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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및 에세이

이뭐꼬의 불교 이야기 (1)

작성자이뭐꼬|작성시간13.09.30|조회수331 목록 댓글 3

색즉시공 - 1

 

                                   M군에게

 

   여름방학을 맞아 보내준 편지 잘 받았습니다. 문명의 이기인 전화가 값싸게 보급된 후 내 자신 편지를 써 본 지도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그저 바쁘기만 한 현대 생활에서 정성들여 세 장이나 쓴 편지를 받고 보니 M군의 성의가 무척 고맙게 느껴집니다지난 학기에 처음으로 대학교수가 되어 가슴 뛰는 큰 기대를 가지고 강단에 섰는데 여러 가지로 고통스러운 순간과 실망스러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제 방학이 되어 이것 저것 정리도 하고 또 2학기 준비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쉬다 보니 그동안 3kg이나 줄었던 몸무게도 회복이 되어 요즘에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평소에도 대학교수의 할 일을 지식의 전수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사십년 간 살아오면서 내가 이해한 것, 느낀 것, 바라는 것들을 강의 시간에도 가끔 이야기했는데 M군이 질문한 색즉시공이라는 말은 아마 환경화학시간에 현대원자론을 설명하다가 잠간 비친 내용 같군요.

   나의 종교적 배경은 기독교이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불교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지 알아나 보자는 수준 이상의 깊은 탐구는 아니기 때문에 색즉시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M군의 질문에 답하기에는 나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M군이 큰 맘 먹고 한 질문이기 때문에 나도 공부하는 자세로 이 책 저 책 뒤적이고 또 내가 근무하던 옛 직장의 불교모임 회장님에게도 물어 보고 하여 다음과 같이 나의 의견을 정리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구절은 불교의 정수로서 불자들이 즐겨 외우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여기서 은 오관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즉 형태가 있는 것, 눈에 보이는 사물, 추상적인 개념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해석에는 별 이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달라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이는 상관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는 비어 있는 것으로, 또는 없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것은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서, 나는 로서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색즉시공이란 간단히 표현하면 =이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조금 달리 해석하여 로 보고 로 보면 =가 되며 이것은 얼핏 보아 명백한 모순입니다. 어떻게 정반대 개념인 가 똑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색즉시공이란 형식논리를 따르는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모순이지만 진리의 표현은 가끔 역설적이며 모순되어 보이는 형태를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얻으려면 버려라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등은 형식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역설적인 진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현대과학의 발견을 살펴보면 =라는 비유는 명백히 틀렸다고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꽉 차 있는 것으로 감지하는 물체도 소립자의 수준으로 확대해 보면 대부분은 비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잘 알다시피 모든 물질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자의 크기를 서울운동장으로 비유하면 원자핵은 운동장 한가운데 놓인 야구공만하고, 전자는 모래알 하나 크기에 불과합니다. 즉 원자는 대부분이 입니다. 우리가 로서 인식하는, 예를 들어 연필은 기실은 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단단히 차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지구도 실은 입니다. 재미있는 과학적 사실은 중성미자라는 소립자는 지구를 100개 포개어 놓아도 아무 부딪힘 없이 직선으로 통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라는 단적인 예가 되겠지요.

   과학적으로 =라는 명제를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을 질량이 있는 물질로 보고 을 질량이 없는 에너지로 본다면 저 유명한 아이슈타인의 방정식 E=mC² =과 형태가 똑같지 않습니까? =에너지이고 =질량이며, C²이라는 계수만 붙이면 공즉시색이 되고 말지요. 질량을 가진 입자가 에너지로 바뀌고 또 에너지덩이가 질량을 가진 입자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상대성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지요.

   일반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데, 사실 과학자는 딱딱한 사람이 아니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과학자인 디락(Dirac)의 관계에서 재미있는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지구라든가, 달이라든가 하는 물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우주에는 디락의 바다라고 부르는 가 충만해 있고, 그 바다에 구멍이 뚫리면 그곳에 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보다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것은 가 아니고 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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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30 제가 불교 이야기를 연재하면 저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무려 60년 동안이나, 기독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불교에 관하여도 관심이 많습니다. 저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물으신다면 저는 최근에 타계하신 인기작가 최인호씨의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최인호씨는 불교에도 조예가 깊고 '길없는 길'이라는 불교 소설을 썼습니다. 더욱이 최인호씨는 불교소설을 쓰기 위하여 수덕사에 1년간 머무르는 동안 '무이'라는 법명까지도 받았습니다.
  • 작성자이뭐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30 그렇지만 최인호씨는 1987년에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고서 가톨릭으로 입문하였습니다. 그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나 자신을 부르고 싶다."

    저는 기본적으로 진리는 하나이지만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방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종교관입니다.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방향에서 오르든지, 길만 잘 따라가면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상생은그만 | 작성시간 13.09.30 불교 이야기 연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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