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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의 사진기행(31) : 돌담길 따라 흐르는 진도아리랑의 여음(2)

작성자한 길|작성시간14.03.30|조회수221 목록 댓글 4

 

 

청록파 시인답게 박두진 선생은 이상향의 청산도를 노래했다.

그 속에는 온통 푸르름이 우리들 마음을 물들게 한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훨훨훨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박두진 시인의 청산도중에서)

 

 

청산도의 청산(靑山)’은 하늘, 바다, 산이 모두 푸르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빼어난 자태 때문에 고려 때는 청산도를 일러 선산(仙山)’, ‘선원(仙原)’이라고도 불렀다.

어쩌면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리얄리 얄라셩이라는 가시리

이런 청산에서 자지러지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 느낌, 그 기분을 느끼려면 가만가만 걸어야 한다.

그래서 청산도에서는 맨발이 더 좋다.

 

 

걷다보면 울굿불긋 색을 칠한 양철지붕이 유독 눈에 띄는 마을을 지나게 된다.

노랑 유채꽃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를 찍을 당시,

당리와 근처 읍리 마을 지붕은 모두 새로 칠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세트장으로 변한 셈이다.

 

 

 

어느 마을을 지나건 돌담길과 유채밭, 그리고 보리밭이 너울댄다.

매양 지나던 그 길처럼 낯설지가 않다.

 

 

이제사 청산도 여행의 진미가 바로 느림의 미학임을 깨닫게 된다.
청산도는 얼마전 슬로우로시티국제인증을 받았다.
슬로시티국제연맹은 현장 실사를 거쳐 청산도를 비롯해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 장흥군 유치 등 전라남도의 4곳을 슬로시티로 지정했다.

슬로시티란 전통 보존, 지역민 중심, 생태주의 등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청산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은 현대 문명에도 불구하고 청산도의 구들장논, 다랑이논, 초분 같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유산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 역시 청산도의 느릿느릿 돌담길에 흐르는 진도아리랑의 여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마다 쌓아논 돌담,
청산도는 돌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담하나에 여인의 모습,

또 돌담 하나에 여인네 모습이...

    

 

우물이나 당산나무 아래에도 여지없이 돌담이 쌓여 있다.
그 돌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과,

그 밑에 옹기종기 피어있는 산딸기를 비롯한 야생화들 또한 싱그럽기만 하다.
돌담을 여자들이 쌓아서 그런지 그 느낌마저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길은 모두가 문화재 지정을 받았다고 한다.

 

상서마을의 아름다운 돌담길

 

 

다른 섬들과 달리 청산도에는 제법 논이 많다.
그건 청산도가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하다는 증거이다.

 

 

다랑이 논은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계단식으로 만든 논을 말하고,

구들장 논은 물이 잘 고이지 않는 섬 특유의 환경을 감안해 만든 논인데,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들었다.

그런데 그놈의 아련한 돌담과 구들장논을 청산도에서는 모두 여자들이 쌓았다고 하니 기가막힌다.

남자들은 뭐하고 있었느냐고요?

그때 남정네들은 곰방대 물고 ‘Let it go’를 외쳐대고 있었다는...^^

 

 

청산도에는 제주도를 비롯한 섬지방 특유의 삶의 방식이 배어있다.
, 바람, 여자라는 공식은 청산도도 예외가 아니다.
청산도 풍광이 아름다운건 바로 이 여인네들의 한이 서려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락논과 구들장논을 보면서 그 옛날 청산도 여인네들이 치루었을 고통과 애환의 역사를 충분히 가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산도에 배인 여인네들의 한과 흐느낌,

그게 바로 진도아리랑의 여음이다.

 

 

걷다보면 밭 한 가운데 자리한 묘지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낯설은 무덤이 보인다.

바로 청산도에서만 볼수 있는 초분이다.

청산도 초분은 남해나 서해 섬마을에서 주로 행하는 장례의식 중 하나이다.
이때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덮어 놓는다고 하여 초분이라고 부른다.
이 초분은 3년 후 다시 해체하고,

시신의 뼈를 드러내 깨끗이 하는 '씻골'을 거쳐 땅에 묻는 '본장'을 한다.
초분의 풍습이 생기게 된 것은 상주가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갑자기 상을 당했기 때문이거나, 영혼이 땅 위에서 시간을 잠시라도 보내게 하기 위해서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청산도의 초분 풍습은 땅바닥에 돌을 깔고('덕대'라 함)

그 위에 솔가지를 꺾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솔가지는 수평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관을 올려놓고 다시 솔가지로 지붕모양을 만든 다음 이엉으로 두르고 용마름을 올린다.
그 위로 돌을 매달아 묶는다.
관의 길이만큼 길쭉한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을 만든 것이다.

청산도 같은 섬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례 풍습이 바로 이 초분일 것이다.
초분은 그러니까 풍장인 셈이다.
청산도 돌담길에 흐르는 진도아리랑의 여음은 이제 풍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풍장(風葬) 1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 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도청리의 다랭이논

 

 

축대 곳곳에 피어난 들꽃이 세월의 무상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저 축대에 배어있는 여인네의 한과 그 고운 손길로 퍼날랐을 흙이며,

돌 조각 하나하나가 참으로 안쓰럽기만 하다.

    

도청리 부근 다랭이논 축대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에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어디선가 또다시 진도아리랑의 여음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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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3.31 청산도 제2탄 역시 사진은 아름답고 글은 멋집니다.

    제가 요즘 배우고 있는 단가 "어화세상"의 가사를 소개합니다.
    한길님의 청산도 사진과 글에 잘 어울릴 것 같고,
    저의 요즘 심경과도 어울리는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3.31 어화세상

    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세상공명 무엇하랴 인간영화 꿈이로구나
    베옷입고 맨발벗고 소를 몰아 논을 갈고
    호미들고 밭을 매니 뜰에는 종달새가 지지배배 우지지며
    향기로운 땅 내음새 심신이 새롭더라
    한가할 땐 틈타서 낚시대를 들어매고
    백구로 벗을 삼아 은린옥척 건져들고
    달을 뒤로 돌아드니 강산풍경 흥미간의
    지상 신선이 나뿐인가
    항우장상 부럽잖고 풍진 세상 멀어지니
    인간 극락이 여기로구나
    세월아 가지를 말아라 아까운 청춘이 다 늙는다
    헐일을 허여가며 놀아 보세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3.31 단가란 판소리를 공연하기 전에 청중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입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단가는 "사철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철가의 마지막은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허여 가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 보세"라고 끝나기 때문에
    일은 안하고 술만 먹고 놀기만 하자는 말인가 라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화세상의 작자는 이런 비판을 의식했나 봅니다.
    어화세상의 마지막은 "할 일은 하면서 놀아보세" 라고 일과 풍류를 겸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 작성시간 14.04.02 남쪽에 봄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지난 토요일 남도지방에 1박2일로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구례의 산수유축제에 들러 노오란 산수유를 실컷 구경하고 낙안읍성으로 가서 1박을 했습니다.
    낙안읍성에는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 낙안서당 훈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틑날 훈장의 안내로 낙안읍 성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선암사에 들렸는데, 마침 제5회 선암사홍매화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붉은 매화꽃을 마음껏 볼 수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매화꽃과 꽃이 비슷한 '처진올벚나무'도 아름다운 가지가 늘어져 있었습니다.
    모처럼 서울을 떠나니 해직 후의 우울했던 기분이 좀 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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