 간장을 녹인다
    11. 금자동이냐 옥자동이냐 어허 둥두둥 내 딸~ 금을 준들 옥을 준들 널보담 좋으랴
    12. 갈매기는 어데 가고 물 드는 줄 모르고~ 사공은 어데 가고 배 뜨는 줄을 모르네
    13. 오다가 가다가 만나는 님은~ 홀목이 끊어져도 나는 못 놓것네
    14. 춥냐 덥냐 내품 안으로 들어라~ 베개가 높고 야차면 내팔을 베고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3.29 진도 아리랑

    15. 무정히 가는 세월 백발만 서리고~ 속절없는 이내 청춘은 다시 올 줄을 모르네
    16. 만경 창파에 둥두우웅 뜬 배~ 어기어차 어야디어라 노를 저어라

    이어서 진도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모든 사람이 한 구절씩 만들어서
    계속해서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추가할 수가 있겠습니다.
    "육십 넘어 당한 파면 마른 하늘 날벼락~ 하늘님이 아시겠지 쓰라린 이 마음"
  • 답댓글 작성자단풍 나무 | 작성시간 14.03.29 '쓰라린 이 마음' 하늘님은 몰라도 주변 사람이 알아주면 더 좋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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