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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의 철학이야기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작성자원진호|작성시간10.10.04|조회수605 목록 댓글 2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표상: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그려보는 일,심상,상상,관념등의 뜻.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상상하는 일.

  예) 인간은 태양 자체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나 눈으로 빛을 보고서 태양을 인식한다.

1.첫번째 진리

문제는 이 표상이 '나의 표상'이다. 내가 인식하는 태양은 '나의 표상'이다.그래서 세계는 나의 표상인 것이다.이것이 선천적 진리다. 

2. 두번째 진리

내가 표상하는 모든 대상은 시간과 공간.인과성이라는 형식에 놓여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내가 태양을 볼 수 있게 하는 시,공간,인과성이 바로 '충족이유율'이다.

3. 핵심 원리

 '주관과 객관의 분열'

보는 것(주관)이 있고,보이는 세계(객관)가 있다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주관의 우선을 인정

즉 '객관은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는 주관이 태양이라는 객관을 보았을 때,태양이라는 표상이 생긴다.

만물은 단지 주관에 대하여 존재하는 객관일 뿐이다.

 

주관은 무엇인가?

1.정의

모든 것을 인식하며 그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는 것.

주관이 있음으로 객관을 성립시킨다.

주관은 인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식의 형식인 시공간,인과성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표상이 성립하기 위한 두 측면

1. 객관

 시간,공간,다수성의 형식에 놓여 있다.

2. 주관

 시공간안에 없으며 나눌 수 없다.단지 객관을 표상함으로써 주관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 그래서 주관과 객관은 나눌 수 없다. (주객의 불리일체)

     주관이 나고 객관이 너라면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인식에 사용하는 두가지 방법

1.직관

 육안으로 보이는 세계의 총체,경험할 수 있는 전부이며 시공간에 매여 있다. 

   1) 시간의 개념

      한순간 한순간 그 앞에 있는 시간을 죽이는 형식으로 존재한다.계속이 시간의 본질이다.

   2) 공간의 개념

     '위치'이다.

   3) 물질

     '물질의 움직임'이다. 움직임으로 시공간을 채운다.

    4) 물질의 인식은 직관에 의해서이다.

       사과를 보고 사과라 하며 원진호를 보고 원진호라 한다.

   5) 인과성의 관여

     인과성에 관여하는 인간의 감각은 '오성'에 의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오성이다.

     원인과 결과에 나타나는 모든 물질은 오성에 의해 대응되고 인식된다. 이러한 직관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지적인 것이다.왜

     냐면 원인과 결과의 물질들을 서로 매칭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사람이 지관에 의해 표상으로서 알게 되는 것은 객관의 작용이며,인과성이자 오성에 의한 것이다.

   6) 오성과 이성의 차이

     예) 물에 잠긴 막대기가 꺽여 보이는 것

       오성: 꺽인 그대로-실재-로 보는 것.

       이성: 그 막대기는 빛의 굴절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꺽이지 않았다(진리) 

2. 추상

 예) '태양과 같은'이란 말은 태양을 개념화 한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이 인간의 추상하는 능력이고,그 능력을 '이성'이라 한다.

 

결론: 오성은 이성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다. 직관하는 것은 오성만의 작용이며,이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표상은 서로 대립되는 객관과 주관을 전제로 하며,시.공간.인과성에 종속되며,오성에 속하는 직관에 의해 파악된다.

 

의지에 대하여

1.문제의식

  나의 '직관적인 표상'에 의해 세계를 인식하지만,그렇다고 나의 운동이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표상의 뜻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현상을 푸는 열쇠로 '의지'가 있다.의지가 자신의 본질,행위,운동의 뜻을 알게 해 준다.

2. 나의 몸은 나의 의지이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운동을 자의적인 운동이고 의지와 관계없는 운동은 부자의적인 운동(추가참조)이다. 전자는 '동기'에 바탕을 두고 후자는 '자극'에 의한다. 미래를 바꾸려는 의지의 결정을 '결의'라 하고 여기에서 '의욕과 행위'가 나온다. 그 결과가 의지에 어긋날 때에는 불쾌가 맞아 떨어 질때는 쾌감이 따라온다.

 => 육체와 의지는 하나이다. 누군가의 의지를 인식하는 것은 육체의 행위를 인식하는 것과 같다.

   예) 축구하는 원진호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것은 그 인간이 이기고 싶다는 의지를 인식하는 것과 같다. 다시말해 이기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과 그 넘의 축구하는 행위는 다르게 표현되는 같은 내용을 의미한다. 

=>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구체적 행위를 통해 의지를 인식할 수 있다.

  예)  원진호가 공을 찬다는 의지는 공을 차는 육체의 자세를 만든다. 그리고 잘차면 쾌감을 느낀다.즉 의지로부터 쾌,불쾌라는 육체적인 자극이 생긴다.

3. 의지의 확장

 1) 부자의적인 운동인 육체의 성장과 유지에 있어서도 동기가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다.육체를 유지하는 것도 의지의 현상이며 의지가 눈에 보이는 모양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 치아,목,장은 객고나화된 굶주림이다. 이처럼 육체는 의지의 표현이다.

2) 식물이 성장하는 힘,광물의 결정이 형성될 때의 힘,자석을 북극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같은 것도 의지에 의한 것이다.

3) 의지만이 칸트의 물자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4) 의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

   모든 객관(현상)은 시공간,인과성의 형식 속에 존재한다. 주관은 이 형식을 소유하고 개관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표상하는 이 형식속의 모든 객관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 그 의미가 무어냐? 그 무엇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 가? 그 것은 주관에 연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본질적으로 시공간,인과성의 형식을 뒤어 넘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물자체이다. 물자체는 주관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다만 객관의 표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물자체는 의지인 것이다.

 

의지의 존재감: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근본 원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물자체로서의 의지의 현상(표상)으로 한정되어 있고 행동에는 궁극적으로 자유가 없다.인간에게 있어 좋든 싫든 일단 맡은 역할을 끝까지 연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개인들은 자신의 본성(물자체,의지)에 적합한 형태로 현실에 있는 것이며 그외로는 있을 수 없다.

 

이데아로의 진화

 '변함없는 형상(이제아)'을 인식한 소수가 '본래 의지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식'을 자유롭고 순수하게 하여 '세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을 만드는데,여기에서 예술이 탄생한다. 예술(미적인 관조의 탄생)을 통해 깨달음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의식의 진정제'즉 체념이 일어나며 '참된 체념'으로 고통이 '덕과 성스러운 경지'에 다가가 '해탈'에 이른다. 

 

추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어미가 갖된 새가 알의 표상도 없이 둥지를 만드는 것은 그 의지가 인식에 바탕을 두지 않는 행위이다. 단지 본능적 자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에게도 있는 것이 소화,분비,성장등이다. 이 것도 그 근저에는 물자체로서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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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원진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0.05 우리가 표상하는 객관이라는 세계는 시공간,인과성이라는 형식하에서만 인식가능하다. 그러나 객관세계의 존재이유,운동의 근본원리는 설명되지 않으며 이것을 우리는 표상할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시공간,인과성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무엇이기 때문이다.칸트는 그것을 물자체라 하여 우리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의지라 칭하고 간접적으로 객관세계의 탐구를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의지는 인간의 의지적인 측면뿐 아니라 식물,광물의 존재에도 관여하는 근본적인 힘이며 만물은 그 존재에 스며있는 의지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답댓글 작성자원진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0.05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은 고통과 권태로 충만한 괴로움 삶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사는 것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체념하고 명상을 통해 해탈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작 그가 그렇게 산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성의 시대에 직관과 경험을 믿고 초월적 가치에 대항하여 개인의 실존적 가치를 물음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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