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최초의 통일 왕국이 세워진 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왕을 꼽으라면 쏭짼감뽀, 티송데첸, 렐빠쩬을 들 수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3명의 왕을 '메윈남쑴'(祖, 父, 孫 3왕)을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금강수보살의 화신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중 쏭짼감뽀(569-649) 왕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자 티벳의 수호신으로 개국의 왕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쏭짼감뽀왕은 13세에 즉위하여 라싸의 마르뽀리(붉은 언덕)에 뽀따라 궁전을 세우고 16조의 도덕 규범을 제정하여 관료 사회 위계질서를 바로 세웠으며 송짼감뽀왕은 7세기 중엽 티벳어를 만들기 위해 '퇸미 삼보따'(Thonmi Sambhota)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을 인도로 파견했습니다.
파봉까에 모셔진 송짼감뽀 상
바위 궁전 '파봉까', 최초의 티베트어 '옴마니반메훔'
처음 송짼감뽀 왕의 개인 수행처로 세운 파봉까는 '바위 궁전'이란 뜻으로 거북이 모양 바위 위에 세워졌으며 당시 9층 규모였지만 현재는 2층만 남아 있습니다.
퇸미 삼보따가 인도에서 돌아온 후 머물며 티벳 문자를 만든 곳이 라싸 인근 북쪽에 위치한 '파봉까'사원입니다.
퇸미 삼보따는 이곳에 머물며 티베트어 제정을 위한 일을 했으며 30개의 기본 자음과 '이, 우, 에, 오'로 발음되는 4개의 모음부호로 이루어진 티베트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티벳어 제정 후 처음 만든 글자는 관세음보살 만트라인 '옴 마니 반메 훔'(원음은 '옴마니뺏메훔'에 가깝다)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인도 불교 경전의 티베트어로 옮기는 활발한 역경이 이루어졌고 티베트 불교 문화가 히말라야 고원에서 꽃을 피우게 된 역사적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 관련 글 ① 티베트의 대표적인 기도 '옴 마니 반메 훔'이 갖는 의미는? ③ 티벳의 위대한 '쏭짼감뽀' 왕, 후손 지금도 살아있다.! |
거북이 모양을 닮은 바위에 세워진 파봉까
사원 내부를 밝히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공양물 버터 램프
현재는 2층만 남은 파봉까
(사진/차이나티베트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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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룽타(風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10 우리나라는 모르겠구요.외국의 일부 학자들은 한글이 티벳어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분들이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인도의 굽타문자->티벳어->팍파문자(원나라의 국사를 지낸 티벳 팍파가 티벳어를 바탕으로 만든 문자)->한글 창제시 참고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신미대사의 한글창제는 소설가정찬주의 천강에 비친 달이란 책을 보면 자세히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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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가산 작성시간 14.12.11 룽타(風馬) 옴 마니 반메훔의 티베트 발음 "옴 마니 뻬메 훔"은 산스크리트어 "옴 마니 파드메 훔"의 음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글이 티베트어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씀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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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룽타(風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11 가산 티벳학 서양학자가 지은 티벳의 문화라는 책에서 한글 창제에 티벳어가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을 본 것 같습니다. 정찬주님의 천강에 비친 달이란 책을 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정찬주님 책을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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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가산 작성시간 14.12.11 룽타(風馬) 저도 이번기회로 언제 서점에 나가게 되면 한 번 읽어 봐야 겠네요."정찬주"님도 개인 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구요.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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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타르초 작성시간 14.12.16 룽타(風馬) 신미대사께서는 속리산 복천암에 상주하셨다고 합니다
그곳에 자료가 많이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승가의 어느 누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복천암선원장님이신 월성스님께서 아주 소상히 알고 계시다고 들었지요 _()_