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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중편소설(57)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4.08.11|조회수614 목록 댓글 1

1990년대에는 미국유학이 붐이었다. 강남의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유학붐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심지어는 중학교 때부터 미국에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돈 가진 사람들은 애가 공부 못하면 유학 보내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교육이 암기 중심으로 사람 죽이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미국에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미국에 1년 정도 어학 연수를 갔다 오면 입사 시험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학생에게 보내는 학자금으로 매달 환전되어 외국으로 나가는 달라가 엄청났고 무역외 수지 적자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입학허가를 받지 못하면 호주나 영국으로 아들과 딸을 내보내는 사람이 서울의 부유층 사이에는 수두룩했다. 심지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아이들을 보냈다.

 

김교수는 미국에서 박사 공부한다고 6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고, 또 졸업 후에 한국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미국인 회사에 1년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대하여서는 피상적이 아닌, 심층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다. 미국회사가 직장 동료 간에 얼마나 경쟁이 심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또 직장에서 올라 갈수록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장사하여 돈을 많이 번 고등학교 동창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자기 아들을 미국의 중학교에 유학 보내는 것에 대해서 상담해왔다. 그때 김교수는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위협한 적이 있다.

 

자네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미국 박사 학위를 받는 모습을 그려보겠지. 그리고서 한국에 금의환향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자랑스런 아들을 연상하겠지. 그러나 이 사람아, 한 마디로 꿈 깨게.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6, 대학 4, 대학원 2년을 마친 자네 아들이 미국에서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면 한국말은 잊어버릴 것이다. 아들은 한국말이 서툴고 영어가 더 유창하고 편할 것이다. 자네 부부는 아들과 영어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겠는가? 미국에서는 어른도 이름을 부르니 자네에게 아들이 영어로 유진, 유진한다면 (그 친구의 이름은 박유진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자네 아들은 동창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한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늙었을 때에 자네 아들이 늙으신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지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겠는가? 자네가 죽은 후에 제사를 지내줄 것인가? 자네가 무덤에 묻힌 후에 자네 아들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자네의 무덤에 찾아 오겠는가? 미국에 보내면 최소한 영어는 확실히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설혹 영어가 유창해진들 한국말을 잃어버리면 그게 한국 사람인가 미국 사람이지. 설혹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떠듬떠듬 할 수 있을지라도 사고방식이 이미 미국화 되었는데, 그게 미국 놈이지 한국 사람인가? 그래도 아들의 장래를 위해 내가 지적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미국에 보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릴 수 없지.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하게. ‘이제 나는 아들을 잃어버린다. 나는 이제 아들을 미국에 양자 보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나.”

 

어느새 봄이 물러가면서 이제는 한낮이면 더워진다. 여름이 서서히 다가온다. 그런데 국가 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기 시작하였다. 경기가 나빠지고, 수출이 잘 안되고, 내수가 침체되고, 외환 사정이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경제를 맡은 재경부장관은 아직 우리나라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라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장관은 미국 박사 출신인가보다. 기초라고 한다든가 기반이라고 하면 미스최도 알아들을 텐데,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니 뭔가 대단한 것이 좋은 모양이다. 어느 날 박교수와 점심을 먹으면서 들으니 서울에 있는 고급 술집의 40%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김교수는 연구 과제와 논문, 강의 준비와 학생 면담 등으로 바쁜 일학기를 보내었다. 학기가 끝나갈 때까지 그 동안 아가씨는 연락이 없었다. 김교수도 보스에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인연으로 만났지만, 인연이 다했다면 그걸 어찌 하겠나?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흘러가는 구름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일 아닌가?

 

스페인 말로서 남자아이라는 엘니뇨 현상 때문인지, 또는 환경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인지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계절이 아무리 변덕스럽거나 또는 견디기 힘들더라도,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그저 기다리면 지나간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그저 참고 두어 주 기다리면 어김 없이 더위는 물러간다. 사실 우리나라 여름은 기온이 삼십 도가 넘고 정말 에어콘이 필요한 기간은 3주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땀 좀 흘리면서 꾹 참고 기다리면 에어콘 없이도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부자들은 돈이 많아서인지 정보가 빨라서인지, 겨울에 벌써 에어콘을 사고 여름이 되어 조금만 더워도 에어콘을 틀어서 전기를 부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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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희망봉 | 작성시간 14.08.11 소설 잘 앍고 있습니다. 그때 자녀를 외국에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아이 밥해주러 엄마도 따라 나가고, 남편은 한국에서 돈 보내주고 이른바 기러기 아빠로서 힘든 생활을 보냈습니다. 교수님들 중에도 기러기 아빠가 있습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한국에만 있는 슬픈 사회 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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