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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부엔디아,아르헨티나 22회: 말비나스전때 우리들의 모습.

작성자토마토|작성시간07.09.08|조회수479 목록 댓글 5

“전쟁이다!

난 내귀를 의심했다. 전쟁? 그럼 결국 영국과 한판 붙었다는 말인가?

때는 1982. 난 그때 감수성많고 예민한 학생이었다. 교회에선 여전히 방황했었고, 학교생활은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었다.

 

끌라린신문에서 아르헨티나군인들이 말비나스섬을 되찾았다는 커다란 기사는 이미 봤다. 말비나스섬에 대한 노래는 아르헨티나초등학교때부터 불러오던것이다. “말비나스섬은 우리것!”이란 그 노래~. 그 당시 군정이었는데, 아르헨티나대통령은 갈띠에리 라고 무솔리니장군을 연상케 하는 아주 남성적인 멋진 스타일의 장군이었다.

 

사실 초기에 우리들은 많이들 어리둥절했었다. 정말로 영국과 붙어도 된단말인가? 영국은 강대국인데... 그래서 많이 불안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노들은 설마 영국이 그 먼곳으로 겨우 쓰잘때기없는 섬 하나 찾자고 전쟁을 일으키러 오기야하겠어? 하고 생각하는것이 일반적이었다.

뭐 유엔기구같은곳에서 협상좀 하다가 아르헨티나에게 섬을 내주겠지~ 하는 생각.

 

그런데 뉴스진행을 보니까 영국군함이 전쟁을 일으키러 아르헨티나로 떠났단다. 이거 좀 심상치가 않는데? 우리들은 그 당시 뉴스에 굶주려있었으며, 학교에선 끌라린신문에 모두들 코를 박고있었고, 집에선 항상 tv를 켜놓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참 불안해했다, 오히려 아르헨티노들보다 더 불안해했는데, 남의 나라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란 개념조차 몰랐던 아르헨티노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그 당시 북한남침공포에 벌벌 떨던 세대였고, 한국의 불안한 전쟁분위기를 피해서 이민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피해 겨우 이곳에 왔는데, 이곳에서 전쟁을 치룬다고? 너무나 엉뚱한 운명인것이다.

 

 

 

tv뉴스시간에는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면서 아르헨티나깃발이 휘날리는 장면이 나온뒤 뉴스를 진행했는데, 갈띠에리 장군이 “5월의 광장에 꽉차게 모여든 열광하는 아르헨티노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있었다.

“영국놈들 올테면 와 봐라, 전쟁을 맛보게 될것이다!” 하면서 정말 남성적으로 멋지게 보였는데, 그같은 용기와 대범함에 흥분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갈띠에리 그 자신이 수수깡처럼 마르고, 목소리도 작고, 나이도 많은 대통령이었다면 일찌감치 아르헨티노들은 영국에게 항복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도대체 아르헨티나대통령에게 믿음이 안갈테니까...

 

그러나 갈띠에리 장군은 달랐다. 그는 장군다운 카리스마를 갖고있었고, 그를 무조껀 따르기만하면 승리할수 있을것 같았다. 갈띠에리 장군은 첨에는 영국에게 쭈삣쭈삣하던 아르헨티노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우리들의 가슴에는 월드컵에서 승리한것보다 더한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5월의 광장에 모여든 인파는 월드컵열기때보다도 더 대단하게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하고 목청 터져라 외쳤던것이다. 흥분의 도가니... 아니 어쩌면 무한한 자신감으로 흥분하고 있는 아르헨티노들은 오히려 영국과 한판 붙고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노들이 초기에 보였던 불안과 초조와 공포는 안개젖힌듯히 사라지고 이젠 “감히 아르헨티나를 건드려, 죽여버리고 말겠다!” 라는 자신감과 독함이 있었다. 그때만큼 아르헨티노들이 단합되고 행복했던적은 없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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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항상 행진곡이 하루종일 울려퍼졌다. 매일 계속되는 이 최면술에 우리들의 가슴은 뛰었다. 학교에 가면 동료들은 방방 뛰면서 응원했다. el que no salta es un ingles~ (뛰지 않는놈은 영국놈이다.) 그 의미는 아르헨티노라면 함께 뛰면서 응원하고, 뛰지않는자들은 모조리 적이다 라는 뜻이다. 이쪽편이던지, 아니면 적이던지 선택하라는 뜻이다. 중립은 없다, 중립은 곧 스파이던지 또는 개보다도 못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료들은 나를 쳐다봤다. 나의 행동이 정말로, 정말로 궁금했던것이다. 한국인인 내가 과연 아르헨티나편을 드느냐? 영국편을 드느냐? 의 선택을 기다리던것이다. 물론 중립이란 단어는 없었다.

아마도 내가 아르헨티나에 떨어진지 얼마안된 이민자라면 결코 선택에 많은 갈등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한인교포들은 남의 나라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고, 중립의 입장을 선택하고들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아르헨티나를 지지한다고 했었지만...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난 초등학교부터 아르헨티나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다. 게다가 난 아르헨티나애국가가 울려퍼질때 손을 가슴에 얹고 묵상을 했으며, 학교에서 국기기수를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난 한국인임과 동시에 아르헨티노이기도 했던것이다.

그래서 동료들이 ‘저 녀석은 혹시 스파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난 그들과 함께 방방 뛰면서 “el que no salta es un ingles~" 하고 함께 응원했으며, 실지로 영국이 너무나도 얄미웠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말비나스섬 근처까지 다가온 영국군함들과 섬을 지키고있는 아르헨티나군인들은 서로 맞대고 으르렁 거리고 있을뿐 어느 한쪽도 아직은 행동개시를 안하고 있었을때였다. tv에선 늙은 사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장면이 보이고, 그 사자의 머리를 정통으로 사냥꾼이 겨누는 장면이 항상 나왔다.

 

거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군인들이 말비나스섬으로 향하는 장면들을 tv로 보여줬다. 그들은 얼굴이 밝았으며, 이기고 돌아오겠다고 항상 말하고 있었다. 그 많은 젊은이들은 실지로 애국심 하나로 그 춥고 배고픈 장소에서 버텼다. 우리들에겐 그 젊은용사들이 너무나도 멋져보였다.

 tv에서는 전쟁기금 모우기운동이 한창이었다. 한인교포들중에도 이때 전쟁기금 모우기에 돈을 갖다바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무도 이 기금이 제대로 전달되고 사용돼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대립상태에서 지루하게 시간만 지나가고 어느쪽도 행동개시를 안하고 있을무렵, 영국이 말비나스섬 반경 321km 전쟁지역으로 선포한 구역에서 휠씬 벗어난장소에서 벨그라노 아르헨티나구축함에 잠수함에서 어뢰를 쏴 완전히 침몰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72일간의 말비나스전쟁으로 죽은 아르헨티나군인들이 총 630명인데, 그중 절반인 323명이 이때 죽었다. 전쟁은 시작된것이다.

 

아르헨티노들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분노했다. 전쟁은 이제 내손으로 다가온것이며, 손을 뻗치기만하면 닿을것만 같았다. 이제는 아르헨티노들의 운명이 정해져버린것이다, 영국과 목숨걸고 끝까지 싸울수밖에 없다는것을 느꼈다. 뒷걸음치기는 이젠 이미 늦었으며, 주사기는 던져졌다. 나의 운명도 역시 그들과 함께했다.

 

아르헨티나공군은 벨그라노침몰 이틀후 치열한 보복을 하게되는데, 그때 영국의 Sheffield 함정이 침몰해 20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중상에 빠지게됐다. 그리고 그 외 영국의 여러함정들이 미사일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게됐다. 72일간의 말비나스전쟁으로 아르헨티나젊은이들이 630명 죽었으나, 영국측도 총 255명이 사망한 전쟁이었다.

 

 

 

 

이때부터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맞붙었고, tv에선 아르헨티나공군이 몇 대를 침몰시켰다, 또는 피해를 주었다는 등의 소식을 알려왔다. 와아~ 뜻밖이다, 아르헨티나는 이기고 있었던것이다. 영국놈들이 혼줄이 나고 있었던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면 영국놈들은 어쩔수없이 후퇴할수밖에 없다고들 생각했다.

이러한 토론은 사람들이 모이는곳이면 항상 이슈화됐는데, 그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카페나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항상 만원이었다. 월드컵때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 일종의 축제분위기, 그도 그럴것이 아르헨티나군인들은 용맹했으며 영국을 이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정부는 사실을 많이 숨기고 있었고, 이기거나 유리한 소식만 전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전쟁에서 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땐 아르헨티노들은 매우 황당해했다, “이게 무슨소리야? 지금까지 이기고 있었던것이 아니었단 말인가?“하고...

그런데 원래 전쟁때는 거짓선전을 통한 심리전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나라나 자국이 승리하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믿게끔 거짓선전 또는 부풀리는 둥의 기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전쟁은 그런것이다. 국민들의 사기와 지지가 아주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갈띠에리 장군은 말비나스 전쟁에 핵무기까지 계획했다가 반대자들에게의해 저지당했고, 아르헨티나 본토로 번져 전면전이 될것도 예상해 소련의 힘을 빌릴것도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는 오늘날에도 그때 끝까지 버텼어야만 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전면전이 됐다면 큰일날뻔 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알게 된 사실은 그 당시 영국군함은 핵무기를 함께 가져왔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작 영국측은 갑작스런 출동 때문에 핵무기를 떼어놓고오는 시간이 없었고, 사용할려는 목적도 아니라고는 말하지만, 갈띠에리 장군이 전쟁을 확대시켰더라면 아마 충분히 사용했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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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평화시의 모럴은 바뀌게된다. 전쟁땐 사고방식도 차츰 바뀌게된다. 그래서 전쟁당시의 사건을 평화시의 눈으로 판단해선 안된다. 전쟁당시에는 적을 죽여야살아남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이 결코 신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웠다는걸 증명하게 된다. 전쟁때 우리들은 야생적이 되고, 넘치는 에너지에 복받친다.

 

전쟁때에는 평상시의 그 구름같은 마취된 몽롱했던 몽상들은 깨끗이 걷혀지고, 현실을 직시하는 얼음창처럼 차가운 맑고 밝은 현실세계에 놓이게된다. 자신은 더욱 자신같아지고, 본성이 서서히 고개를 들게된다. 우린 잔인해지고, 전쟁이라는 합법화된 살인을 맛보고 싶어서 으르렁 거리게된다.

 

난 오랫동안 생각해온 생각을 정리하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다가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 말비나스 전쟁에 나가겠습니다. 군에 자원하겠습니다.

나에게 이것은 마땅히 해야할 결단이었는데, 나의 비겁함 때문에 계속적으로 미루어오던 것으로 이제야 용기를 가지고 결단했다고 생각했다. 또 이것은 나의 뚜렷한 행동으로인해 나의 실존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도 생각했다. 당연한것! 마당히 해야할 것!

 

그러나 아버지에게 있어 이같은 이야기는 당연한게 절대로 아니었다. 아버지 관점에선 너무나도 우습고 어이없고 미친짓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화부터 내셨다.

“어디 미친소리를 하고 있는거냐? 남의 나라전쟁에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거냐~

하고는 더 이상 말도 못붙이고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에 쭞겨났다.  우리집에선 거론될 가치도 없는 테마였기 때문이다. 아마 아버지에 대한 나의 반항이 더욱 심했던 그후 몇 년 후였다면 아마도 난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원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마도 난 죽거나 많은 살아남은 젊은이들이 후에 자살했듯히 자살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말비나스 섬에 영국군들이 상륙하고 얼마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고, 그래도 말비나스 섬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갈띠에리 장군의 말에도 불구하고 말비나스주둔군 사령관이었던 메넨데스는 어이없게도 흰기를 들고말았던것이다.

 

나중에 tv화면에 갈띠에리 장군이 나타나 “전쟁은 끝났다!” 라고 선언했고, 그와 함께 아르헨티노들의 꿈은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고 말았다. 넘치던 자신감도, 아르헨티노라는 자부심도, 영국인에 대한 증오도, 그 같이 행복했던 나날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진것이다. 너무나 허무했고, 공허했고, 죽을뜻히 우울했다.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전에서 탈락한것의 슬픔과는 비교도 안됐다.

 

그후 당시의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르헨티노국민들을 위로하러 왔다. 국민들이 지독한 카톨릭교인 아르헨티노들은 전쟁에서 진 그 막대한 슬픔과 좌절을 기도함으로서 위로받고 극복할려고 하고 있었다. 교황덕분에 전쟁에 진것에 대한 폭동은 없었다, 그러나 군정은 말비나스전쟁의 실패로 인해 민주화를 앞당기게 되는 손해를 보게됐다.

 

 

 

 

전쟁은 끝났다, 우리는 72일간의 긴잠에서 깨어나 다시 평화스러운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와 늘 같은 사고와 행동과 습관을 로봇처럼 되풀이할것이다. 그런데 우린 어쩌면 72일의 전쟁기간동안만 진정으로 깨어있었고, 진정으로 삶을 강력하고 진실하게 살았으며, 우리는 전쟁의 끝남과 동시에 다시 길고도 긴 지루한 잠을 다시 자게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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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람처럼 | 작성시간 07.09.08 말비나스... 포클랜드 전쟁이라고 영어권의 소식통들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 나갔지요..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졸지에 멍청한 나라가 되었지요.. 한쪽에서는 피흘리며 전쟁하고 한쪽에서는 축구 경기에 열광하니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라는 사설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 작성자그리고 | 작성시간 07.09.08 난그때기억으론 졸라 오버록하고 미싱밟은기억이나나는군요 한장에 일불상당 그러니까 하루 이백하면 이백불수입 정신없었죠 ~~ 주말이면 춤장만원 사례, 식당 만원사례 ,우리의 전쟁 사고완 단판인것을 느끼며 알헨의 미래를 보았죠 흡사 전쟁은 너희가 나가서 하고 우린 잘 놀면 그만이지 하는 이나라 특유의 안일 무사주의 그리고 이기주의가 결국 손을 들게 하고 말앗지만 말이죠 거기다 강대국간에 짜고 치는 고스톱냄새도 물씬나고요... 근데 하마터면 토마스님 영웅될뻔했네요 ~~ ㅋㅋ 지금은 다 잊혀졌지만말입니다 ...
  • 작성자신기루 | 작성시간 07.09.09 토마토님 아버지가 얼마나 황당 하셨을까............
  • 작성자셀리 | 작성시간 07.09.09 분명 영국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그 멀리에 있는 작은 섬을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 부터가... 그러나 현실이므로 내적인 힘을 기르고 외교로 잘 구축해 놓은 국제적인 지위가 된 후에 다시한번 해볼일이다. 이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일이다. 이는 아르헨띠나의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 작성자건강지키미 | 작성시간 11.04.15 아 정말 재미있어요^*^`~ 물론 제겐 실감은 없지만 상상력은 풍부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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