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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요한 5,31)

작성자율리타|작성시간18.03.16|조회수54 목록 댓글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 5,31-47)

예수님의 섭섭함 나아가 어떤 의미로는 짜증이 느껴지는 복음입니다. 

좀 많이 삐치신 듯 합니다. 이유는? 

사람들의 불신 때문입니다.

   ‘그렇게 못 믿겠니,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도 그렇게도 믿음이 생기지 않니.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음에도 아버지께서 그 일을 하라고 나를 보내셨음이 그렇게 믿겨지지 않니. 

   아버지께서 바로 나를 증언해 주심에도 그래도 못 믿어. 믿겨지지가 않니. 

   이렇게 이야기해도 내게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니.’ 

완전히 마음 상하신 것을 폭포처럼 쏟아붓는 오늘 말씀 안에서 발견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만이 아닙니다. 

불신하는 이들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한 슬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려 하지 않겠다. 오직 하느님께만 바라겠노라.’  

아무리 성경을 읽고 연구한다고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된다고 하시고, 당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으니 아버지께만 인정 받으려 한다고 하시고- 알고 보니 이리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속이 넓지는 않으신 듯 하기도 합니다. 

당신을 몰라주는 이들에 대해 속상해 하는 이유. 

그것은 그냥 몰라주면 상관없지만 그러나 무관심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멸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뻔히 망하는 것이 보이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기에 좀 알아다오-하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다오. 모른 척 하지 말아다오. 나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가는 길을 걸어가다오.’ 

그런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부모도 자식들이 마음을 몰라줄 때 섭섭한 내색은 안하더라도 속마음은 속상합니다. 

누구도 진심을 몰라줄 때, 진정성을 의심할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진심! 

그래, 너희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가 아니라, 하나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신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복음은 사뭇 반어적입니다. 

 ‘너무 바빠서 내게 올 시간이 없구나’-그러나 겉으로는 ‘에이, 오지마, 올 필요 없어.’

 ‘영광을 사람들에게 받지 않겠다.’-그러나 속마음은 ‘나는 너희가 주는 영광을 받고 싶다.’(다른 데, 세상에서만 영광을 추구하지 말고 내게도 그 영광을 돌려 다오.) 

 겉으로는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속마음은 ‘꼭 믿어야만 한다.’ 

겉과 속은 예수님도 좀 다르실 수 있습니다.   불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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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율리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3.17 내가 나를 증언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참으로 답답할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는 일들이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어디 출신이라더라, 집안은 어떻다더라, 성격이나 행실은 어떻다더라 등 등 등... 나자렛 출신이며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께선 얼마나 답답하셨을 지 이해가 됩니다.
    어떤 기적을 보여주셔도 사람들의 이러한 선입견이 얼마나 두터운 담을 쌓았는지....
    요즘은 SNS를 통해 소문이 더 빠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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