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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의 사진기행(12) : 몬세라트의 ‘파우 카잘스’

작성자한 길|작성시간13.10.03|조회수305 목록 댓글 6

 

몬세라트(Montserrat) 산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몬세라트산은 스페인(카탈루냐) 사람들에게는 몬트사그라트('신성한 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산타마리아수도원이 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정상의 수도원으로 기차를 타고 오릅니다.

 

해발 1236m에 위치한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오래된 성모자(聖母子) 목조상()이 유명합니다.

이 목조상의 얼굴은 검은색을 띄고 있는데 누가가 조각하여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으로 전해졌는데, 무어인이 지배할 당시 동굴 속에 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880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래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데, 사람들은 많은 기적이 성모 마리아의 중재 덕분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구불구불 20여분을 오르면 드디어 몬세라트 역에 닿습니다.

  

이곳은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가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연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감을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몬세라트산이 주는 자연의 웅대함도 있을테지만 어쩌면 순수한 자연 그 자체의 의미가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바위산 아래 세워진 수도원

  

한편, 몬세라트는 우리에게 첼로의 귀재로 알려진 파블로 카잘스가 소년합창단을 위해 작곡을 하며 합창단 지도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역시 몬세라트 산이 주는 자연의 순수함과 고지식함, 열정 이런 것들이 어쩌면 그의 작품에 모두 배어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제자 상이 조각된 수도원 성당 

  

토마스 만은, “파블로 카잘스의 존재는 내 기쁨의 근원이다.

그는 인류의 명예를 구원하러 내려온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는 18761229일 바르셀로나에서 60Km떨어진 벤드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당 정면 한가운데에 검은 목조의 성모상이 있습니다.

  

11살에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입학, 어린 나이에 작곡, 첼로, 피아노를 배운 뒤 15살이 되던 해인 1891년 바르셀로나에서 데뷔를 합니다.

그는 ‘Pablo Casals’라는 스페인 이름보다 ‘Pau Casals’라는 카탈루냐어로 불리길 더 좋아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를 유명하게 한건 그의 연주실력 뿐아니라 그가 파시즘에 대항해 예술가로서의 가치를 높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파시즘에 공공연히 반대해서 1936년 카탈루냐와 프랑스의 국경 근처 프라드로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합니다.

 

 

 

낮 12시에는 세계3대 합창단의 하나로 알려진 몬세라트 소년합창단의 공연이 있습니다.

  

스페인 내란(1936~39)이 끝난 뒤에도 프랑코 독재정부에 반대해 귀국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1946년에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에 항변하기 위해 공개 연주회에서 은퇴하기도 합니다.

카잘스는 1956년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해 이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평화를 위한 개인적 음악운동을 계속합니다

 

카잘스가 몬세라트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할 당시 합창단을 위해 작곡한 음악CD자켓

  

카잘스가 80세 되던 해 방년 20세의 제자 마르티타 몬테스와 결혼을 합니다.

그녀의 파블로 카잘스에 대한 애정은 단지 음악적 반려자로서 뿐 아니라 그야말로 카잘스의 사상적 반려자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카잘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마지막으로 무반주협주곡을 들으며 숨을 거둘수 있도록 해줍니다.

카잘스가 얼마나 바흐의 무반주협주곡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는지요.

 

몬세라트 산 중턱에 세워진 카잘스의 동상

  

음악에 대한 열정, 사랑, 모두가 사상적 뒷받침 없이는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는 것을 카잘스는 무언의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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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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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자유영혼 | 작성시간 13.10.04 카잘스가 환생하여 수원대 음대에 나타나서 대금의 명인 임진옥 교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 작성자거북선(일당백) | 작성시간 13.10.04 정신이 달라도 어느 정도라야, 비교를 하지요.
    맑은 정신과 썩은 내음이 풀풀날리는 정신.

    한길님 좋은 사진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모자상은 예수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줍니다.
  • 작성자마중물 한방울 | 작성시간 13.10.05 그렇게 재능을 인정받은 연주가 카잘스는 권력자에게 협력하며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거부 했군요.
    그가 스스로 험난한 고통의 길, 즉 정의와 평화의 길을 선택하여 많은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공익을 추구했다니, 저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런 교훈을 한길님으로부터 알게되어 고맙습니다.
    예술을 전공하는 교수님들도 이런 본보기를 많이 알고 계실텐데,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천고마비 | 작성시간 13.10.05 이글을 읽으니 카잘스의 첼로연주를 듣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군요.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구성원이 억압을 받는 직장에서 일하는 내게
    잠시나마 위안이 될 듯 싶습니다. 한길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가을바람 | 작성시간 13.10.06 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로화가인 김흥수 화백이 73세 때에 30살이었던 여제자와 결혼한 것이 최고기록이라고 알았는데, 카잘스는 80세에 20살인 여제자와 결혼했다니 정말로 대단하군요. 이 가을에 한길님 덕분에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도 없다는 말을 다시 음미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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