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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부부 이야기 (5)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26|조회수268 목록 댓글 2

                         등록금과 식칼

 

   미국에서 7년 만에 귀국한 지 한 달도 채 안된 어느 날,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남동생이 그때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등록금이 부족하니 좀 협조하라는 말씀이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 우리부부는 마치 신혼처럼 살림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냄비도 사고, 우산도 사고, 식탁도 사고, 일용품이며 살림살이를 준비하느라고 몹시 쪼들리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에는 결혼한 동생들이 합심하여 등록금을 대었으므로, 이제는 장남으로서 내가 한 번쯤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 같았다.

   그날 저녁에 나는 평소보다도 작아진 목소리로 아내와 상의를 했다. 그러자 아내의 대답은 뜻밖에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니 우리는 아직 여력이 없단다. 남도 아닌 동생을 도와 주는데 꼭 여력이 있어야 도와 주느냐고 물으니까 그래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동생의 입장에서 대안은 무엇이냐고 묻자, 시동생도 이제 대학생이니까 1년쯤 휴학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다시 복학하면 된다고 무슨 남의 일처럼 이야기 한다.

   나는 벽을 느꼈다. 내가 귀신이 아닌 이상 아내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나와는 전혀 생각하는 방향이 다름을 짐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몇 번 더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았으나 한 치의 진전도 없다.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등록기간이 끝나가도록 고민만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경우를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씁쓸한 무력감을. 돈이 원수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을 때에 나는 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살다 보면 아내 말을 들어서 좋을 때도 있지만 여자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야말로 그 경우라고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요즘은 세상이 타락하여 통장을 아내가 관리하지만 그때만 해도 좋은 시절이어서 통장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통장을 탈탈 털어 지로로 등록금을 보내고 말았다. 어쨌든 나중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질러 놓고 보는 거야. 아무려면 자식이 있는데 이혼이야 하겠어? 나는 아들을 단단히 믿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솔직히 아내에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동생 등록금을 내주는 것이 맏형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내 생각대로 돈을 보내 주었다고. 그러자 원래 다혈질인 아내는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싸움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나도 매우 미안했기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참 쏘아대도 반응이 없자 아내는 작전을 바꾸었다.

당신, 그처럼 비겁하게 말을 안 하면 시아버지에게 전화하겠어요.”

(이거 큰일이네. 우리끼리 끝내야지, 그러면 안 되는데.)

무슨 말이야. 싸움은 우리가 하는 거지.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어때요? 따질 것은 따져야지요.”

만일 집에 전화하면 끝장이야.”

끝장이라니.”

나하고 안 살려면 전화해.”

, 누가 못할 줄 알고.”

아내는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황급히 아내를 붙잡았다.

진정해! 당신 정말 이러면 내가 먼저 삼척(처가가 있다)에 이런 여자하고는 못 살겠다고 전화할 거야.”

해보시지.”

(, 이 여자 정말 세게 나오네.)

나는 전화기로 가서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아내는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식칼을 들고 나왔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 이게 뭐야. 아이고, 농담이 아니네. 이럴 줄 알았으면 호신술이라도 하나 제대로 배워두는 건데. 나는 엉겁결에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내는 식칼을 들고 가까이 오더니 식칼을 나에게 주었다.

, 이 칼로 나를 찔러요. 나를 죽이고 전화하세요.”

(아니 스토리가 이상하게 돌아가네. 이 여자가 어쩌자는 거야. 휴 살았다. 나를 죽일 생각은 없나 보나.)

무슨 소리야. 왜 내가 당신을…….”

   아내는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가까스로 칼을 치운 후 아내가 이야기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아내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어머니를 가장 사랑한단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라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참고 인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하면 자기의 어머니가 가장 마음 아파할 것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 아파할 것이다. 자기는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죽이고 이혼을 할려면 하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아니, 죽으면 이혼을 어떻게 해?’

   그 후 어떻게 우리 부부가 화해를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전투는 생사가 걸렸던 치열한 전투였으며, 그놈의 돈 때문에 싸운 부끄러운 전투였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그 후 쌍방이 아직까지 한 번도 그 전투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전투 역시 다른 전투처럼 용두사미로 슬그머니 끝나고 말았던 것으로만 기억된다. 원래 부부싸움이란 칼로 물 베기 아니던가? 어쨌든 그 전투야말로 우리부부의 전쟁사에서 무기가 등장한 유일한 전투였다.

추가로 한마디. 장모님 제발 오래 사세요.

(19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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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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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을바람 | 작성시간 13.09.26 이뭐꼬님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학생들의 "피같은 등록금"이라는 표현을 실감나게 하는 글입니다. 맞습니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한다는 단순한 사실 이면에는 이뭐꼬님 이야기 같은 희극같은 비극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 총장같은 사람은 이러한 서민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 작성자가을하늘 | 작성시간 13.09.26 이제는 고인이 된 유명작가 최인호씨가 천주교 週報에 쓴 암투병기에 이런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제가 쓰는 글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입속에 들어가 달콤한 일용할 양식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는 글이야말로 향기롭고 유익하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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