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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56)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8.09|조회수397 목록 댓글 1

불교와 도교적인 냄새가 물씬 배어나는 좋은 시였다.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마지막 구절일 것이다. ‘무정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가는 인생이라는 표현이 가슴을 친다. 세상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너무 무정하게 또는 매정하게 대하지 말고 정을 주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따뜻하고 값있는 인생일 것이라고 김교수는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했다. 김교수는 이 시를 오려서 백지에 붙인 후에 봉투에 넣어서 미스최에게 우편으로 보내었다. 다른 말은 쓰지 않았다. 이 시를 받아 읽고 미스최는 무엇을 느낄까? ‘무정한 것 아닌 몸이라는 구절의 깊은 뜻을 눈치채면 좋으련만.

 

그후 두 주일 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보내준 시는 잘 읽었으며 고맙다고 한다. 한 번 만나자고 하니 보스로 나오란다. 그러나 보스에 가면 지난 번처럼 30만원이 쉽게 깨지는데, 교수봉급으로 아가씨 있는 술집을 한 달에 두 번이나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잠실에서 만나자고 하였더니, 망설이다가는 오빠, 다음에 전화할께요.”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이제 봄이 무르익었다. 쓸쓸했던 산과 들에 온갖 풀과 나무가 되살아나 생명을 찬양하고 있었다. 겨우내 조용하기만 했던 산야에 갖가지 새소리가 요란하다. 그동안 새들은 모두 어디에 숨어 있었나? 새잎이 돋아난 나무는 이제는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한 믿음직한 아들 같다. 봄꽃은 아름다운 소녀같고, 봄나무는 씩씩한 미소년같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어서 보니 풀꽃이 딸이라면 나무는 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계절이 바뀌는 세상은 아름답고 그러한 세상을 사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이 아닌가?

 

그런데 봄꽃이 다 졌는데도 아가씨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혹시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 아쉽다. 비록 더 이상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너무 싱겁고 아쉽지 않은가? 너무도 허망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가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이사를 해도 얼마 동안은 바뀐 전화번호를 안내해 주는 녹음이 나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잠실로 전화를 하니 웬 여자가 나온다. 번호를 확인하니 맞다고 한다. 그 전에 살던 사람을 물으니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 버린다. 우리나라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참 불친절하다.

 

그후 일주일 쯤 지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스로 밤에 전화를 걸면 아가씨와 연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러면 그렇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는가? 김교수는 박교수에게서 보스의 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어느 날 밤 810분에 전화를 걸었다. 웬 남자가 받는다. 김교수는 대단히 미안합니다만 미스최를 바꿔 주실 수 있겠읍니까?”라고 최대한으로 공손하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일주일 정도 여행을 갔는데, 오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출근을 하기는 하는가 보다. 모르지, 그 사이에 다른 가게로 가버렸는지.

 

그동안 아들 녀석은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는데, 별로 만족해 하지 않는 눈치다. 아내는 차라리 미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내면 어떨까라고 김교수에게 의견을 묻는다. 큰 아들은 미국에서 유치원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왔기 때문에 영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영어 단어 실력이야 김교수가 낫겠지만 회화는 본토 발음으로 유창하니, 남들처럼 어학연수고 뭐고 필요없이 직접 미국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교수는 한마디로 절대 반대였다. 김교수는 아내에게 세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를 분명히 했다.

 

첫째는, 고등학교만 마치고 미국에 가면 아들은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잊어버리고 미국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배울 것이다. 미국적인 가치관을 가지고서 앞으로 한국에서 살면 오히려 평생 갈등이 생길 것이므로 아들은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 결국 아들은 우리 곁을 영영 떠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둘째는, 대학동창이라는 중요한 자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남자가 한국에서 살아가면서는 동창관계가 매우 중요한, 어떻게 보면 무형의 재산이다. 최소한 대학은 한국에서 나와야지 미국으로 유학가면 평생 대학 동창이 없는 외로운 사회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학교수 봉급 받아서 미국대학 학비를 대줄 수가 없다. 한 달에 2000불을 보내려면 봉급의 2/3가 나가는데, 그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당신이 혹시 나 몰래 모아둔 돈이 있으면 몰라도 우리 봉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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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단풍 나무 | 작성시간 14.08.09 나도 직업이 교수인지라 이 소설의 주인공 김교수와 내 자신을 비교해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한때의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술집 접대부와 자신의 체면과 기대에 걸맞게 살아가기 바라는 친아들을 대하는 자세가 도인의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외간 여자와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친아들 교육에 대한 정신을 특히 ㅇㅇ대 총장이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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