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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단편소설 (1)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3.06|조회수625 목록 댓글 4

<이 소설은 제가 수원대에 오기 전에, 국토개발원에서 근무하던 1988년에 네 차례에 걸쳐서 연구원 소식지에 연재했던 단편소설입니다. 지금부터 무려 26년 전에 쓴 글이므로 술집의 풍속도나 화폐의 가치가 지금과는 다릅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중산층 봉급생활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십시오. 소설이란 반쯤의 사실과 반쯤의 허구로 구성되는 것이니까요.>

 

아가씨의 눈물 (1)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같은 봄꽃은 이미 다 지고, 더워지기 시작한 6월의 어느 금요일 날,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사보에 잡문을 하나 썼는데 그 원고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원고료라고 해도 소득세에 방위세,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민세까지 떼고 나니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매월 봉급타서 지로로 꼬박꼬박 아내에게 갖다 바치는 봉급장이에게 5만원은 큰 돈이었다. 더욱이 그 돈은 아내가 모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처분소득이고 보니 김 과장은 기분이 매우 유쾌했다.

 

,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즐거운 고민을 하던 김 과장은 동료인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자기가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호기있게 제안하였다. 그 동안은 박 과장에게 얻어만 먹었는데 이번 기회에 빚을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 과장이 일하는 부서는 업자를 상대할 일도 없고, 따라서 국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깨끗한 자리였기 때문에 봉급만 받아 가지고서는 룸싸롱이나 카페라고 이름 붙은 술자리는 여간해서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박 과장과 함께 고급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수준의 카페에 큰 맘 먹고 한번 가보리라고 결심하였다.

 

두 사람은 가끔 들르던 돼지갈비집에 먼저 갔다. 김 과장은 평소에도 돼지갈비집을 선호했는데, 그 곳은 값도 부담이 안 되고 같이 간 사람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이른바 여자가 나오는 고급 술집에 가면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옆에 앉은 아가씨와 그저 깊이도 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느라고 정작 같이 간 친구와는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에 평소에도 김 과장은 고급술집보다는 돼지갈비집을 좋아했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라는 게 뭐 비슷비슷하리라. 상사에 대한 불만, 떠다니는 소문, 부동산 투기, 부하 직원 이야기, 노조가 어떻고, 노처녀가 어떻고 등등 한참 떠들다 보면 사람들은 이른바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그러나 김 과장은 스트레스의 정확한 뜻을 아직도 모르려니와, 스트레스라는 외래어를 모르는 사람들, 예를 들면 파출부나 청소부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이 하루 하루를 잘도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아는 게 병이다는 속담도 있지만 스트레스라는 말이 퍼진 후에 김 과장은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시작하는 것 같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끔 퇴근길에 소주 한 잔이라도 하게 되었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아홉 시 쯤 되어 두 사람은 카페 나목(裸木) 으로 갔다. 나목은 이름대로 풀이하면 벌거벗은 나무라는 뜻이다. 그 카페는 작년 연말인가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괜찮고 아가씨들도 쓸 만해서 다시 가 볼 생각이 나게 되었다. 왜 분위기가 괜찮다고 느꼈는가 하면 우선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이 술집에 어울리지 않게 은은한 동양화였으며 칸막이로 된 방안에 마이크가 연결되어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무대에 나가지 않고 그냥 앉아서 부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주앙 한 병하고 마른 안주 하나.” 김 과장은 굽신거리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술잔을 들고 위하여를 한번 한 후 박 과장은 자기가 군대 있을 때 고생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웨이터가 다시 들어와서 물어보았다.

아가씨를 불러 드릴까요?”

좋지, 특별히 예쁜 아가씨를 들여 보내! 새로 온 아가씨가 있으면 더욱 좋고.”

박 과장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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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6 요즘 제가 무엇하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에게 보고 드립니다. 한 마디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네 도서관에서 열람증을 만들었습니다. 서초구내 모든 도서관에서 열람증을 사용할 수 있는데, 책 3권을 2주 동안 빌려줍니다. 오전 시간은 책을 쓰는 데 보냅니다. 일주일에 한번 광교산 밑 고기리에 있는 '소리의 향기'라는 곳에 가서 판소리를 배웁니다. 1:1로 전수하는 방식으로 배우는데, 요즘 '어화 세상'이라는 단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목동 친구가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에 가서 은퇴한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를 합니다. 한타에 1000원 내기를 하는데, 최근에는 일이만원 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스크린에서는 싱글입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6 아마도 제가 봉급을 못받는 해직교수라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일부러 져주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4명이 우면동 집에 모여서 바둑을 둡니다. 저녁 내기를 하는데, 요즘 저의 승률이 높아졌습니다. 친구들 몰래 바둑책 시리즈를 사서 보고 있는데, 연구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저녁에 각시와 내기 고스톱을 칩니다. 고스톱을 2명이서 칠 수 있는데, 7점이면 이깁니다. 피가 6개 이하이면 피바가지를 써서 두배가 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각시와 고스톱을 쳐서 이삼만원을 따기도 합니다. 해직된 이후 친구나 지인과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한번도 제 지갑을 열지 못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6 그렇지만 연구실빼라는 소송에서 빨리 이겨서 연구실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책쓰는 모든 자료가 연구실에 있기 때문에 매우 불편합니다. 제가 1학기에 맡았던 강의는 모두 강사를 구해서 시간표를 짰더군요. 제게로 오는 e메일은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도 불편합니다. 물론 daum에 다른 메일이 있기는 해도 그동안 학교메일로 오던 모든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가정 내에서는 대학교 4학년인 둘째 아들 녀석 용돈을 20만원 깍았습니다. 아들이 보내온 문자를 보니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고 격려를 해주던군요. 각시는 딸 집에 가서 주중에 손녀를 봐주고 100만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다시 주말 부부가 되었습니다. ㅠㅠ
  • 답댓글 작성자원더블 | 작성시간 14.03.06 이뭐꼬님의 일상이
    한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듯 하네요
    그런데....
    눈앞이 흐릿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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