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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장권력과 인문정신>을 읽고

작성자원진호|작성시간12.07.14|조회수181 목록 댓글 11

프롤로그: 

책을 읽고  저자의 강의가 더욱 기대된다.

 이 책은 08년도에 나왔다. 책에는 거의 격문에 가깝게 현실 문학판을 비판하고 있다.

 

본문:

 절대 자본주의(우리가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노동판에서 한마디로 해고되는 것을 학문판에서 노동유연성으로 이야기 하는 본질의 은폐와 왜곡을 저자는 거부한다. 신자유주의가 갖는 낱말의 진보성,세련됨을 저자는 경계한다. 신자유주의의 현실은 맨하탄 증권거래소의 주식,환,선물매매에서 부터  콩고의 소년병사, 시에라리온의 붉은 다이아몬드를 아우르는 자본의 철저한 지배에 다름아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그냥 '절대자본주의'일 따름이다.)가  국민 경제의 모두 분야를 지배해 나가는 것처럼 대학과 문학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시장권력의 학문 영역에 대한 지배는 학술진흥재단(학진)의 연구비 지급시스템을 통해 이루어 진다고 한다. 교수들은 학진이 요구하는 입맞에 연구방향을 맞출 수 밖에 없고 학진은 이러한 교수들의 연구업적을 표준화,계량화하여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학고유의 비판적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오직 실용적인 지식과 학문의 강화,시장에서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노동력의 양성과 관련된 지식교육에 교수들이 매몰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문학도 문학이 가지는 공적 기능을 현저히 잃고 '오락화 사소화'로 전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문학을 비평하는 문학비평도 잘 팔리는 작가의 용비어천가 역할을 하는데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학과 대학의 문제는 우리 사회 영역에 전반에 걸쳐 있는 것이고 중국,일본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고 한다. 결국 절대자본주의라 정의되는 거대자본중심의 시장권력이 세상을 전일적으로 지배해 나가기 때문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인류의 안전과 평화를, 나아가 번영을 보장할 수 있을까? 끝없는 성장제일주의가 결국 화석연료의 고갈,환경파괴의 확대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환상에 불과한 성장담론에 기꺼이 표를 행사하고 있다. 바로 이 명박대통령의 등장. 자본의 특성은 집중과 선택. 집중은 빈익빈부익부,사회양극화를 의미하고 선택은 미개척지 시장을 마구잡이로 개척하는 자본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대중의 속성은 이러한 자본에 나도 편승하여 잘 나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 것이다. 이 것이 우리가 고단해지는 이유인 것이다.   

  문학비평가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이렇게 자조한다.

 " 비평가로서의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자주 빠지곤 했다. 절필의 유혹은 대단히 강렬한 것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이런 유혹을 강화시킨 것은 근저로부터 나를 자극하고,반성적 촉구를 요구하고,괴로움을 느끼게 하면서도,동시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행복감의 원천인 창조적인 지적 고문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점점 실종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비평가들이 과연 존재하는지 존재 할 수 있는지를 자문하면서 우리 현실의 근본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비평가의 역할들을 제안하고 있다.

 " 오늘의 현실을 비평가들이 어떻게 성격 규정할 것이며, 그 규정 속에서 예술,예술가,예술 제도의 의미와 기능,그것의 사회적 작동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과 논쟁의 상호교류가 있어야 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인문정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 나는 가끔 그것을 '추방된 자의 시선'에서 찿고는 했다. 추방된 자는 정주할 거처가 없는 대신, 사상과 살천의 거처를 부단히 갱신하고 확대시키고자 한다. 그가 꿈구는 세계는 체제의 안쪽도 바깥쪽도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쪽에 자신의 온몸과 정신을 다 던져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삶의 형질을 바꾸는 것이다. 리 호이나키의 말처럼, 정의와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은 평평하지 않다.단테가 일찍이 상기시킨 바있듯, 그 길은 연옥에서의 치열한 실존을 요구하며, 오히려 흔들리는 곡선의 탄력에서 나아갈 길의 지도를 발견한다."

 인문정신의 존재장식은 '비근대적'이라 하며 천천히 느림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런 지점에서 인문정신은 철저히 '시장권력'과 대척점에 서 있다. 빠르게 빠르게의 성장의 끝은 완전 무에 이름이다. 인류종의 멸절. 저자는 노골적으로 말은 안 했어도 그 인식의 끝에 존재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에필로그: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그간 저자의 활동이 궁금하다. 성장담론에 매여 있던 한국 사회 대중들의 환상은 깨졌다. 저자에게 알면서 가만히 있었냐고 비난하거나 무지몽애에 휩싸여 있지 않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지는 않다. 대세에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바가 있으니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요구하기엔 저자가 담고 있는 문화비평의 처지가 너무 옹색하다는 느낌도 들다. 그러나 지식인이지 않은가? 지식인은 누가 뭐라 하기 전에 시대와 운명을 같이 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닌가? 일개 시민이 세상을 개탄할 수 있어도 지식인은 그 보다 좀 더 앞서 나가야할 의무와 운명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문제제기하고 주장하였던 4년 전의 것들이 지금 이  현실판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실천은 무엇이였는지 궁금하다. 이 것이 인문학 페스티벌에서의 질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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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히치하이커(권익현) | 작성시간 12.07.17 애구~ 애구~ 주절주절 생각해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형의 질문에대한 작가님의 답변이 기대가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문석주 | 작성시간 12.07.17 익현아! 너무 좋은 생각이고, 나도 거의 공감하는데, 조금 공감 못하는 부분은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 속에 포함되는 하나를 생각하고, 그 속한 하나의 귀함과 개성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사회가 이루어짐을 먼저 생각함은 어떨까?
    이 글은 따짐은 아닌 것 알지. 개인(주의)과 공동체(주의. 집단)는 상호협력관계에서 의존적관계를 중심에 놓을 때만이 개인만을 중시(이기주의,개인주의)한다든지, 집단만을 중시(애국주의, 민족주의,전체주의)하는 왜곡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보며, 이 둘의 조화가 존중되어야 현재의 문제-자본주의 문제 극복 등-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됨.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알지?
  • 답댓글 작성자원진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17 익현이와 석주님의 생각을 저자에게 따져 묻기.
  • 작성자무하유지향(시천) | 작성시간 12.07.19 이명원 교수님은 현재 <실천문학> 편집주간으로 있고, 제가 만난 문학평론가 중에서도 박학이 넘치는 분이더군요.. 특히 뒷풀이 때 아주 즐거울 분이십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계시고요^^
  • 작성자김은수 | 작성시간 12.07.27 정리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다 읽으신 분 책좀 빌려주실수 없는지요? 게으른 중생이 아직 책을 구하지 못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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